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히누마 소지 찬미 穢れよ。乙女

 1. 인터넷은 참 좋다. 돈 주고도 못 읽을 글들이 공짜로 굴러다닌다.
 '비용'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정보를 찾을 시간. 산만함이라는 정신적인 음보정. 그리고 상당수가 의도와는 상관 없이 만나게 된다는 우연성.

 2. <창작은 인간의 일이나 편집은 신의 일>이라고 스티븡킹왕쨩이 말했으나 아무래도 그게 아니다.
 교정이야말로 신의 업적이다.
 판 바꿔 나올 때마다 세심하게 교정교열을 했다는ㅡ나카이 히데오 본인도 노력했고ㅡ <허무에의 공물> 신장판 4쇄에서 오식을 발견하고 인위무상을 느낌.
 어디냐면 코지의 소설 부제 <하나모요우 린네노 마가토리>라는 제목이 처음 등장할 때(였다 아마), 후리가나가 <하나모우...>라고 되어 있다.
 무상하지, 정말로.
 아. 그리고 <천계의 기>에서도, 딱 하나지만 있었다. 여기는 오자가 아니라 탈자. 행바꿈 하는 데 걸려서 한자 한 글자가 몽땅 빠져 있었다. 어디였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난감하네. 좀 뒤쪽에 있었는데.
 저 꼼꼼하기로 악명높은 창원추리문고에서조차 오탈자가 있다니.
 시드노벨 교정 못한다고 깔 일이 아니라는 걸 정말 절절이 느낀다. 이거슨 인간이 인간이기에 비롯된 비극이라능...뭐어, 예전엔 나도 교정교열 단계의 열악함 못 참고 미친듯이 까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다고나 할까, 무심한 듯 시크해졌다.
 오식이야 뭐, 뇌내교정 해서 보면 된다.
 오문비문은 오문비문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을 음미하면 된다.

 3. <배우의 신체성에 해당하는 것>이니,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장>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허무에의 공물>에서 내가 본 건 히누마 소지라는 인물의 육체다. 소지를 묘사하는 나카이 히데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히누마 소지의 신체가 되는 것이다. 이건 그의 이목구비나 피부의 질감, 머리카락의 색, 의복의 모양 같은 것 뿐 아니라 그가 상황 속에 처했을 때의 미묘한 분위기나 목소리의 톤, 물론 정신성 같은 것도 포함한다.
 고순도로 "인물"의 신체를 구성하는 문체. 게다가 탐미파 작가의 문장이다. 빙켈만은 "솔직히 남자를 사랑할 줄 모르는 놈들이 그리스 미술이 뭔지 알기나 하겠냐" 는 식으로 말했지만 내 심정도 같다. 솔직히 남자의 몸을 사랑할 줄 모르는 놈들이 아름다운 남자를 쓴다는 게 뭔지 알기나 하겠냐.
 과문한 탓이 크겠지만 요즘은 이런 문체 드물다.
 소설 속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게 하는 문체가.
 '소설 속 여자'가 관건이 된다면 얼마든지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의 신체를 사랑스럽게 그려내는 문체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ㅡ씹떡섹스어필이건 정서적인 차원이든ㅡ 테크니컬하게 개발되고 쓰이는 것 같다.
 내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남자'의 글은 한결같이 자기 신체에 대한 혐오로 일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남자놈 몸 따윈 보기 역겹다" 등등의 발언이다. 미학이네 뭐네가 들어가기 이전에, 생리적으로 혐오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취향으론 여자가 쓴 '아름다운 남자'보다는 남자의 눈으로 본 그것을 더 고평가하기 때문에, 저런 정신풍토가 한없이 착잡하다.
 
 4. 그러고보면 옛날부터 <죽음과 소년>이라는 걸 좋아했다. 씹떡용어로 아니무스라는 것이다.
 죽음이라거나, 니힐 같은 걸 품고 있는 타입의 남성상을 좋아했다.
 히누마 소지도 언뜻 그런 계통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죽음 혹은 니힐이 내면화된 것이 아니라, 외재하고 있는 타입이다.
 히누마 소지는 오히려 외재하는 죽음과 니힐에 저항한다.
 이제와서 이런 타입의 남자가 가슴속에 하트가 되어버렸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나도 뭔가 변하고 있는 건가.
 소지는 내 첫사랑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첫사랑이어야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아 그러고보니... 소지한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구나. 하여간 무레타 개새끼가 문제. 이 집착 광공 새끼...
 <천계의 기>에선 소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의미의 황야에 떨어진 창백한 천사> 라고. 무지 거창하다.
 근데 저게 정말로 마음에 든다. 음음 그렇지. 소지님은 천사야.
 
 아참. 소지가 즐겨 입는 사쓰마가스리라는 기모노에 대해 옛날에 찾아봤다.
 <목면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엄청난 고급 기모노라고 한다.
 남녀 옷이 따로 있는 건지, 그냥 남성용만 있는 건지.



 이거시 사쓰마가스리
 소지가 사쓰마가스리를 입고 나오는 부분은 두 곳이다.

 肌に染みるほどな薩摩絣の胸もとから、淸潔な白シャツがのそいている、明治の書生っぽめいた姿も、澄んだ湖を思わせる瞳の印象も、六年前とほとんど変らない。

 いつものように、肌に染みるほど藍の匂う薩摩絣を着込んだ蒼司は、

 첫번째 부분을 읽을 때 <사쓰마가스리>의 색이 나오지 않았는데, 두번째 부분에서 갑자기 <언제나처럼 피부에 스밀 정도로 아름다운 남색 광택이 도는> 사쓰마가스리라고 형용되자 좀 당황했는데, 아무래도 사쓰마가스리라는 것의 색깔이 대부분 남색인 것 같다.
 그나저나 藍の匂う라는 표현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운치 있다. 肌に染みるほど도 마찬가지고. 이즈미 교카의 소설에서도 비슷한 표현법을 본 것 같은데, 옷감의 색이 피부에 스민다는 것은, 옷감의 색감이 그만큼 좋다는 뜻도 있지만, 피부색이 투명하다는 뜻 역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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