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경단을 먹으며 나무 아래를 거닐기도 하고, 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이기도 하면서 절경이라느니 봄이 한창이라느니, 하며 마음이 들떠 기분 좋아들 합니다만 그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리자면, 사람들은 벚꽃나무 아래에 모여서는 술에 취해 토하거나 싸움을 하는데, 이것은 에도시대부터의 일로, 아주 옛날에는 벚꽃나무 아래는 무섭다고 할지언정, 절경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벚꽃나무 아래 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싸우기 때문에 밝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벚꽃 아래 풍경에서 인간을 빼 버리면 공포의 풍경이 되어 버립니다. 노(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에서도 어떤 어머니가 유괴범한테 아이를 납치당하고, 그 아이를 미친듯이 찾아 헤매다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에 이르러 문득 눈앞에 펼쳐진 꽃잎 그림자에서 어린아이의 환영을 보고는 미쳐 죽어 꽃잎에 묻혀 버린다-이 부분은 소생의 사족입니다만-고 하는 이야기도 있듯이, 벚꽃나무 숲 아래에 사람들의 모습이 없으면 무시무시할 따름입니다.
그 옛날 스즈카 고개에도, 나그네가 벚꽃나무 숲 아래를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괜찮지만, 꽃피는 계절에, 나그네들이 벚꽃나무 숲 아래를 지나다 보면 모두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꽃 밑에서 도망치려는 생각에, 꽃이 없는 나무나 시든 나무가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던 것입니다. 혼자일 때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꽃 밑을 쏜살같이 도망쳐, 보통 나무 아래까지 와서 살았다, 하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두 사람인 경우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달리는 속도는 각양각색이어서, 한 사람이 처지게 마련이라, 이봐 좀 기다려 줘, 하고 뒤에서 필사적으로 외쳐 대도, 모두 혼이 빠져 친구를 버리고 달아납니다. 그래서 스즈카 고개의 벚꽃나무 숲 아래를 통과하면, 이제껏 사이 좋던 나그네들이 사이가 나빠져서, 서로의 우정을 못 믿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나그네들도 자연히 벚꽃나무 숲 아래를 지나지 않고, 일부러 다른 산길로 돌아가게 되어, 이윽고 벚꽃나무 숲은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산의 정적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지 몇 년인가 후에, 이 산에 산적이 한 사람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산적은 아주 잔인한 남자여서, 마을로 나와 인정 사정 없이 옷을 벗기고 사람을 죽였는데, 이런 남자라도 벚꽃나무 숲 아래에 오면 역시 겁이 나고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래서 산적은 그 후로부터 꽃을 싫어하게 되어, 꽃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로군, 어쩐지 기분이 나빠,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꽃 아래는 바람이 없는데도 웡웡하고 바람이 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한 점도 없고, 다른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습과 발소리만이 죽은 듯이 조용하고 차가운,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듯이, 영혼이 흩어져 생명이 점점 쇠퇴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싶어집니다만, 눈을 감으면 벚꽃나무에 부딪히는지라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더한층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적은 침착한데다 후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어서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라, 내년에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 먹었습니다. 올해는 생각할 마음이 들지 않으니 내년에 꽃이 피면 그 때 천천히 생각하자구, 하고 마음 먹은 것입니다. 해마다 그렇게 마음먹다가 벌써 10여년이나 지났고, 올해도 또, 내년에 되면 생각하자고 마음먹다가 또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처음에는 한 사람이었던 아내가 이젠 일곱명이나 되었고, 여덟 명째의 아내를 그녀의 남편 옷과 함께 또 길가에서 납치를 해왔습니다.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왔습니다.
산적은 여자의 남편을 죽일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딱히 뭐라 말할 수는 없어도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은 사물에 집착하는 일엔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때도 별달리 크게 마음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산적은 남자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몽땅 털고 나서는 여느 때처럼 빨리 꺼져, 하고 차 버릴 작정이었습니다만,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남자를 칼로 베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자신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그녀는, 산적이 돌아보자 털썩 주저 않아서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부터 너는 내 마누라야, 하고 말하자 여자는 끄덕였습니다. 손을 잡고 여자를 일으켜 세우자, 여자는 걷지 못하겠으니 업어달라고 말했습니다. 산적은 물론, 하고는 여자를 가볍게 업고 걸었습니다만, 험한 오르막길에 이르러, 여기는 위험하니까 내려서 걸으라고 말해도, 여자는 바싹 달라붙어 싫어싫어, 싫어요, 하며 내리지 않았습니다.
"너 같은 산사나이가 힘들어하는 언덕길을 내가 어떻게 걸을 수 있겠어, 생각해 봐."
"그래그래, 알았다구." 남자는 피곤하고 힘이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만 내려 줘. 힘들어서 좀 쉬겠다는 건 아냐. 눈알이 뒤통수에 달려있지 않으니까, 아까부터 너를 업고 있어도 왠지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어. 한 번만 아래로 내려와서 그 귀여운 얼굴을 보여 줘."
"싫어, 싫어" 하며, 또다시 여자는 힘껏 목에 매달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쓸쓸한 곳에선 한순간도 그냥 있을 수 없어. 네 집으로 잠시도 쉬지 말고 데려가 줘. 안 그러면, 나는 네 마누라가 돼주지 않을 거야. 나를 이렇게 쓸쓸히 만들 작정이라면, 나는 혀를 콱 깨물고 죽어버릴 거야."
"좋아, 좋아, 알았어 네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 주지."
산적은 이 아름다운 아내와 지낼 미래의 즐거움을 생각하곤, 온몸이 녹아드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으스대며 어깨를 펴고, 여자에게 앞산, 뒷산, 오른쪽 산, 휙 하고 한 바퀴 돌아보이곤,
"여기 있는 산이란 산은 다 내 것이야."
하고 말했습니다만, 여자는 그런 건 도무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의외라 섭섭해하면서,
"봐, 네 눈앞에 보이는 산이란 산, 나무란 나무, 계곡이란 계곡, 그 계곡에서 솟는 구름까지도 모두 내 거라니까."
"빨리 걷기나 해. 나는 이런 바위투성이의 벼랑 밑에는 있고 싶지 않아."
"좋아, 좋아. 이제 집에 도착하면 맛있는 진수성찬을 차려 줄게."
"이봐, 더 빨리 서두를 순 없어? 달려."
"이 언덕길은 나 혼자서도 그렇게 쉽게 달릴 수 없는 곳이야."
"넌 보기보다 약골이구나. 내가 어쩌다가 이런 한심한 사람의 마누라가 되어 버렸지? 아아, 아아, 이제부터 무슨 낙으로 살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이런 언덕길쯤이야."
"아아, 답답해. 너 벌써 지친 거야?"
"바보 같은 소릴. 이 언덕길을 빠져나가면 사슴도 못 쫓아올 정도로 달려 보이지."
"그렇지만 벌써 숨이 가빠 보여. 얼굴색이 새파랗잖아."
"뭐든지 일을 시작할 땐 그런 거야. 이제 시동이 걸리면, 네가 등뒤에서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빨리 달려 줄게."
그렇지만 산적은 몸이 마디마디 토막으로 나뉜 듯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눈앞이 어지럽고 귀에서 소리가 나고 쉰 목소리조차도 낼 기운이 없었습니다. 집 안에서 일곱 명의 아내가 마중 나왔습니다만, 산적은 돌덩이처럼 굳어진 몸을 풀고 여자를 내려놓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일곱 명의 아내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만, 여자는 일곱 명의 아내들의 더러움에 놀랐습니다. 일곱 명의 아내 중에는 옛날에는 꽤나 예뻧을 여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여자는 기분 나빠하면서 남자의 등뒤로 비켜서서는,
"이 산아낙네들은 뭐야?"
"이것들은 내 옛날 마누라들이야."
하고 남자는 곤란해하며 '옛날'이라는 말을 생각해 내 덧붙였는데, 얼떨결에 한 대답치고는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여자는 가차없었습니다.
"어머나, 이게 네 마누라들이야?"
"그거야 뭐, 난 너처럼 귀여운 여자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었거든."
"저 여잘 칼로 베어 죽여."
여자는 가장 균형 잡힌 얼굴을 하고 있는 한 여자를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그렇지만, 이봐, 죽이지 말고 하녀로 쓰면 되잖아?"
"넌 내 남편을 죽였으면서, 네 마누라는 죽일 수 없단 말이야? 그러고도 날 마누라로 삼을 작정이야?"
남자의 굳게 다문 잎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남자는 한번 펄쩍 뛰더니 그녀가 가리킨 여자를 찔러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숨쉴 틈도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이 여자야, 자, 이 여자야."
남자는 주춤했습니다만, 곧 서슴치 않고 걸어가선, 여자들의 목에 날이 넓은 칼을 쑥 하고 찔러넣었습니다. 목이 데굴데굴 구르는 사이에 여자의 윤기있고 맑게 울리는 목소리는 다음 여자를 가리키며 아름답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이 여자야."
지적당한 여자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악, 하고 외쳤습니다. 그 외침소리와 함께 칼날은 허공을 갈랐습니다. 남은 여자들은 일제히 일어서더니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놓치면 가만두지 않을 테야. 덤불 속에도 한사람 있어. 위쪽으로 한 사람 도망쳤어."
남자는 피 묻은 칼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숲을 달렸습니다. 딱 한 명, 미처 도망을 못가고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있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제일 못생겼고 절름발이였는데, 남자가 도망친 여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칼로 베어 죽이고 돌아와선 아무 생각 없이 칼을 들어올리자,
"됐어, 이 여자는. 이 여자는 내가 하녀로 쓸 테니까."
"내친 김에 다 죽여버릴게."
"바보 같으니. 내가 죽이지 말라고 하잖아."
'어어, 그렇군."
남자는 피 묻은 칼을 버리고는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눈앞이 아찔아찔했고, 엉덩이가 마치 땅에 달라붙은 듯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정적이 흐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습하는 공포감에 오싹한 기분으로 뒤돌아보자, 여자는 거기에 얼마간 처량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남자는 악몽에서 서서히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눈도 영혼도 자연히 여자의 아름다움에 빨려들어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불안했습니다. 어떤 불안인지, 왜 불안한지, 뭐가 불안한 건지, 남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의 영혼이 빨려들어갔기 때문에 마음 속의 불안한 파도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쩐지 비슷한 것 같군,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언젠가 있었어, 그것은,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아, 그래, 그거야. 생각이 나자 그는 흠칫 놀랐습니다.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입니다. 그 아래를 지나갈 때와 비슷했습니다. 어디가, 워가, 어떤 식으로 비슷한지는 잘 몰라도, 뭔가 비슷하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 정도의 일밖에 알지 못했고, 그로부터 일어날 일은 알지 못해도 신경이 안 쓰이는 성격이었습니다.
산 속의 긴 겨울이 끝나고, 산봉우리 쪽이나 계곡의 우묵한 곳의 나무그늘에는 눈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습니다만, 이윽고 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오려는지 봄기운이 하늘 가득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올해 벚꽃이 피면,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꽃 밑을 지나가려고 했을 때는 아직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꽃 밑으로 걸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걷는 동안에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앞에도 뒤에도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어디를 보아도 위를 덮는 벛꽃뿐인 숲 한 가운데서 꼼짝도 안 하고, 아니, 대담하게 땅바닥에 주저앉아 보자,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 여자도 데리고 갈까, 하고 문득 생각하곤, 여자 얼굴을 힐끗 보자, 가슴이 뛰어 서둘러 눈을 돌렸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여자가 알면 큰일이라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세차게 때렸습니다.
*
여자는 아주 제멋대로였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주어도, 꼭 불평을 했습니다. 그는 작은 새나 사슴을 잡으로 산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멧돼지도 잡고 곰도 잡았습니다. 절름발이 여자는 나무 싹이나 풀뿌리를 찾아 온종일 숲 사이를 헤맸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한번도 만족해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한테 매일 이런 걸 먹으라는 거야?"
"하지만, 아주 특별한 음식인걸. 네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이런 음식은 열흘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먹었어."
"너는 산사내니까 그걸로 족했겠지. 나는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긴긴 밤 내내 들리는 소리라곤 올빼미 소리뿐인, 이런 쓸쓸한 산 속에서, 하다못해 먹는 거라도 교토 요리(역자주: 작품 배경상 당시의 수도는 교토였음)에 뒤지지 않게 맛있는 걸 먹을 순 없어? 교토 바람이 어떤 건지. 그 교토의 바람을 맞을 수 없는 내 마음의 안타까움이 어떤 건지, 넌 몰라. 너는 나한테서 교토의 바람을 빼앗곤, 그 대신에 준 거라곤 까마귀나 올빼미 울음소리뿐이야. 너는 그걸 창피하다고도, 잔인하다고도 생각지 않는 거야?"
여자가 원망하는 이유를 남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교토의 바람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생활, 이 행복에 모자란 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여자가 원망하는 모습에 당황했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옳을지, 그녀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안타까워 괴로워했습니다.
지금까지 교토에서 온 여행객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모릅니다. 교툐에서 온 여행객들은 부자였고 소지품도 호화로워서, 교토는 그에게 좋은 봉이었으며, 모처럼 소지품을 빼앗아 왔는데 내용물이 신통치 않거나 하면 '쳇, 이 시골뜨기야'라든지 '천한 농사꾼아'하는 식의 욕을 퍼부어 댔습니다. 즉, 그가 교토에 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호화스런 소지품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고, 그는 그걸 빼앗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마음이 없었습니다. 교토가 어느 방향인지조차도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빗이라든지 머리에 꽂는 장식품이라든지 비녀라든지 연지 따위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가 진흙 묻은 손이나 산짐승의 피에 젖은 손으로 조금이나마 옷을 만지기라도 하면 여자는 그를 야단쳤습니다. 마치 옷이 그녀의 생명인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몸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집손질을 명했습니다. 그 옷은 홑겹의 옷 위에 가느다란 끈으로 묶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몇 겹이나 겹쳐 입고 수많은 끈을 이상한 형태로 묶어 불필요하게 길게 늘어뜨려, 색색의 장식물을 달아 하나의 모습을 완성시켜 가는 것이었습니다(역자주 : 일본의 기모노는 그 착용법이 까다로워 요즘에는 특별히 배우러 다닐 정도임). 남자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습니다. 그는 이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미가 완성되고, 그 미에 그 남자가 만족하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나의 개체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 불완전하고 이해 불가능한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물건을 완성시키고, 그 물건을 분해하면 무의미한 조각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그 나름대로 하나의 신묘한 마술처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남자는 나무를 잘라다가 여자가 명령하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무슨 물건이고, 그리고 무슨 용도로 만드는지, 그 자신 그것을 만드는 동안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호상(胡床)과 팔걸이였습니다. 호상이란 바로 의자입니다. 날씨 좋은 날, 여자는 이것을 밖으로 내놓게 하곤 양지에서, 또 음지에서, 앉아 눈을 감습니다. 방 안에서는 팔걸이에 기대어 생각에 잠기듯이.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지켜보는 남자의 눈에는, 모두 야릇하고, 요염하고, 관능적인 모습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마술은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고, 그 스스로가 그 마술의 조수이면서도, 실제로 행해지는 마술의 결과에 항상 의아해하며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름발이 여자는 아침마다 여자의 길고 검은 머리를 빗겨 줬습니다. 그 일을 위해 사용되는 물을, 남자는 계곡물 중에서도 특히 멀리 떨어진 맑은 샘에서 길어왔고, 그리고 특별히 그처럼 신경을 쓰는 자신의 고생을 반가워했습니다. 스스로 마술의 힘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것이 이젠 남자의 소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잘 빗겨진 검은 머리를 직접 만져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싫어, 그런 손은, 하고 여자는 남자를 제지하며 야단쳤습니다.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손을 치우고 멋쩍어하면서, 검은 머리에 윤기가 돌며 묶여서 얼굴이 드러나 하나의 미가 탄생되는 것을, 못다 꾼 꿈처럼 아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는 문양이 있는 빗이나 장신구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의미도 값어치도 두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만, 지금도, 물건과 물건과의 조화나 관계, 장식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마력은 알 수 있었습니다. 마력은 물건의 생명이었습니다. 물건 속에서도 생명이 있었습니다.
"네가 만지작거려서는 안돼. 왜 매일같이 손을 대는 거야?"
"신기하잖아."
"뭐가 신기해?"
"특별히 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말야."
하고 남자는 멋쩍어했습니다. 그는 놀라움을 느꼈습니다만, 놀라움의 대상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남자에게는 교토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라 모르는 대상에 대한 수치와 불안이었고, 박식한 사람이 미지의 것에 대해 품는 불안과 수치와 비슷했습니다. 여자가 '교토'라고 말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놀라 겁에 질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무서워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마음에 익숙지가 않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에도 익숙치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토에 대해 적대감만을 가졌습니다.
몇백 몇천이나 되는, 교토로부터의 여행자를 습격했지만, 나름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하고 그는 만족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떠한 과거를 생각해 내도, 배신이나 상처로 인한 불안이 없었습니다. 그걸 깨닫고는, 그는 항상 유쾌하고 또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는 여자의 미에 자신의 강인함을 대비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강하다는 자각 위에서 다소 힘들다고 생각되는 것은 멧돼지뿐이었습니다. 그 멧돼지도 사실은 그리 무서워할 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교토에는 날카로운 이를 가진 인간이 있나?"
"활을 가진 사무라이는 있어."
"하하하, 활이라면 나는 계곡 저편의 참새라도 맞혀. 교토에는 칼이 부러질 것 같이 딱딱한 피부를 가진 인간은 없겠지?"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가 있어."
"갑옷에 칼이 부러지나?"
"부러져."
"하지만 나는 곰도 멧돼지도 굴복시키니까."
"네가 정말로 강한 남자라면, 나를 교토로 데려가 줘. 네 힘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 교토의 멋으로 내 주위를 장식해 줘. 그렇게 해서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면, 너는 정말로 강한 남자야."
"문제없지."
남자는 교토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교토에 있는 모든 빗이라든지 머리 장신구라든지 비녀라든지 옷이라든지 거울이라든지 입술 연지를 사흘도 채 못 되는 사이에 산처럼 쌓아올릴 작정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될 게 없었습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교토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벚꽃나무 숲이었습니다.
이틀이나 사흘 뒤면 벚꽃나무 숲이 활짝 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야말로, 하고 그는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벚꽃나무 숲의 꽃이 만발한 한가운데에서, 꼼짝도 않고 쭉 앉아 있어 보이마. 그는 날마다 몰래 벚꽃나무 숲으로 나가서 꽃봉오리 크기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제 사흘만 있으면 떠나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교토가 나를 부르고 있어. 출발에 준비가 필요해?"
하고 여자는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렇지만 약속이 있어."
"네가? 이런 산구석에서도 약속할 사람이 있어?"
"그거야 아무도 없지만. 이봐, 그렇지만 약속이 있어."
"그거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네. 아무도 없는데 누구랑 약속을 한단 말야?"
남자는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벚꽃이 피어."
"벚꽃하고 약속한 거야?"
"벚꽃이 피니까 그걸 보고 떠나야 해."
"무슨 이유에서?"
"벚꽃나무 숲 아래에 가 봐야 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왜 가 봐야 하는 거냐고?"
"꽃이 피니까."
"꽃이 피니까 그걸 보고 떠나야 해."
"무슨 이유에서?"
"꽃 아래에는 차가운 바람이 가득하기 때문이지."
"꽃 밑에 말야?"
"꽃 아래엔 끝이 없기 때문이지."
"꽃 아래에?"
남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었습니다.
"나도 꽃 밑으로 데려가 줘."
"그건, 안 돼."
남자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면, 안 돼."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 심술궂은 웃음을 그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심술궂은'이라는 식으로는 판단하지 않고, '칼로 잘라도 잘리지 않는'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증거로, 쓴웃ㅇ므은 그의 머리에 도장을 찍은 듯이 박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웃음은 생각해 낼 때마다 ㅋ라날처럼 콕콕 머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떼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째가 되었습니다.
그는 몰래 나갔습니다. 벚꽃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한 발짝 내디딜 때, 그는 여자의 쓴웃음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이제껓 없던 날카로움으로 머리를 찔렀습니다. 그것만으로 그는 벌써 혼란을 느꼈습니다. 벚꽃 아래의 차가움은 끝없는 사방에서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그 바람을 맞아 투명해졌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윙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으며, 이미 바람만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졌습니다. 그는 달렸습니다. 이 무슨 허공일까요? 그는 울며, 기도하며, 발버둥치며, 오로지 도망치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꽃 아래를 다 지난 것을 알았을 때, 꿈 속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 듯한 기분을 되찾았습니다. 꿈과 달랐던 것은, 실제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육체의 괴로움이었습니다.
*
남자와 여자와 절름발이 여자는 교토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밤마다 여자가 명령하는 저택에 숨어들어갔습니다. 옷과 보석과 장신구도 가지고 나왔습니다만, 여자의 마음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여자가 무엇보다도 가지고 싶어한 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목이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이미 몇십 개나 되는 저택 주인들의 목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방의 사방을 칸막이로 나누어 목을 늘어놓고 어떤 목은 매달아, 남자는 목의 수가 너무 많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여자는 일일이 기억하고 있어서, 이미 털이 빠지고 피부가 썩고 백골이 되어도, 어디 살던 누군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나 절름발이 여자가 목들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면 화를 내면서, 여기는 누구 가족, 여기는 누구 가족 하며 일일이 잔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여자는 매일 목들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목은 부하를 데리고 산보하러 나갑니다. 목의 가족한테 다른 목의 가족이 놀러옵니다. 목이 사랑을 합니다. 여자 목이 남자 목을 차 버리고, 또 남자의 목이 여자 목을 버리고 여자 목을 울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공주님 목은 재상의 목에게 속았습니다. 재상의 목은 달이 없는 밤에, 공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장하여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인연을 맺은 후에는 공주님의 목이 알아차렸습니다. 공주님 목은 재상의 목을 미워할 수가 없어 자신의 슬픈 운명에 눈물짓고,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재상의 목은 비구니 절로 가서, 비구니가 된 공주님 목을 범합니다. 공주님 목은 죽으려고 했지만 재상의 꼬임에 넘어가 비구니 절을 도망쳐 야마시나 마을에 숨어 재상의 목의 첩이 되어 머리를 기릅니다. 공주의 목도 재상의 목도 이제는 털이 다 빠지고 살이 썩어 구더기가 끼고 뼈가 다 보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목은 술잔치를 벌이고 사랑에 빠져 희희덕거리고, 턱뼈와 턱뼈가 부딪쳐 딱딱 소리가 나고, 썩은 살이 찐득찐득 달라붙어 코도 찌부러지고 눈알도 빠져 있었습니다.
찐득찐득 달라붙어 두 사람의 모습이 문드러질 때마다 여자는 크게 기뻐하며, 요란스럽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이봐, 볼을 먹어 보렴. 아아, 맛있다. 공주님의 목도 먹어주자꾸나. 자, 눈알도 갉아먹읍시다. 훌쩍훌쩍 들이마시죠. 자, 쩝쩝쩝쩝. 어머, 맛있어라. 죽여 주네. 자, 실컷 베어먹어 봐."
여자는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아름답고 맑은 웃음소리입니다. 얇은 도기가 울리는 것 같은 청아한 목소리였습니다.
스님의 목도 있었습니다. 스님의 목은 여자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나쁜 역할을 맡아, 밍무을 받고, 온갖 고문을 당하다 죽거나, 관리에게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목은 목이 된 후에 오히려 머리가 자랐는데, 이윽고 그 머리도 빠지고 다 썩어 백골이 되었습니다. 백골이 되자, 여자는 다른 스님의 목을 가지고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새로운 스님의 목은 아직 젊고 싱싱한 청년의 아름다움이 남아있었습니다. 여자는 기뻐하며 책상에 올려놓고 술을 스며들게 하고 볼을 비비고 핥거나 간질이거나 했습니다만, 금방 싫증을 냈습니다.
"좀더 살이 찐 밉살스러운 목을 가져와."
여자는 명령을 했습니다. 남자는 귀찮아져서 다섯 개 정도를 등에 지고 왔습니다. 늙어 쭈글쭈글한 노승의 목도, 눈썹이 짙고 볼이 두껍고 코는 개구리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생긴 얼굴도 있었습니다. 귀가 뾰족한 말같이 생긴 스님의 목도, 무척 온순하고 얌전하게 생긴 목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의 마음에 든 것은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쉰 살 정도 된 큰스님의 목이었는데, 추남에다 눈꼬리가 처지고, 볼이 늘어지고, 입술이 두껍고, 그 무게로 입이 벌어져 있는 것 같은 칠칠치 못하게 생긴 목이었습니다. 여자는 처진 눈꼬리의 양 끝을 양 손의 손가락으로 누르고, 치켜올려서 배배 틀기도 하고, 벌어진 콧구멍으로 두 개의 막대기를 질러 넣거나, 거꾸로 세워서 굴리거나, 부둥켜안고 자신의 젖을 두꺼운 입술 사이로 밀어넣어 빨리거나 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싫증을 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의 목이 있었습니다. 청아하고 조용하고 고귀하 목이었습니다. 어린애 같고, 그러면서도 죽은 얼굴마저 묘하게도 어른스러운 그늘이 있었고, 같은 눈꺼풀 깊은 곳에 즐거운 기억도 슬픈 기억도 어른스런 기억도 한꺼번ㅇ 뒤섞여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는 그 목을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처럼 귀여어했습니다. 검은 머리를 빗겨 주고, 얼굴에 화장을 해주었습니다. 이러는 게 좋겠어, 아니 요렇게 해 볼까 하며 정성을 다하여서, 마치 꽃향기가 피어오를 것 같은 고운 얼굴이 되었습니다.
아가씨 목을 위해서 한 사람의 젊은 귀공자의 목이 필요했습니다. 귀공자의 얼굴도 정성을 다하여 화장을 하여, 두 사람의 젊은이의 목은 미칠 듯이 불타는 사랑놀이에 빠졌습니다. 토라지기도, 화내기도, 미워하기도, 거짓말을 하기도, 속이기도, 슬픈 얼굴을 해보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정열이 한꺼번에 불타오를 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태워 타오르는 하나의 불길로 솟구쳤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쁜 사무라이라든지 호색한이라든지 못된 중이라든지 더러운 목이 방해를 놓아, 귀공자의 목은 발길에 차이고 두들겨 맞은 후에 죽임을 당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앞에서 뒤에서 더러운 목이 바글바글 아가씨 목을 덮쳐, 아가씨 목은 더러워 썩은 살이 달라붙고 맹수와 같이 날카로운 이빨로 찢쳐, 코가 없어지거나 머리칼이 뽑히거나 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아가씨의 목을 바늘로 찔러서 구멍을 내고 작은 칼로 자르거나 파내거나 해 어떤 목보다도 더러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목으로 만들어 내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교토를 싫어했습니다. 교토의 신기함에도 익숙해지자, 정이 들지 않는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토에서는 남들처럼 좋은 사냥복을 입었지만 정강이를 내놓고 걸어다녔습니다. 낮에는 칼을 꽂고 다닐 수도 없습니다.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야 하고, 창녀가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돈을 내야 합니다. 시장의 상인들은 그를 놀렸습니다. 야채를 싣고 팔러오는 시골 처녀들도, 아이들까지도 놀렸습니다. 창녀들도 그를 비웃었습니다. 교토에서는, 귀족은 소가 끄는 마차로 길 한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사냥복을 입은 맨발의 하인은 대개가 대접받은 술에 불그레한 얼굴을 하고 거만하게 굴며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도 길에서도 절간 뜰에서도 그에게 멍청이라느니 바보라느니 느림보라느니 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래서 이젠 그 정도의 일엔 화가 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남자는 무엇보다도 교토 생활이 따분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인간들이란 따분한 것이라고 절실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들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큰 개가 걷고 있으면 작은 개가 짖습니다. 남자는 큰 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하거나 남을 부러워하거나 혼자 기분 나빠하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것이 딱 질색이었습니다. 산 속의 짐승도 나무도 강도 새들도 귀찮게 굴지는 않았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교토란 곳은 따분한 곳이로군." 하고 그는 절름발이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넌 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난 교토가 따분하지 않아."
하고 절름발이 여자는 대답했습니다. 절름발이 여자는 하루 종일 요리를 만들고 빨래하고 동네 사람하고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교토에서는 수다를 떨 수 있어서 따분하지 않아. 나는 산이 따분해서 싫어."
"너는 수다가 따분하지 않냐?"
"전혀. 누구나 수다를 떨고 있으면 따분하지 않은 거야."
"나는 수다를 떨면 떨수록 따분한데."
"너는 말을 안 하니까 따분한 거야."
"바보 같은 소리. 수다를 떨면 따분하니까 말을 안 하는 거야."
"그렇지만 이야기를 해 봐. 아마 따분한 걸 잊어버릴 테니."
"뭘?"
"뭐든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싶은 것 없어."
남자는 지긋지긋해하면서 하품을 했습니다.
교토에도 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는 절이 있거나 암자가 있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했습니다. 산에서는 교토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집이 있다니! 게다가 얼마나 더러운 경치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매일 밤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을 낮에는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따분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흥미도 없었습니다. 칼로 치면 목이 댕그랑 하고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목은 부드러운 것이었습니다. 목의 감촉은 전혀 느껴지는 게 없었고, 무를 자르는 것과 다를게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히려 그 목들의 무게 쪽이 의외로 느껴졌습니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종루에서는 한 사람의 중이 자포자기한 듯이 종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녀석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살아야 한다면, 나라도 그놈들을 목으로 만들어서 사는 쪽을 택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자의 욕망이 한이 없기 때문에, 그 일에도 따분해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여자의 욕망은,말하자면 항상 끝도 없이 하늘을 직선으로 날고 있는 새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쉴 새도 없이 항상 계속해서 날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새는 지치지 않습니다. 항상 상쾌하게 바람을 가르고, 휙휙 기분 좋게 무한히 계속 날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단지 새일 뿐이었습니다.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며, 가끔 계곡을 넘을 정도가 고작인, 가직에 앉아 졸고 있는 부엉이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민첩했습니다. 잘 움직이고, 잘 걷고, 그의 동작은 생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엉덩이가 무거운 새와 같았습니다. 끝없이 직선으로 나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산 위에서 교토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하늘을 하 마리 새가 직선으로 날아갑니다. 하늘은 낮에서 밤이 되고, 밤에서 낮이 되고, 끝도 없는 명암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이 언제까지고 그저 끝도 없는 명암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남자는 끝이 없음을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끝없이 반복되는 명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의 머리는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생각으로 인한 피로 때문이 아니라, 생각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여자는 언제나처럼 목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자, 여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오늘밤은 남자 춤을 추는 매춘부의 목을 가지고 와 줘. 빼어나게 예쁜 매춘부라야 해. 춤을 추게 할 테니까. 내가 이마요(역자주 : 중고 시대 가요의 하나)를 들려 줄 거야."
남자는 아까 산 위에서 바라보았던 끝없는 명암을 생각해내려고 했습니다. 이 방은 언제까지나 끝없는 명암이 반복되는 그 하늘일텐데, 그 하늘을 더 이상 생각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새가 아니라, 역시 아름다운, 여느 때와 같은 여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싫어."
여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다가 웃었습니다.
"어머나, 너도 겁이 난? 너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겁쟁이었구나."
"그런 겁쟁이가 아냐."
"그럼, 뭐야?"
"끝이 없어서 싫어진 거야."
"어머, 이상도 해라. 무슨 일이나 끝 같은 건 없는 법이야. 날마다 날마다 끝없이 밥을 먹고, 날마다 날마다 끝없이 잠자고. 끝 같은 건 없어."
"그것과는 달라."
"어떤 식으로 다른데?"
남자는 대답이 궁해졌습니다. 그러나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들볶일 것을 피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춤추는 매춘부의 목을 가져와."
여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습니다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어떤 식으로 다른 것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점차 밤이 되었습니다. 그는 또 산 위에 올랐습니다. 이제 하늘도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문득, 하늘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떨어집니다. 그는 목이 졸리는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그것은 여자를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하늘의 끝없는 명암 속을 계속 달리는 것은, 여자를 죽임으로써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는 안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서 새의 모습이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나인 것일까? 그리고 하늘을 끝없이 직선으로 나는 새가 내 자신이었던 걸까? 그는 의심했습니다. 여자를 죽이면, 나를 죽여 버리는 게 되나? 나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왜 하늘을 떨어뜨려야 하는 건가? 그것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생각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생각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고통뿐이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그는 여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잃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산 속을 헤매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그는 벚꽃나무 아래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벚꽃나무는 한 그루였습니다. 벚꽃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는 놀라 일어났습니다만, 그것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 하면, 단지 한 그루의 벚꽃나무였기 때문에. 그는 문득 스즈카 산의 벚꽃나무 숲을 생각해 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산의 벚꽃나무 숲도 한창일 것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리움에 자신을 잊고, 생각에 깊이 잠겼습니다.
산으로 돌아가자. 산에 돌아가는 거야. 왜 이 단순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일까? 왜 하늘을 떨어뜨릴 생각 따위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그는 악몽에서 깬 것 같았습니다.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껏 그 느낌마저 잊어버리고 있던 초봄의 산냄새가 강렬하게 몸에 다가와 싸늘하게 느껴졌습니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자는 기쁜 듯이 그를 맞이했습니다.
"어디 갔었던 거야? 무리한 요구로 너를 괴롭혀 미안했어. 그렇지만, 네가 없어지고 나서 내가 얼마나 쓸쓸했는지 알아줘."
여자가 이렇게 상냥했던 적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남자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의 결심은 녹아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나는 산에 돌아가기로 했어."
"나를 남겨 두고? 그런 매정한 생각이 어째서 네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 거지?"
여자의 눈은 분노로 타는 듯했습니다. 그 얼굴은 배반당한 분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너는 언제부터 그런 박정한 사람이 된 거야?"
"그러니까, 나는 교토가 싫다니까."
"내가 곁에 있어도?"
"나는 쿄토에 살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렇지만, 내가 있잖아. 너는 내가 싫어진 거야? 나는 네가 집에 없는 동안 너만을 생각했었어."
여자의 눈에 눈물 방울이 맺혔습니다.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자의 얼굴에는 이미 분노도 사라져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냉정한 마음을 원망하는 애절함만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는 교토가 아니면 살 수 없잖아? 나는 산이 아니면 살 수 없어."
"나는 너와 함께가 아니면 살 수 없어. 내 마음을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산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같이 산으로 돌아갈게. 나는 단 하루라도 너와 떨어져 살 수 없어."
여자의 눈은 눈물로 젖어 있었습니다.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의 뜨거움은 남자의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과연, 여자는 남자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목은 여자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을 여자를 위해 가져다주는 것은 그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자의 일부였습니다. 여자는 그것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남자의 향수가 충족되었을 때, 다시 교토로 데리고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넌 산에서 살 수 있겠어?"
"너와 함께라면 어디서나 살 수 있어."
"산에는 네가 갖고 싶어하는 목이 없는데?"
"너하고 목하고 어느 쪽인가를 하나 택해야 한다면, 나는 목을 포기하겠어."
꿈이 아닌가 하고 남자는 의심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꿈에서조차 바라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와, 방금 전까지의 괴로우 생각은 이젠 손도 닿지 않는 저 너머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는 이렇게까지 상냥하지 않았던 어제까지의 여자를 잊었습니다. 지금과 내일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출발했습니다. 절름발이 여자는 남겨 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출발할 때, 여자는 절름발이 여자에게, 곧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하고 몰래 말을 남겼습니다.
*
눈앞에 예전 산들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부르면 곧 대답할 것 같았습니다. 옛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그 길은 이젠 밟는 사람도 없고, 길의 모습도 없어져, 단지 숲, 그냥 산 언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길을 가면, 벚꽃나무 숲을 지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업어 줘, 나는 이런 길도 없는 산길은 걸을 수 없어."
"어, 좋아."
남자는 가볍게 여자를 업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처음 만난 날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날도 그는 여자를 업고 고개 너머 쪽의 산길을 올랐던 것입니다. 그날도 행복으로 마음이 가득했었습니다만, 오늘의 행복은 더욱 풍요로운 것이었습니다.
"너를 처음 만난 날도 업어달라고 했지."
하고, 여자도 생각난 듯이 말했습니다.
"나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남자는 기쁜 듯이 웃었습니다.
"봐, 보이지? 저게 모두 내 산이야. 계곡도 나무도 새도 구름까지도 내 산이야. 산은 좋아. 달리고 싶어지잖아. 교토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첫날, 업혀서는 널 달리게 했었지."
"그래, 맞아. 아주 지쳐서 어지러웠지."
남자는 벚꽃나무 숲에 꽃이 한창인 것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한 날에, 그 숲의 활짝 핀 나무 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벚꽃나무 숲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야말로 온통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바람에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땅 위엔 온통 꽃잎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 꽃잎들은 다 어디서 떨어진 것일까? 왜냐 하면, 바라다보이는 머리 위에는 꽃잎이 한 잎도 떨어진 것 같지 않은, 활짝 핀 꽃송이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활짝 핀 꽃나무 밑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주위는 고요하고, 점차 싸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문득 여자의 손이 차가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그 순간, 남자는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귀신인 것을. 갑자기 휙 하고 차가운 바람이 꽃 아래 사방 끝에서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은, 전신이 보랏빛이고 얼굴이 큰 노파였습니다. 그 입은 귀까지 찢어지고, 오그라든 머리칼은 녹색이었습니다. 남자는 달렸습니다. 흔들어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귀신의 손에 힘이 들어가 그의 목을 파고들었습니다. 그의 눈은 가물가물해졌습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귀신의 손을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손의 틈새에서 목을 빼자, 귀신은 등에서 미끄러져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귀신에게 덤벼들 차례였습니다. 귀신의 목을 졸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여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고, 여자는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흐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눈을 더 크게 뜨려고 했습니다만, 시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가 목졸라 죽인 것은 아까와 다름없이 역시 그녀였고, 똑같은 여자의 시체가 거기에 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호흡은 멎었습니다. 그의 힘도, 그의 생각도, 모든 것이 동시에 멎었습니다. 여자의 시체 위에는 이미 몇 갠가 벚꽃 잎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는 여자를 흔들었습니다. 불렀습니다. 헛수고였습니다. 그는 와 하고 엎어져 울었습니다. 아마 그가 이 산에 살기 시작하고 나서 이날까지, 운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서서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등에는 하얀 꽃잎이 쌓여 있었습니다.
거기는 바로 벚꽃나무 숲의 한가운데쯤이었습니다. 사방은 꽃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무서움이나 불안은 없었습니다. 꽃의 끝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도 없었습니다. 다만 고요히, 그리고 하늘하늘, 꽃잎이 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거기에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겐 이제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요.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의 비밀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고독'이라고 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 하면 남자는 이미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스스로가 고독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비로소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머리 위에 꽃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 조용히 끝없는 허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늘하늘 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그 밖에는 어떤 비밀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오로지 하나 미적지근한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가슴의 슬픔인 것을 알았습니다. 꽃과 허공의 싸늘한 차가움에 감싸여, 희미하게 따뜻한 덩어리가 조금씩 이해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여자 얼굴 위의 꽃잎을 집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닿으려고 했을 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손 아래에는 쌓인 꽃잎만 있을 뿐, 여자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단지 몇 잎의 꽃잎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잎을 헤치려고 했던 그의 손도 그의 몸도, 이미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엔 꽃잎과, 차가운 허공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습니다.
원문 전문 : 아오조라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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