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고이케 마리코의 소설이 읽고 싶어서, 왠지 제일 얇아 뵈는 <관 속의 고양이>를 택했다. 뭐 해설이 개천박자선생인 인연도 있었고.
여러 출판사 판형으로 출간되었는데, 같은 작품이면 신초문고! 라는 주의라, 요즘. 신초문고판을 샀다. 왜 그 판형을 좋아하냐면, 가름끈이 들어있어서. 문고판인데! 페이퍼백인데 가름끈이! 게다가 종이질도 매끌매끌 좋다. 활자형도 다른 출판사보다 빈상(...)이나 병맛(...)이 덜 난다. 요염하다. 집영사문고는 잘못 사면 양판소냐 싶게 활자가 커서 압박스러운데. 아니 이런 얘긴 됐고.
이백페이지도 채 안 되는 작품이다, <관 속의 고양이>는. 성공한 화가로 혼자 늙어가는 마사요라는 여성이 고용한 가정부가 어느날 순백의 기품 있는 고양이를 주워 온다. 고양이를 본 마사요 여사는 그것을 "라라"라고 부르며 추억과 회한에 잠긴다. 그리고 가정부에게 여사가 갓 스물이나 하나 먹었을 때 겪은 비극적인 일을 고백하게 된다.
젊은 처녀였던 마사요 여사는 고향에서 **로 올라와(정확한 지명이 갑자기 기억 안난다) 성공한 화가 가와쿠보 고로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고로의 어린 외동딸 모모코를 언니처럼 돌보며 고로에게 그림 수업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옛날에 어머니를 잃은 모모코는 새하얀 고양이 라라에게밖에 마음을 열지 않는 고독한 소녀다. 모모코는 라라를 '엄마'라고 부르며 새끼 고양이처럼 애정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 그들의 모습을 엿본 마사요 또한 감흥하여 라라를 '엄마'라고 부르며 부둥켜안고 그 사건을 계기로 모모코는 마사요에게도 마음을 열게 된다.
마사요는 모모코와 라라와 교감하며 고로에게는 남몰래 연정을 키워 간다. 긴장을 유지한 채 평화롭게 지속되던 관계였으나 어느날 고로의 옛 친구인 치나츠라는 세련된 여성이 등장하자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고로는 치나츠를 새 아내로 들일 생각이라는 것이다. 치나츠는 모모코의 환심을 사려 하는 반면 고양이 라라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그러던 중 어느 겨울날 고로 부녀가 외출나간 틈을 타 치나츠는 라라를 차가운 연못 속에 빠뜨리고, 그 장면을 마사요가 목격하게 된다...
라는 것이 기승전까지의 줄거리(.....다 얘기했다?!) 인데, 이렇게로만 말하면 뭐 별로 평범하네, 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직접 읽어봐야만 그 굉장함을 느낄 수 있다.
무시무시하게 세련되고 잘 다듬어져 있는데다 군더더기고 뭐고 하나도 없다. 내가 좀 온다릭구여사를 홀릭하지만 솔직히 릭구쨩은 고이케 여사 따라가려면 십년은 멀었다. 이 잘 깎이고 닦인 조각 작품 같은 완성도는 뭐냐!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계산된 미장센으로 이루어진 영화와도 같은 문체는 뭐란 말이냐! 감각적이면서도 절대로 오버하지 않는 성격묘사와 예리함과 품위를 갖추고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묘파해나가는 문장들, 소품의 배치, 사건의 연출, 흐름의 완급조절, 복선의 사용, 잔혹한 반전과 비극적인 아이러니 등등 뭣 하나 빼 놓을 구석이 없다. 아시밤 존내 비범하네 이 작가! 진짜 요즘 내가 좋아하는 고전적 서스펜스 미학과 잔혹한 탐미성이 풀풀!
좀 징징거리자면 반전이 반전같지 않아! 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안 튀는' '식상한' 느낌이 있다는 것. 읽히죠 그 정도 전개 쯤은. 근데 시밤 난 이미 깜놀에 처당할 거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반전을 위한 반전은 이제 재미없다. 소설 전체의 구성적인 완성도, 설계적 미학 같은 것에 감흥하게 되어 버렸어연. 물론 이렇게 말하는 주제에 교고쿠 나츠히코 좆반전 시발 너무좋아요 하악하악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출판사 판형으로 출간되었는데, 같은 작품이면 신초문고! 라는 주의라, 요즘. 신초문고판을 샀다. 왜 그 판형을 좋아하냐면, 가름끈이 들어있어서. 문고판인데! 페이퍼백인데 가름끈이! 게다가 종이질도 매끌매끌 좋다. 활자형도 다른 출판사보다 빈상(...)이나 병맛(...)이 덜 난다. 요염하다. 집영사문고는 잘못 사면 양판소냐 싶게 활자가 커서 압박스러운데. 아니 이런 얘긴 됐고.
이백페이지도 채 안 되는 작품이다, <관 속의 고양이>는. 성공한 화가로 혼자 늙어가는 마사요라는 여성이 고용한 가정부가 어느날 순백의 기품 있는 고양이를 주워 온다. 고양이를 본 마사요 여사는 그것을 "라라"라고 부르며 추억과 회한에 잠긴다. 그리고 가정부에게 여사가 갓 스물이나 하나 먹었을 때 겪은 비극적인 일을 고백하게 된다.
젊은 처녀였던 마사요 여사는 고향에서 **로 올라와(정확한 지명이 갑자기 기억 안난다) 성공한 화가 가와쿠보 고로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고로의 어린 외동딸 모모코를 언니처럼 돌보며 고로에게 그림 수업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옛날에 어머니를 잃은 모모코는 새하얀 고양이 라라에게밖에 마음을 열지 않는 고독한 소녀다. 모모코는 라라를 '엄마'라고 부르며 새끼 고양이처럼 애정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 그들의 모습을 엿본 마사요 또한 감흥하여 라라를 '엄마'라고 부르며 부둥켜안고 그 사건을 계기로 모모코는 마사요에게도 마음을 열게 된다.
마사요는 모모코와 라라와 교감하며 고로에게는 남몰래 연정을 키워 간다. 긴장을 유지한 채 평화롭게 지속되던 관계였으나 어느날 고로의 옛 친구인 치나츠라는 세련된 여성이 등장하자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고로는 치나츠를 새 아내로 들일 생각이라는 것이다. 치나츠는 모모코의 환심을 사려 하는 반면 고양이 라라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그러던 중 어느 겨울날 고로 부녀가 외출나간 틈을 타 치나츠는 라라를 차가운 연못 속에 빠뜨리고, 그 장면을 마사요가 목격하게 된다...
라는 것이 기승전까지의 줄거리(.....다 얘기했다?!) 인데, 이렇게로만 말하면 뭐 별로 평범하네, 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직접 읽어봐야만 그 굉장함을 느낄 수 있다.
무시무시하게 세련되고 잘 다듬어져 있는데다 군더더기고 뭐고 하나도 없다. 내가 좀 온다릭구여사를 홀릭하지만 솔직히 릭구쨩은 고이케 여사 따라가려면 십년은 멀었다. 이 잘 깎이고 닦인 조각 작품 같은 완성도는 뭐냐!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계산된 미장센으로 이루어진 영화와도 같은 문체는 뭐란 말이냐! 감각적이면서도 절대로 오버하지 않는 성격묘사와 예리함과 품위를 갖추고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묘파해나가는 문장들, 소품의 배치, 사건의 연출, 흐름의 완급조절, 복선의 사용, 잔혹한 반전과 비극적인 아이러니 등등 뭣 하나 빼 놓을 구석이 없다. 아시밤 존내 비범하네 이 작가! 진짜 요즘 내가 좋아하는 고전적 서스펜스 미학과 잔혹한 탐미성이 풀풀!
좀 징징거리자면 반전이 반전같지 않아! 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안 튀는' '식상한' 느낌이 있다는 것. 읽히죠 그 정도 전개 쯤은. 근데 시밤 난 이미 깜놀에 처당할 거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반전을 위한 반전은 이제 재미없다. 소설 전체의 구성적인 완성도, 설계적 미학 같은 것에 감흥하게 되어 버렸어연. 물론 이렇게 말하는 주제에 교고쿠 나츠히코 좆반전 시발 너무좋아요 하악하악하고 있지만,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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