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화낸다화낸다화낸다]의 국내출간 보류를 탄하며 └찌끄러기

크리스마스 테롤...그리고 공지 by 파우스트코리아


  옛날 포스팅에서 유야따마 언급한 부분을 재탕한다. (<=날로먹기)

  사토 유야의 子供たち怒る怒る怒る를 읽고 있다. 역시 유야땅, 내가 읽고 싶은 주장에 읽고 싶은 장면만 쏙쏙 써준다. 타인에 의미가 없다거나 자기완결이라거나 하는 자폐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에너지로 꽉꽉 차 있고. 나의 찌질이즘을 충족시켜주는 사토 유야가 정말 좋아 사랑해! 무라카미 하루키 식과는 다른 종류의 거칠고 풋풋한 찌질이즘을 고수해 줬으면 좋겠다. 전세계 찌질이들이 단결하여 일어를 배워서 사토 유야의 책을 사서 왠지 모르게 대박이 났으면 좋겠다. 니시오 이신보다 잘 팔리는 기현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팔리긴 팔리는데 이상하게 인상이 약한 작가, 미디어 언급이 없다시피 한 작가로서 집단무의식을 지배하는 작가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진심임.


  사토 유야따마의 子供たち怒る怒る怒る. 읽고, 울었다. 애절해서, 라기보다는 처량해서, 이 인간은 마치 정해진 것처럼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아가겠지, 라고 생각하니 비루함이 눈물 날 정도라서. 새로 쓴 후반 단편 두편은 특히, 그 인간 막장의 인프라스트럭쳐를 토대로 의지의 강함이랄까 긍정의 미학 같은 걸 그럴싸한 루트로 쌓아나가는 걸 보고 또 눈물을 흘렸다. 진부한 건 알지만, 그래도 감정이 움직여 버리는걸.
   단편 "리카쨩 인간"은 "힘내, 리카! 지지마, 리카! 이겨, 리카!" 라고 안달복달 응원하며 숨을 삼키고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리카쨩이 겪는 잔혹한 운명이나, 후반부에 슬랩스틱하게 과장해서 묘사된 잔학한 장면들이라거나, 그런 게 뭐랄까 세련되지 못한, 글 잘쓰는 초코딩이 독을 품고 쓴 소설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내 취향에 직격. 세련되지 않아도 좋다, 뛰어나지 않아도 좋다. 소설이라는 것의 존재방식 중 하나는 작가의 세계와 독자의 세계 간의 커뮤니케이션 매개체로서가 아닌가. 커뮤니케이션만 성립된다면, 그자체 소설로서의 퀄리티가 정련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종류의 소설이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도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풋내나는 독기와 전혀 새로운 방식의 신파로 성립된 유야따마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거라고. 머리나쁜 아이의 문학을 긍정하고 있는 거라고. 근데 미시마 유키오 상 같은 것보다는 뭐 다자이 오사무 상 이런 거 없나, 그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단편 <리카쨩 인간>의) 주인공 리카쨩은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친구들에게도 박해받는 소녀다. 게다가 이야기의 오프닝을 무려 납치 윤간으로 시작한다. 
   리카쨩은 심한 폭력을 당할 때 스스로가 "인형"이라고 생각한다. 인형은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렇게 생각하며 가혹한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그런 리카쨩이 마음을 여는 상대는 학교의 학생지도 선생이다. 선생은 헤비스모커인 젊은 남성으로, 리카쨩이 학교나 집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면서도 쿨한 태도를 견지한다. 


  사토 유야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심한 양가감정을 품고 있다.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게 부끄러운" 작가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모호하다. 굳이 말하자면 "무지하게 신경쓰이는 작가" 정도일까.
  까놓고 말해서 사토 유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카가미사 사가는 플리커 스타일밖에 안 읽었다.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은 사왔지만 2000원이라는 싼맛(....)이야말로 구매의 강한 요인이었다. 플리커 스타일은 읽고 "뭐야 이 병맛" 이라고 생각했고. 유야따마의 작품으로 처음 접한 건 파우스트에서 읽은 붉은색 모스코뮬이었지만 그 작품도 솔직히 "정신상태 병맛"이란 느낌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사토유야의 책에 이렇게 연연하고 있는 걸까. 
  미스터리까지도 아니다. 이야기의 얼개가 아무리 병맛이라도, 이야기하는 태도가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이야기 그 자체가 말하는 무엇이 내 안의 무엇과 공명하면, 그날로 낚이는 거다.
  나라는 독자가 겉으로 드러내기 부끄러워하고 무서워하는, 말하자면 '때늦은 사춘기'. 아닌 척 하고 부정하려고 해도 언제나 항상 '나'의 절대적인 기반이며 한계인, 유치하고 치졸하며 저열한 멘털리티. 달리 말하자면 잠재된 중2병. 코어하지도 않고 자인하려 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소비를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소비에 의존하는 한국형 세미-오타쿠. 특정하자면 '책덕후'. 특정하자면 라이트-소설-덕후.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독서 행위 안에 있으며 스스로의 가능성은 돈과 시간과 함께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 공허한 자기상. 내가 만약에 작가가 된다면 나는 틀림없이 사토 유야가 되겠지, 그렇게까지 생각하도록 사토 유야의 테마는 나의 아이덴티티와 필요 이상의 레조넌스를 일으킨다.


  (....)문학적인 진정성이라 인정되어 온 무언가를 체감하지 못한 채, 그것에 대해 갖는 막연한 동경을 자양분 삼아 세계와 자신과 문학 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모색하는, 그런 자세가 읽혀 버렸다고 하면 무례한 오독일까. 여전히,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한묶음으로 취급받곤 하는 마이조나 니시오가 문학적인 것에 대한 의식 없이 즉물적으로 문장을 구사하고 행사하여 매우 현란한 문체의 쾌감을 낳는다면, 사토 유야의 문장은 여전히 무언가 금욕적인, 무언가를 의식하며, "과연, 이래도 될까." "안돼, 쓸 수 없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묵묵히 작성해 나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끝나 있었어." 라는 인식과 절망감이, 사토 유야로 하여금 요설적인 문장을 쓸 수 없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내려가는 그 모습이《1000의 소설과 벅베어드》에 반영되어,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하게 하고, 문학의 의의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회의를 촉발시킨 것은 아닌가. 


   (<회색 다이어트 코카콜라> 중 인물 '미나미 군'의 대사) “도전장의 이름을 빌린 그 고백문 말이야.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고백문. 그의 문장은 확실히 유치해. 영어도 전혀 안 되어 있고, 허영부린다는 인상도 받았고, 오자도 많았지만, 그건 연령과 경험부족 때문이지 근본적이지 않아. 어쨌건 그의 문장은 멋졌어. 그에겐 문체가 있었어. 혼이 있었어. 의미와 가치가 있었어. 적어도 역사에는 남을 테고 말이야, 그 문장은. 잘린 머리 방치보다도 도전장 쪽이 임팩트 있었을 정도야, 내가 보기에는. 너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에게 공감하고 있어. 비교적 지능이 높고 문장의 재능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려다보고, 그래도 학력은 보통이고 지식에 대한 열등감이 항상 있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토지와 거기 사는 인간들에게 마음속 깊이 넌더리를 내고 있고, 그 때문에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너무나 어렵고, 그러니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린애니까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현실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 그가 사는 마을은 분명, 조금이라도 밖으로 나가면 전원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래도 역 근처에는 어정쩡하게 번영하고 있고, 학교의 학생 총수도 꽤 되고, 쾌속전차도 확실히 다니고 있고, 그래도 도로 폭은 넓고, 백화점 주차장은 여유롭게 백대 이상 수용할 수 있고, 쓸데없이 공원이 있고, 쓸데없이 편의점이 있고, 백화점은 크지만 산개하고 있으니 통로로 볼링을 할 수 있을 법하고, 그런 곳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인간들에게 기대를 가질 수 없고, 친구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어른들은 너무나도 평탄하고, 그 녀석들은 그가 뭘 해도 무반응이고, 예를 들어 그림을 그려도, 시와 소설을 써도, 무엇을 해도 무반응이고, 굉장하면 굉장하다고, 되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다고, 한마디라도 좋으니 리액션을 원하는데, 그래도 그들은 뒤룩뒤룩 살찐 고깃덩어리니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이제, 정말로, 안 돼.”


  유얏치의 크리스마스 테롤을 읽었다. 감상은 : 


  카가미가 사가 안 사서 죄송합니다.


  카가미가 사가 안사고 크리스마스 테롤만 사서 죄송합니다......
  저같은 독자가 죽일놈이에요....
  수몰 피아노부터 역순으로 한달에 한권씩 사겠습니다...

  이것도 괴작이라면 괴작. 앞에 희대, 자가 붙어도 어쩔 수 없을 듯.
  요즘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작품만 봤을 때 유얏치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안티소설가라는 느낌. 소설계의 반물질.
  라고 하면 너무 말이 심하고, 뭐 소설가, 소설 작품이라기보다는 뭔가 '현상'이라는 느낌.
  나는 아무래도 소설가로서의 사토유야와 그 소설작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현상으로서의 유얏치에 이끌린 것 같다.

  뭐 대충 나는 사토 유야에 대해 이런 식의 감정들을 갖고 살아온 것 같다. 2008년을.
  <아이들 화낸다...>는 아마 올해 중, 찬란한 십구금 딱지를 달고 출간될 것 같다.

  아──────。

  비록 떳떳이 진열되진 못하더라도, 많이, 많이많이 읽혀서, 부디 나와 같은(그리고 그와 같은) 만년 중이병의 고뇌를 안고 남몰래 살아가는 님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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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라랄라 2009/01/07 00:24 # 답글

    읽어보고 싶은데요! 성인이라 다행이다!
  • 오렐리아 2009/01/08 17:14 #

    ㅠㅠ 올해 봄중엔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한번 읽어보시라능ㅠㅁ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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