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의 공물> 속에서는 갖가지 현학과 빗대기(見立て 라고 하는데 이걸 도대체 뭐라고 옮겨야 할지. 영어라면 대충 analogical 뭐시기일 듯한데 이것도 정확치 않다) 가 구사된다. '빗대기'의 원재료가 된 것 중 하나가 유명한 <앨리스 인 원더랜드>다.
작중 인물 미츠다 아리오의 이름은 대놓고 '앨리스' 를 빗대고 있고, 복잡하고 사건의 양상과 황당하고도 현란하게 피로되는 추리들은 독자들에게 '원더랜드' 속에서 헤매는 듯한 감각을 맛보게 한다.
작중 <앨리스>의 "미치광이 다과회" 를 빗댄 장면이 있어서 한번 옮겨 본다. 엄청나게 좋아하는 장면. 작가도 꽤 손에 꼽는 부분이라는 듯하다.
아, 그 전에 <허무에의 공물>의 간략한 줄거리와 인물 소개부터 하자면.
이 이야기는 태평양전쟁 이후, 1954년 겨울에서 55년 봄에 걸쳐서 몰락한 옛 명가 <히누마 가>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첫 장면은 세련된 게이바 "아라비크" 로, 게이인 미츠다 아리오와 친구인 여성 샹송 가수이자 미스터리 매니아인 나나무라 히사오가 게이 무희가 연기하는 <살로메>의 춤을 감상한다는 것으로, 세속적이면서 제법 맵시가 있는 출발이다.
그들은 "아이쨩" 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 히누마 아이지(藍司)를 기다리는데, 아이지는 히누마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불길한 전설 때문에 불안해한다. 히누마 가문의 선조가 저질렀다는 "아이누 대학살" 때문에 대대로 당주에게 저주가 걸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늦게 나타난 아이짱은 아이누 복장을 한 괴한과 맞딱뜨렸다고 한다.
히누마 가문에서는 젊은 당주 소지(蒼司)와 남동생 코지(紅司), 사촌 아이지와 숙부 토지로(橙次郞)가 동거하고 있다. 얼마 전 "도야마루 호 전복 사건" (관련링크) 으로 소지와 아이지 들은 부모인 시지로(紫司郞), 킨자부로(菫三郞) 부처를 잃은 후 특히 소지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아이쨩으로부터 히누마 가의 불길한 전설을 들은 히사오는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아리오를 "왓슨 역" 으로 세우고 히누마 가에 대해 조사하게 된다. 아리오는 옛 지인인 소지를 위로하는 한편 코지가 수상한 '불량배'와 어울려 다닌다는 정보의 진상을 캐려 시도한다.
그러던 중 밀실 상태인 욕실에서 히누마 코지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어서 숙부 토지로마저 가스 중독으로 급사하게 된다...
<미치광이 다과회>는 코지가 죽기 직전의 장면으로, 그가 쓰고 있다는 "네 개의 밀실이 등장하는 대 장편 탐정소설 흉조의 흑영" 은 그대로 <히누마 가 살인사건> 으로 현실에서 일어나게 된다.
서장 · 9. 우물 바닥에서
“오늘밤도 춥군요. 뱅 퀴(vin cuit, 煮葡萄酒) 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벽돌색 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코지는 훌쩍 거실에 얼굴을 비쳤으나, 아리오가 와 있음을 눈치 채고 그런 어른스러운 인사말을 던지며 자신도 호리고타츠(방바닥의 한군데를 네모나게 파고 거기에 화로를 넣은 고타츠)에 들어왔다. 그러나 고타츠 위에 올린 테이블에는 홍차가 놓여있을 뿐, 포도주를 내올 기색은 없었다.
수학전공인 소지와는 정반대로 <시세기(時世記)> 라는 와세다파 잡지에서 히나츠 코노스케 스타일의 시를 쓰는 문학청년인데, 연년생 형제라서인지 이렇게 나란히 두고 보니 키나 자태가 놀랄 만큼 소지와 닮았다. 다만 형이 호수의 성질이라 하면 동생은 화산의 성질이리라. 오래 심장을 앓아왔다는 듯, 안색은 이상하게 하얗지만 어째선지 입술만은 묘하게 붉고, 눈썹도 눈동자도 새까매서, 나름대로 기질이 거센 듯하다.
아리오가 이 집에 출입하기 시작하고부터 이제 열흘 가까이 되었지만, 이 코지에 대해서는 심장 장해라던가 귀가 나쁘다던가, 혹은 토지로와의 사이가 험악하다던가 하는 정도의 지식은 얻었으나, 중요한 불량배와의 일은 전혀 흘리지 않는다. 게다가 본인에게도, 저 ‘아라비크’에서 볼 수 있는 동료들 같은 기묘한 나긋나긋함은 전혀 없고, 단지 신경질적이라는 듯, 자신의 내복류는 할아범에게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재빨리 세탁기로 빨아버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역시 그런 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슬슬 히사오도 도쿄로 돌아올 테니 오늘밤엔 불량배에 대해 탐색해 두고 싶지만, 호리고타츠에는 소지도 있고 아이쨩도 수험 참고서를 가져와서 반쯤 졸아 가며 곁에 자리 잡고 있어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들고 나올 수도 없다. 히사오가 말한 것처럼 엽기취미 같은 화제를 꺼내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아리오는 코지의 이마에 거추장스럽게 흘러내리는 칠흑의 머리카락을 보며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이곳 이층의 방은 꽤 특이하던데, 분명 포의 소설에도 그런 게 있었죠?”
“아아, <붉은 죽음의 가면> 말이죠.”
코지는 곧장 이야기에 넘어왔다.
“별로 의식해서 흉내 낸 건 아니고, 모두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요……. 게다가 그 소설에 나오는 건 동쪽으로부터 파랑, 자주, 초록, 주황, 하양, 보라, 검정 순서고, ‘붉은 죽음’이 그곳들을 달려가는 거잖아요. 우리 집은 어디가 달랐더라. 숙부란 자식이 쓸데없는 짓을 해놔서 모르겠네.”
파란 방은 우리 집에서도 역시 동향이지, 운운 손가락을 꼽으며,
“지금도 서고는 자주색이지만, 전엔 서재도 아빠 이름대로 자색의 전아한 방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저 토지로 숙부가 차지하더니, 형이 관대하다는 걸 이용해서 완전히 녹색으로 바꾸어 버린 거죠. 그래서 그곳을 두 사람 분으로 녹색과 주황색의 방이라고 세고, 아이쨩의 방을 보라색이라고 하면, 결국 우리 집엔 <붉은 죽음의 가면>에 나오는 흑백의 방이 없다는 게 되네요.”
“하지만 코우 형이 붉은 방이잖아. 포 소설에선 안 나와.”
참고서를 펼치고 졸린 듯 작은 소리로 읽고 있던 아이쨩이 책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코우 형 방을 하얀 방으로 바꿔버리면 딱 좋아.”
“그래봐야 어차피 검은 방이 없다고.”
어린애 같은 대화를 하는 중 점점 즐거워진 것 같다. 그것도 아리오를 자신과 같은 취미 동지라고 믿는 듯,
“미츠다 씨도 탐정소설을 꽤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네에, 뭐.”
애매한 대답에도 아랑곳없이,
“뭐라 해도 탐정소설은 포가 최고죠. 대표작을 꼽으라면 역시 <붉은 죽음> 이겠네요. 그리고 <어셔 가의 몰락>……. 제인 엡스턴의 <어셔 가의 후예> 란 걸 했는데, 보신 적 있습니까?”
“너 이발소 가야겠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소지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동생의 앞머리를 빤히 바라보며 갑자기 말했다.
“시끄러워. 남의 일에 참견 안했으면 좋겠군.”
코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영화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소지는 찬물을 끼얹듯이,
“대화라고 해봐야 코우쨩이 말하는 건 정해져 있지. <붉은 죽음의 가면> 과 <어셔 가>, 그리고 <갈까마귀> 가 포의 삼대걸작이라고 말하려는 거잖아? 언제나 똑같은 소릴 반복하는 게 꼭 그 갈까마귀랑 똑같아.”
“뭐가 똑같다는 건데?”
코지가 입술을 내밀었으나 그때 다시 아이쨩이 잠꼬대처럼 말했다.
“갈까마귀랑 똑같은 게 아니야. 코우 형은 그 <갈까마귀>에 나오는 학생이랑 똑같아. ‘사람이 보지 않을 꿈 아닌 꿈을 꾼다’ 란 거지. 그렇지 않아, 미츠다 씨?”
“응?” 하고 말했지만, 그때에는 하필 <갈까마귀> 가 포의 대표작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으므로 뭐가 뭐랑 똑같은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상태로는 오늘밤도 불량배에 대해선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허리를 들었다.
“몇시쯤 됐을까요. ……이런, 열시 반이 넘었나.”
소지의 팔에 드러난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오자 당황하여 일어서려는 것을 아이쨩이 잡았다.
“소우 형의 시계는 언제나 열시 삼십구분에서 멈춰있어. 아직 괜찮잖아.”
“그렇습니다. 조금 더 있다 가세요.”
소지가 급히 시계를 감추려 하며 눈에 애교를 담고 말했다. 코지도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밀어,
“진짜 시간은 말이죠.”
라며 고개를 비틀어 반대쪽을 들여다본다. 어째서인지 역방향으로 달린 그것을 걱정스런 얼굴로 풀고, 귀에 대어 흔들었다.
“내 것도 멈춘 것 같아. 여섯시라니.”
“소지 군의 시계, 일부러 멈춰놓은 건가요?”
아리오가 미심쩍은 얼굴로 묻자 소지는 겸연쩍은 듯 대답했다.
“그게, 움직이질 않아서요. ……그래도 이 집에서 살자면 시간 같은 것 필요 없답니다. 해묵은 우물 바닥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지요. 이곳에서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쌓일 뿐입니다.”
“열시 삼십구분은 도야마루가 침몰한 시간이에요.”
문득 코지가 아리오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놀랄 틈도 없이 꾸며낸 듯한 큰 목소리로,
“그러고보니, 미츠다 씨께 ‘새로운 시간’ 이라는 걸 알려드릴까요.”
코지는 형의 기분 따위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일단 홍차 찻잔 받침에 놓아두었던 손목시계를 다시 줍더니 아까처럼 문자반을 거꾸로 향하게 하여 팔에 찼다.
“이렇게 하루종일 일부러 시계를 거꾸로 해 두는 거예요. 볼 때마다 ‘어라’ 싶고, 멋대로 지나가버리는 시간이란 놈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간단한 걸로 뭐랄까 이차원(異次元)의 원더랜드에 들어갈 수 있을 듯한 기분이라 재미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대화를 훨씬 나중에ㅡ벚꽃이 필 즈음이 되어 아리오는 곰곰이 돌이켜보게 되나, 이 당시에는 돌아 갈 타이밍을 놓치고 난처해졌다. 할 수 없이 아까 갈까마귀와 학생이 닮았다던가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물었다.
“뭐였죠? 포의 <갈까마귀> 라는 건.”
“히나츠 씨의 명 번역이 있잖아요, ‘옛날 황량한 한밤중에’ 라고…….”
코지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어느 폭풍우 치는 밤에 한 학생이 죽은 연인을 생각하며 선잠에 빠진다는 유명한 시예요. ‘우울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선잠에 들자’ 라고 해서요. 그런데 거기 갑자기 갈까마귀가 날아들어와서…….”
“아이쨩은 또 잠들어 버렸어. 가엾게도, 꽤나 피곤했구나.”
소지는 그런 이야기가 싫은지 다시 흐름을 끊듯이 중얼거렸으나, 코지는 모른척 계속했다.
“……갈까마귀가 갑자기 날아들어옵니다. 그리고 학생이 무엇을 물어도 ‘결코’ 라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학생도 끝내는 화를 내며 ‘황천의 나라로 돌아가라’ 고 절규하지만, 그 불길한 흉조는 역시 방의 신상 위에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죠. 마지막에는 이렇게 됩니다.”
코지는 가볍게 눈을 감고 히나츠 코노스케의 역시를 암송해 보였다. 칠흑의 속눈썹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입술은 기분나쁠 정도로 붉게 빛나고 있다.
그 눈동자야말로 마신의 꿈결과도 같고
등불은 그 모습을 비추어 바닥으로 그림자를 던지니
…………
“아시죠? 이 시.”
“들은 적은 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아리오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됩니다.”
귀가 나쁜 탓도 있으리라. 코지는 혼자 신나서 암송을 이었다.
…………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로부터 흘러나오는 나의 영혼 이제 두번 다시 기쁠 일 없으리라
ㅡ결코!
“결코……. 전 이 시가 정말 좋아요. 갈까마귀의 검은 그림자로부터 자신은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부분이 좋죠. 그래서 하나, <흉조의 흑영(黑影)>이라는 대 장편 탐정소설을 쓰려고요…….”
이때서야 겨우 아리오도 추측할 수 있었는데, 코지는 갈까마귀 이야기로부터 곧 자신의 소설 자랑으로 전환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몇 번이고 들려줘서 다들 꽤 짜증을 냈던 듯하다. 우선 아이쨩이 잠꼬대처럼,
“결코, 결코, 결코……라.”
참고서 위에 얼굴을 묻은 채로 농치듯 중얼거리는 곁에서,
“코우쨩, 탐정소설 얘기라면 이제 질렸어.”
소지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만 하잖아. 네 개의 밀실살인이 일어난다는 줄거리지. 흉조의 흑영이든 밀실이든 똑같은 얘기만 해 대니까, 듣는 쪽은 녹초가 되어 버린다고. 곧 니가타에서 후지키다 씨가 올라올 테니까, 그때 둘이서 실컷 얘기하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홱 일어나더니, 예의 오르간처럼 울리는 계단을 난폭하게 밟아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대충 아리오는 앨리스, 코지가 매드 해터, 아이지는 그...잠다람쥐? 코지와 퉁명스럽게 대화하는 소지는 삼월토끼 정도로 빗대는 것 같다.
진짜 <미치광이 다과회> 처럼 정신나간 분위기, 핀트 어긋나는 대화들이 좋다. 코지의 어딘가 불길하고 병적인 외모 묘사 또한 발군.
작중 인물 미츠다 아리오의 이름은 대놓고 '앨리스' 를 빗대고 있고, 복잡하고 사건의 양상과 황당하고도 현란하게 피로되는 추리들은 독자들에게 '원더랜드' 속에서 헤매는 듯한 감각을 맛보게 한다.
작중 <앨리스>의 "미치광이 다과회" 를 빗댄 장면이 있어서 한번 옮겨 본다. 엄청나게 좋아하는 장면. 작가도 꽤 손에 꼽는 부분이라는 듯하다.
아, 그 전에 <허무에의 공물>의 간략한 줄거리와 인물 소개부터 하자면.
이 이야기는 태평양전쟁 이후, 1954년 겨울에서 55년 봄에 걸쳐서 몰락한 옛 명가 <히누마 가>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첫 장면은 세련된 게이바 "아라비크" 로, 게이인 미츠다 아리오와 친구인 여성 샹송 가수이자 미스터리 매니아인 나나무라 히사오가 게이 무희가 연기하는 <살로메>의 춤을 감상한다는 것으로, 세속적이면서 제법 맵시가 있는 출발이다.
그들은 "아이쨩" 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 히누마 아이지(藍司)를 기다리는데, 아이지는 히누마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불길한 전설 때문에 불안해한다. 히누마 가문의 선조가 저질렀다는 "아이누 대학살" 때문에 대대로 당주에게 저주가 걸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늦게 나타난 아이짱은 아이누 복장을 한 괴한과 맞딱뜨렸다고 한다.
히누마 가문에서는 젊은 당주 소지(蒼司)와 남동생 코지(紅司), 사촌 아이지와 숙부 토지로(橙次郞)가 동거하고 있다. 얼마 전 "도야마루 호 전복 사건" (관련링크) 으로 소지와 아이지 들은 부모인 시지로(紫司郞), 킨자부로(菫三郞) 부처를 잃은 후 특히 소지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아이쨩으로부터 히누마 가의 불길한 전설을 들은 히사오는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아리오를 "왓슨 역" 으로 세우고 히누마 가에 대해 조사하게 된다. 아리오는 옛 지인인 소지를 위로하는 한편 코지가 수상한 '불량배'와 어울려 다닌다는 정보의 진상을 캐려 시도한다.
그러던 중 밀실 상태인 욕실에서 히누마 코지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어서 숙부 토지로마저 가스 중독으로 급사하게 된다...
<미치광이 다과회>는 코지가 죽기 직전의 장면으로, 그가 쓰고 있다는 "네 개의 밀실이 등장하는 대 장편 탐정소설 흉조의 흑영" 은 그대로 <히누마 가 살인사건> 으로 현실에서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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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 9. 우물 바닥에서
“오늘밤도 춥군요. 뱅 퀴(vin cuit, 煮葡萄酒) 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벽돌색 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코지는 훌쩍 거실에 얼굴을 비쳤으나, 아리오가 와 있음을 눈치 채고 그런 어른스러운 인사말을 던지며 자신도 호리고타츠(방바닥의 한군데를 네모나게 파고 거기에 화로를 넣은 고타츠)에 들어왔다. 그러나 고타츠 위에 올린 테이블에는 홍차가 놓여있을 뿐, 포도주를 내올 기색은 없었다.
수학전공인 소지와는 정반대로 <시세기(時世記)> 라는 와세다파 잡지에서 히나츠 코노스케 스타일의 시를 쓰는 문학청년인데, 연년생 형제라서인지 이렇게 나란히 두고 보니 키나 자태가 놀랄 만큼 소지와 닮았다. 다만 형이 호수의 성질이라 하면 동생은 화산의 성질이리라. 오래 심장을 앓아왔다는 듯, 안색은 이상하게 하얗지만 어째선지 입술만은 묘하게 붉고, 눈썹도 눈동자도 새까매서, 나름대로 기질이 거센 듯하다.
아리오가 이 집에 출입하기 시작하고부터 이제 열흘 가까이 되었지만, 이 코지에 대해서는 심장 장해라던가 귀가 나쁘다던가, 혹은 토지로와의 사이가 험악하다던가 하는 정도의 지식은 얻었으나, 중요한 불량배와의 일은 전혀 흘리지 않는다. 게다가 본인에게도, 저 ‘아라비크’에서 볼 수 있는 동료들 같은 기묘한 나긋나긋함은 전혀 없고, 단지 신경질적이라는 듯, 자신의 내복류는 할아범에게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재빨리 세탁기로 빨아버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역시 그런 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슬슬 히사오도 도쿄로 돌아올 테니 오늘밤엔 불량배에 대해 탐색해 두고 싶지만, 호리고타츠에는 소지도 있고 아이쨩도 수험 참고서를 가져와서 반쯤 졸아 가며 곁에 자리 잡고 있어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들고 나올 수도 없다. 히사오가 말한 것처럼 엽기취미 같은 화제를 꺼내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아리오는 코지의 이마에 거추장스럽게 흘러내리는 칠흑의 머리카락을 보며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이곳 이층의 방은 꽤 특이하던데, 분명 포의 소설에도 그런 게 있었죠?”
“아아, <붉은 죽음의 가면> 말이죠.”
코지는 곧장 이야기에 넘어왔다.
“별로 의식해서 흉내 낸 건 아니고, 모두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요……. 게다가 그 소설에 나오는 건 동쪽으로부터 파랑, 자주, 초록, 주황, 하양, 보라, 검정 순서고, ‘붉은 죽음’이 그곳들을 달려가는 거잖아요. 우리 집은 어디가 달랐더라. 숙부란 자식이 쓸데없는 짓을 해놔서 모르겠네.”
파란 방은 우리 집에서도 역시 동향이지, 운운 손가락을 꼽으며,
“지금도 서고는 자주색이지만, 전엔 서재도 아빠 이름대로 자색의 전아한 방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저 토지로 숙부가 차지하더니, 형이 관대하다는 걸 이용해서 완전히 녹색으로 바꾸어 버린 거죠. 그래서 그곳을 두 사람 분으로 녹색과 주황색의 방이라고 세고, 아이쨩의 방을 보라색이라고 하면, 결국 우리 집엔 <붉은 죽음의 가면>에 나오는 흑백의 방이 없다는 게 되네요.”
“하지만 코우 형이 붉은 방이잖아. 포 소설에선 안 나와.”
참고서를 펼치고 졸린 듯 작은 소리로 읽고 있던 아이쨩이 책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코우 형 방을 하얀 방으로 바꿔버리면 딱 좋아.”
“그래봐야 어차피 검은 방이 없다고.”
어린애 같은 대화를 하는 중 점점 즐거워진 것 같다. 그것도 아리오를 자신과 같은 취미 동지라고 믿는 듯,
“미츠다 씨도 탐정소설을 꽤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네에, 뭐.”
애매한 대답에도 아랑곳없이,
“뭐라 해도 탐정소설은 포가 최고죠. 대표작을 꼽으라면 역시 <붉은 죽음> 이겠네요. 그리고 <어셔 가의 몰락>……. 제인 엡스턴의 <어셔 가의 후예> 란 걸 했는데, 보신 적 있습니까?”
“너 이발소 가야겠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소지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동생의 앞머리를 빤히 바라보며 갑자기 말했다.
“시끄러워. 남의 일에 참견 안했으면 좋겠군.”
코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영화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소지는 찬물을 끼얹듯이,
“대화라고 해봐야 코우쨩이 말하는 건 정해져 있지. <붉은 죽음의 가면> 과 <어셔 가>, 그리고 <갈까마귀> 가 포의 삼대걸작이라고 말하려는 거잖아? 언제나 똑같은 소릴 반복하는 게 꼭 그 갈까마귀랑 똑같아.”
“뭐가 똑같다는 건데?”
코지가 입술을 내밀었으나 그때 다시 아이쨩이 잠꼬대처럼 말했다.
“갈까마귀랑 똑같은 게 아니야. 코우 형은 그 <갈까마귀>에 나오는 학생이랑 똑같아. ‘사람이 보지 않을 꿈 아닌 꿈을 꾼다’ 란 거지. 그렇지 않아, 미츠다 씨?”
“응?” 하고 말했지만, 그때에는 하필 <갈까마귀> 가 포의 대표작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으므로 뭐가 뭐랑 똑같은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상태로는 오늘밤도 불량배에 대해선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허리를 들었다.
“몇시쯤 됐을까요. ……이런, 열시 반이 넘었나.”
소지의 팔에 드러난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오자 당황하여 일어서려는 것을 아이쨩이 잡았다.
“소우 형의 시계는 언제나 열시 삼십구분에서 멈춰있어. 아직 괜찮잖아.”
“그렇습니다. 조금 더 있다 가세요.”
소지가 급히 시계를 감추려 하며 눈에 애교를 담고 말했다. 코지도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밀어,
“진짜 시간은 말이죠.”
라며 고개를 비틀어 반대쪽을 들여다본다. 어째서인지 역방향으로 달린 그것을 걱정스런 얼굴로 풀고, 귀에 대어 흔들었다.
“내 것도 멈춘 것 같아. 여섯시라니.”
“소지 군의 시계, 일부러 멈춰놓은 건가요?”
아리오가 미심쩍은 얼굴로 묻자 소지는 겸연쩍은 듯 대답했다.
“그게, 움직이질 않아서요. ……그래도 이 집에서 살자면 시간 같은 것 필요 없답니다. 해묵은 우물 바닥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지요. 이곳에서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쌓일 뿐입니다.”
“열시 삼십구분은 도야마루가 침몰한 시간이에요.”
문득 코지가 아리오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놀랄 틈도 없이 꾸며낸 듯한 큰 목소리로,
“그러고보니, 미츠다 씨께 ‘새로운 시간’ 이라는 걸 알려드릴까요.”
코지는 형의 기분 따위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일단 홍차 찻잔 받침에 놓아두었던 손목시계를 다시 줍더니 아까처럼 문자반을 거꾸로 향하게 하여 팔에 찼다.
“이렇게 하루종일 일부러 시계를 거꾸로 해 두는 거예요. 볼 때마다 ‘어라’ 싶고, 멋대로 지나가버리는 시간이란 놈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간단한 걸로 뭐랄까 이차원(異次元)의 원더랜드에 들어갈 수 있을 듯한 기분이라 재미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대화를 훨씬 나중에ㅡ벚꽃이 필 즈음이 되어 아리오는 곰곰이 돌이켜보게 되나, 이 당시에는 돌아 갈 타이밍을 놓치고 난처해졌다. 할 수 없이 아까 갈까마귀와 학생이 닮았다던가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물었다.
“뭐였죠? 포의 <갈까마귀> 라는 건.”
“히나츠 씨의 명 번역이 있잖아요, ‘옛날 황량한 한밤중에’ 라고…….”
코지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어느 폭풍우 치는 밤에 한 학생이 죽은 연인을 생각하며 선잠에 빠진다는 유명한 시예요. ‘우울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선잠에 들자’ 라고 해서요. 그런데 거기 갑자기 갈까마귀가 날아들어와서…….”
“아이쨩은 또 잠들어 버렸어. 가엾게도, 꽤나 피곤했구나.”
소지는 그런 이야기가 싫은지 다시 흐름을 끊듯이 중얼거렸으나, 코지는 모른척 계속했다.
“……갈까마귀가 갑자기 날아들어옵니다. 그리고 학생이 무엇을 물어도 ‘결코’ 라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학생도 끝내는 화를 내며 ‘황천의 나라로 돌아가라’ 고 절규하지만, 그 불길한 흉조는 역시 방의 신상 위에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죠. 마지막에는 이렇게 됩니다.”
코지는 가볍게 눈을 감고 히나츠 코노스케의 역시를 암송해 보였다. 칠흑의 속눈썹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입술은 기분나쁠 정도로 붉게 빛나고 있다.
그 눈동자야말로 마신의 꿈결과도 같고
등불은 그 모습을 비추어 바닥으로 그림자를 던지니
…………
“아시죠? 이 시.”
“들은 적은 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아리오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됩니다.”
귀가 나쁜 탓도 있으리라. 코지는 혼자 신나서 암송을 이었다.
…………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로부터 흘러나오는 나의 영혼 이제 두번 다시 기쁠 일 없으리라
ㅡ결코!
“결코……. 전 이 시가 정말 좋아요. 갈까마귀의 검은 그림자로부터 자신은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부분이 좋죠. 그래서 하나, <흉조의 흑영(黑影)>이라는 대 장편 탐정소설을 쓰려고요…….”
이때서야 겨우 아리오도 추측할 수 있었는데, 코지는 갈까마귀 이야기로부터 곧 자신의 소설 자랑으로 전환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몇 번이고 들려줘서 다들 꽤 짜증을 냈던 듯하다. 우선 아이쨩이 잠꼬대처럼,
“결코, 결코, 결코……라.”
참고서 위에 얼굴을 묻은 채로 농치듯 중얼거리는 곁에서,
“코우쨩, 탐정소설 얘기라면 이제 질렸어.”
소지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만 하잖아. 네 개의 밀실살인이 일어난다는 줄거리지. 흉조의 흑영이든 밀실이든 똑같은 얘기만 해 대니까, 듣는 쪽은 녹초가 되어 버린다고. 곧 니가타에서 후지키다 씨가 올라올 테니까, 그때 둘이서 실컷 얘기하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홱 일어나더니, 예의 오르간처럼 울리는 계단을 난폭하게 밟아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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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아리오는 앨리스, 코지가 매드 해터, 아이지는 그...잠다람쥐? 코지와 퉁명스럽게 대화하는 소지는 삼월토끼 정도로 빗대는 것 같다.
진짜 <미치광이 다과회> 처럼 정신나간 분위기, 핀트 어긋나는 대화들이 좋다. 코지의 어딘가 불길하고 병적인 외모 묘사 또한 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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