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완벽한 <허무> : 테마에 대하여 └병신같지만 왠지 위대해

  <허무에의 공물> 은 나카이 히데오 자신이 <안티 미스터리>임을 내세운 작품이다. 적어도 일본에 한정하자면, 이전에는 <안티 미스터리>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다.
   이 안티 미스터리, 반추리소설이라는 용어에 요즘의 팬들조차도 혼란에 빠지곤 하고, 나 자신도 이게 도대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팬들은 <안티 미스터리란 미스터리적인 방법론을 따르면서 결국 미스터리적 목적을 포기하거나, 배반하는 소설> 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또 한편에서는 <안티 미스터리란 곧 미스터리에 대한 비판론으로 쓰여진 메타소설> 혹은 <미스터리의 불가능성을 보이기 위해 쓰여진 것> 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허무에의 공물은 뛰어난 순문학 작품. 미스터리가 아니다> 라고 하는가 하면 이에 정면으로 반박해서 <어디가 안티? 미스터리 소설 그 자체> 라는 의견을 비치기도 한다.
   나는 위의 의견을 모두 뭉뚱그려서, 안티미스터리란 기존 미스터리의 존재론적, 윤리적, 미학적 위상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플롯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고 대강 이해하기로 했다. 다만 그 방법론만은 미스터리의 것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허무에의 공물> 에서는 너무나도 그럴듯한 밀실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의욕 충만한 '탐정들'이 각자 있는 대로 '의미'를 부여한 논리와 단서로써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범인을 색출하지만, 결론에 이르러 그것이 모두 무위할 뿐더러 추악하기까지 한 짓이었을 뿐임이 드러나게 된다.
   <허무에의 공물>은 <인간의 무의미한(허무한) 죽음> 이라는 현실적인 사태에 대해 미스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호되게 묻고 있다. 아니 차라리 미스터리란 것은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의 게임" 일 뿐이라고 통렬하게 일갈한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것은 반드시, 한 사람의 죽음에는 그에 걸맞는 '이유'가 있다. '의미'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라는 문예에 일관된 세계관인 것이다. 그러나 매분 매초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죽음> 을 당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현실 세계>다. 그렇다면 의미를 추구하는 미스터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또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게임 감각으로 임하는 미스터리 팬들은 도대체 얼마나 수치를 모르는 인종인가?
   <허무에의 공물>은 주제 의식은 바로 이러한 미스터리 세계관, 미스터리를 기호하는 팬들에 대한 스트레이트한 비판에 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안티 미스터리 : 반추리소설> 적인 테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래 인용 중 강조는 내 자의. 특히 2번은 범인의 대사이므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해서 올린다(생각이 바뀌면 지울지도 모른다).

 
    1.무의미한 죽음 VS 피비린내나는 살인 ㅡ 어느 쪽이 더 끔찍한가?


   “도대체 나나는, 한 번이라도 히누마 가 사건의 성격을 생각해 본 적 있는 거야? 코타로 씨로부터 아야죠 씨까지, 히누마 가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왔는지 조사하지 않았을 리 없잖아. 거기 공통하는 특징을 생각해 보도록 해. 그리고 왜 코지 군과 토지로 씨까지 죽어야만 했는지도.”
   “그게 즉 사건의 본질이란 거구나.”
   무레타의 강한 말투에 놀란 듯 히사오가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아직은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 듯하다.
   “아이쨩이라면 알겠지?”
   몸을 내미는 듯한 자세로 무레타는,
   “내가 죽은 사람들의 업이라고 말한 게 바로 거기에 있어. 죽은 방식의 특징…… 아이쨩은 당사자니까 싫도록 맛보았을 테지만, 그것이 근본이고 모든 것이기도 하니까.”
   히누마 가의 죽은 자들ㅡ코타로가 하코네의 큰 화재로, 아케미 일가가 히로시마에서 원폭으로, 시지로 · 킨자부로 부처가 도야마루에서, 또한 아야죠가 성모의 정원에서 라는 식으로, 끊임없는 죽음의 행렬은 그대로 일본의 재액사(災厄史)의 일부를 망라하고 있음이 틀림없으나, 무레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요점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한 듯한 얼굴로,
   “특징…… 이라니?”
   불안하게 반문하는 것을 지켜보며,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건 완전히 ‘무의미한 죽음’ 의 연속이잖아. 한 명도 인간답게 죽은 사람이 없어. ……이 정도로 무의미한 죽음이 계속된다면, 히누마 가에 잠재된 힘이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아. 어딘가에서 그걸 제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발생해도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서웠어. 그 힘은, 할배가 외포(畏怖)하던 부동명왕처럼 광포한 파괴력을 휘두르려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파리에 있는 동안 코지 군과 토지로 씨가 희생당했지만 소지 군만은 말려들지 않은 것 같아서, 나나에게 그를 지켜줬으면 하고 편지를 썼어…….”
   무레타가 말하는 것은 확실히 반쯤은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듯 했지만, 반쯤은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재하는 힘이라거나 움직임이라니, 설마 누군가 몽유병자처럼 무의식중에 살인을 하며 돌아다닐 리도 없을 터이다.
   “하지만, 그러면…….”
   아리오는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방금 얘기에 의하면 역시 어딘가 살인자가 있어서, 그게 어떻게든 히누마 가의 ‘무의미한 죽음’을 막아보려 노력하는 동안 코지 군과 토지로 씨를 죽였다는 게 되나요. 그것도 뭔가 이상하지만, 저 성모의 정원 사건까지 그 녀석의 짓이라면, 엄청나게 끔찍한 얘기로군요.”
   “끔찍? 뭐가?”
   무레타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야 성모의 정원 사건이 그 녀석의 방화라고 한다면, 그렇잖아요. 그런 양로원의, 대부분 기댈 곳도 없는 처지인, 중풍이나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들뿐인 곳에, 다른 시체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방화를 한다는 게 용서가 됩니까. 뭐, 인간세계에서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죠. 그야 우리들은 아야죠 씨라는 사람이 히누마 가의 일원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혹시나 하고 생각하지만, 상식적으로 말해도 얘기가 너무 끔찍해서 비현실적인 공상으로밖에 안 보여요.”
   아리오에게 있어서는 지나칠 정도로 당연한 감상을 말한 데 지나지 않으나, 무레타는 마치 가엾게 여기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즉 성모의 정원 사건에서 범인은 없었다는 이야기군.”
   “네에. 적어도 있길 바라지는 않아요.”
   “그렇다는 건 히누마 가의 사건에도 범인이 필요 없다는 게 되는군.”
   무언가 말하려는 것을 저지하고,
   “그런 거야. 성모의 정원 사건 정도로 히누마 가를 상징하는 건 없어. 살인인가, 아니면 무의미한 죽음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것이 하누마 가의 문제란 거지. 알겠어? 자네는 성모의 정원이 방화일 경우 너무나도 끔찍하다고 말했지만, 그럼 백 명 가까운 할머니들이 회로 재를 잘못 처리했다는 이유의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사고로 불타 죽은데다가, 덤으로 어디에서 남아도는 시체가 한구 섞여 들어온 채 제대로 설명도 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끔찍하지 않은가? 어느 쪽이 인간세계에 어울리는 사건이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어딘가 흉악한 살인자가 있어서 계획적인 방화라거나 시체유기를 했다는 해설 쪽이 차라리 구원의 여지가 있고, 그 편이 차라리 인간세계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가. 나에겐 저 성모의 정원 사건이 살인이며 방화인 편이 바람직해. 바람직하다기보다는, 인간세계의 명예를 위해 범죄라고 단정하고 싶을 정도야.”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무레타는 아주 뜨거운 태도로 계속했다.
   “히누마 가의 경우에도 의미는 같아.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미한 죽음을 끔찍하게 볼지, 아니면 어둠에 사악한 범인이 숨어서 피투성이 범죄를 계속한다 치고 그 쪽을 차라리 구원이라고 여길지, 둘 중 하나야. 성모의 정원 사건에 범인이 있길 바라지 않는다면, 히누마 가에도 범인은 필요 없어.”
   “하지만, 모르겠다고요.”
   아리오도 한층 답답해진 듯,
   “그렇다면 범인은 코지 군과 토지로 씨를, 내가 죽이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서 해치워 버린 겁니까? 어차피 히누마 가의 인간은 무의미한 죽음을 당할 테니, 단번에 죽여줘야지 하고…….”
   “아무래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군.”
   무레타는 정말이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내가 말하는 건 세간에서 보통 말하는 의미의 살인이 아니야. 히누마 가의 수많은 죽은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비린내 나는 살인으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는 거야. 성모의 정원 사건도 그렇지만 만약 범인이 없다면 반드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돼. 교활한 트릭을 구사하여 우리들을 우롱하고 그늘에서 빨간 혀를 내밀고 있는 범인이 필요한 거라고. 자네들이 추리 대결을 벌인다거나 누구든 개의치 않고 범인으로 세우거나 했던 건 그런 의미에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우릴 비꼬는 것 같은데.”
   무레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짜증스럽게 담배를 피우고 있던 히사오는 겨우 끼어들 틈을 잡은 듯,
   “결국 뭔데? 사실 코지 씨도 토지로 씨도 그저 병사와 과실사였지만, 이 이상 무의미한 죽음은 가여우니까, 우리들이 예의상 탐정이 되어 가공의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 바보 같아. 그런 얘기 들어본 적도 없어.”
   “농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무레타는 심각하게 타일렀다.
   “어쨌든 지금 말한 것이 사건의 근본이며 비극의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아주 이상해. 코지 군의 죽음도 그렇고, 성모의 정원 사건도 그렇지만, 이쪽저쪽 아귀가 맞지 않는 것들뿐이야. 어쩌면 나는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고, 이건 진짜로 살인사건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 손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2. 광인을 가두는 철격자ㅡ어디가 그 안이고 밖인가?


   “생각해줘, 지금 시대에서 정신병원의 철격자(鐵格子)의, 어디가 그 안이고 밖인가.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인간다운 선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거기 두 사람!”
  꼼짝 앉고 빠져 듣고 있던 아리오와 히사오를 향해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호기심 많으신 구경꾼들. (중략) 이 1955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무책임한 호기심이 만들어낸 즐거움만은 너희 것이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면 거기 알맞은 엉뚱하고도 잔혹한 사건이 얼마든지 현실에서 벌어지는, 지금은 그런 시대지. 그 와중에도 자신만 안전지대에서 구경하며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라도 즐거이 감상하려고 하는, 그것이 괴물의 정체다. 나에게는 ‘이 무슨 허무인가’ 하는 생각밖엔 안 들어. 저 장미의 이름을 따온 시는 뭔가 우아한 의미인 것 같지만, 그걸 비틀어 말하자면, 나는 그런 허무에의 공물을 위해 눈물 흘린 게 아니야. 내가 토지로를 죽인 건 인간의 긍지를 위한 것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바다는 이제 그런 구분을 하지 않아. 내가 한 일은 다른 의미에서 ‘허무에의 공물’ 이라 할 수 있겠군.”
   가공의 ‘빛나는 장미’의, 아마 결코 피어날 리 없는 꽃을 그리는 듯 문득 아득한 눈빛이 되었으나, 곧 통렬한 어조로 덧붙인다.
   “도야마루의 공판도 배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 후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지경이다. 지당하신 사고방식이지만, 단언하지. 이 괴물들이 판치는 한, 도야마루가 떠오를 때까지 반드시 또 다른 배가 똑같이 가라앉을 거다. 그때 이 내가 정신병원 철격자의 안팎, 어느 쪽에 서 있을지, 너희들도 알게 될 거란 얘기야.” 





   60년대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읽으면, 너무나도 정곡을 찌른 고발에 심장이 짜릿짜릿하다. 저 가혹한 <현실 인식> 에 의해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비판함으로써, 이 소설은 미스터리적 방법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틀을 넘어 순문학적인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요즘의, 내가 읽어본 우리나라 순문학 작품 중, 적어도 이만큼 정곡을 찌르며 파괴력을 발휘한 작품이 있었던가.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iruemikuus.egloos.com/tb/2315895 [도움말]

덧글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