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카나에 <속죄> 읽는중 └찌끄러기

 특징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맑은 공기, 저녁 여섯시에는 "그린 슬리브즈"의 멜로디. 그런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처참한 미소녀 살해사건. 범인이라 지목되는 남자의 얼굴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네 명의 소녀들에게 던져진 격정의 말이, 그녀들의 운명을 크게 엉키게 만든다ㅡ이걸로 약속은, 지켜진 게 되는 걸까요?
 충격의 베스트셀러 <고백>의 저자가 비극의 연속 속에서 "죄"와 "속죄"의 의미를 묻는, 박진의 연작 미스터리. 서점대상 수상후 제 1작.


 앞날개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는데, 좀 뿜긴다. 아니 내용 면이야 뭐 너무 선정적이지도 않게 잘 요약해 놨지만, 두번째 문단이 좀.
 "죄"와 "속죄"의 의미를 묻는다니, 그냥 이야기를 썼을 뿐이잖아? 묻고 답하고 할 자시고가 어딨냐능'ㅅ'ㅗ
 
 뭐 단적으로 말하면 어른 남자가 어린 여자애를 강간하고 죽이는 걸 소재로 삼고 있다.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른남자X어린여자 크리는 계속 반복된다.
 좋구나아... 이런 괴작이 햇볕 아래 떳떳이 등장하고, 재밌게 읽혀지다니....
 구원받은 기분이다.

 비꼬는 것 같은 말투가 되었지만 진짜로 그런 기분이다. 난 절대적으로 괴작들의 편!
 하지만 이게 우리나라에서 나왔으면 작가의 인격이 존나 의심받았겠지. 마녀사냥이라도 당했을지도 모른다.
 뭐, <고백> 도 마찬가지지만.

 <고백> 읽었을 땐 온다X미야베라고 느꼈지만, 지금은 좀 더 분명하게 감이 잡히는 듯.
 온다X키리노 나츠오.
 근원을 거슬러 가면 유메노 큐사쿠.
 이 작가는 사회파 따위가 아니다. 그렇게 썼었지만 내가 바보였어....
 무엇보다도 奇想의 작가인 게 틀림없는데......
 奇想의 공간이 이세계나, 뒷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레벨이 높다. 란포나 유메큐스타일인데, 유메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유메큐의 서간체는 "뇌내지옥"에 특화된 스타일이었다. 뇌내지옥이란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奇想의 세계인데, 이걸 발화자랑 수화자랑의 거리가 가까운 스타일로 전한 게 서간체라고 생각한다. 미나토 카나에의 스타일은 서간체라기보단 고백체인데, 이것은 더욱 가깝다. 이거슨 화자랑 수화자랑의 관계 밖의 객관적인 세계를 지워버리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이게 그럴듯하게 되면 객관적이지 않더라도, 엄청나게 리얼해진다.
 리얼하다는 건 어차피 "그래, 그래" 정도의 감각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해하면 그만큼 리얼하다.
 동의하면 그만큼 리얼하다.
 압도당하면 그만큼 리얼하다!
 미나토 카나에의 이야기는 읽는 이를 '압도하는' 박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리얼함'으로 받아들여진다.
 여튼 미나토 카나에의 奇想은 이야기속의 "화자"들의 뇌내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계기가 되는 사건 자체의 충격, 음습함도 엄청나며, 현실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사건을 거울로 하고 있으므로, 사회파라고 헷갈리는 것도 그럴 법하다.
 그 奇想을 전달하는 방식과 성격에서 온다리쿠와 키리노나츠오를 떠올렸는데, 일단은 온다리쿠.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사물에 대한 특정한 보는 방식이랄까, 특정 의미를 발견하는 기법이라고 할지. 여튼 시선의 각도 같은 게 필요한데, 그게 온다 리쿠와 닮았다.
 온다여사가 이야기 만드는 방법 중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게, "중인환시"의 '시각' 이다. 미나토 카나에도 다수의 화자를 통해 중인환시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과거"로 향하는 이야기의 벡터도 온다 리쿠와 닮았다.
 뭐, 이 정도는 우연히 닮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奇想의 성격. 이건 단적으로 말해, 악의다.
 곁가지를 붙이자면, 여자의 악의다.
 여자의, 타인에게 향하는 악의.
 여자의, 자신에게 향하는 악의다.
 후자는 피해의식이라 불리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남자의 악의도, 소년의 악의도 존재하지만 핵심은 언제나 여자의 악의고 피해의식. <고백>이든 <속죄>든.
 이건 키리노 나츠오 여사의 소설을 연상케 하지만, 으으음~. 미나토선생은 키리노선생보단 격이 떨어지는 듯하다. 키리노여사의 소설엔 항상, 하나가 더 있었으니까!
 더 중요한 것이!
 여자에게 향해지는 "세상"의 악의란 게.
 하지만 "세상"이 (객관적인 세계가) 온다 리쿠 효과(...........)로 희미해진 미나토 카나에의 이야기에는, 세상의 악의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백에서는 여러가지 사회문제, 속죄에서는 미성년자 강간 및 살해라는 <세상의 악의> 그자체의 상징 같은 사건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기에, 아슬아슬 괜찮았다.
 이 아슬아슬 괜찮은 선을 정줄놓아버리는 순간 미나토 카나에는 완전히 내 취향의 어둠의다크 죽음에데스 운명에데스티니를 맞겠지.
 진정한 괴작 작가가 되는 거다.
 아아.........
 서, 설렌다?!

 여자든 남자든 인간의 악의를 대놓고 드러내는 작품은, 난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쉬우니까 그거.
 뭐 악의를 그리겠다면야ㅡ 인간의 악의가 있으면 세상의 악의가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균형이 맞아야 아름답다.
 허무에의 공물이 그랬고.
 키리노 나츠오 여사 작품들도 엄청난 수준이었지만, 미나토 카나에는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정신줄이고 이성이고 뭐고 날려버리고 어둠에다크에 몸을 맡겨 주기를 바라지만.......

 난 괴작의 편!
 괴작 작가의 편이니까!

 괴작이 보고싶으니까!
 괴, 괴작을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쁘냐!!

 이 정도로 잘 쓰는 작가가 모처럼 나왔는데.
 화려하게 몰락하는 모습이 보고싶다.....
 이, 이것은 탐미?!
 진성탐미?!

 소녀심입니다. 존중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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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오렐리아 2009/11/08 23:46 # 답글

    그런데 이런 작품이 나오는 걸 보니, 우리 사회는 리얼하지 않구나.
    전기적이다.
    나는 기이의 세계에서 이미 살고 있습니다.
    기, 기쁘다?!
  • 오렐리아 2009/11/08 23:47 # 답글

    <현실 세계>에서 <이상한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를,
    이상하지 않은 척 하면서 이상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미나토 카나에 스타일.
  • sTWIGGY 2009/11/09 09:03 # 답글

    역시 괴작이 좋죠! 저도 얼마 전에야 <고백>을 봤는데 정말 괴작의 가능성 있는 작가……. 속죄도 얼른 나왓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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