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하는 탑의 살인
제 Ⅰ장
이브가 아니라, 이부다.
이분자(異分子)를 줄인 별명이란 건 알고 있다. 얼굴에 대고 이부, 이부 쨩 하고 불려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도 않다. 악의어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않지만, 어째서 이분자인지, 어째서 반 아이들 중에서도 별난 애로 보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부라고 부르지 않고 베― 사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는 사노 스에코 뿐이라, 나도 그녀를 반에서 쓰이는 별명인 〈갑골〉 이 아닌 사노 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사마’라는 경칭은 내 체구에 대한 것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떡하니 벌어져 토관(土管) 과 닮은 체형이란 건 자각하고 있다. 해골과 토관 콤비는 만담꾼 같은 느낌이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았다.
사노 스에코가 살아있다면 둘이서 망태를 옮겼겠지만, 5월 24일 밤중 대공습으로 그녀는 불에 타 죽었다.
25일로 이어진 밤중의 대공습은 우리들이 학도 근무동원으로 일하던 군수공장을 전소시켰다. 그 뒤엔 폭격을 피한 학교건물을 공장 대신으로 하여 작업했다.
우리들의 학교, 도립 **고등여학교의 건물이 직격탄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난 7월 초순이었다. 모처럼 남아 있었는데, 소규모 공습으로 전소했다. 교사가 이던 곳은 불에 그슬린 땅만이 남아 있었다.
그 이후 우리들 생도는 불탄 교사의 뒷정리로 매일을 보냈다. 가끔 공습경보가 울리면 방공호에 들어간다.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또 던지다니, 폭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근처의 **여학원이 전소를 면한 것은 석조 건물이기 때문이리라. 미션스쿨이라 적이 폭탄을 투하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다.
공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여학원 생도들은 타지 않은 교사에서 다시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았다.
커다란 것은 어른들이 치워 놓아서 우리들 생도는 삽으로 기와조각을 망태기에 퍼담고 천칭에 달아, 두 명씩 짝을 이뤄 교정 구석까지 옮긴다. 목조 교사는 남김없이 잿더미가 되었는데 도대체 무엇의 잔해인지, 옮겨도 옮겨도 기와조각은 없어지지 않고, 하늘도 땅도 더운김을 뿜는 염천하, 망태 옮기기는 시지포스의 고행과도 같다.
칠월 말. 나와 같이 짝이 된 상대가, 미와 사에다였다. 반에서 가장 작고 말랐던 갑골보다는 낫지만 미와 사에다도 키가 큰 편은 아니다. 사노 스에코는 〈비쩍 말라비틀어진 꼬맹이〉였다. 미와 사에다에겐 화사하다는 형용이 어울린다. 보통 하듯 천칭에 망태를 달면 기울어서 무거운 쪽이 미와 사에다 쪽으로 쏠리고 만다. 균형을 잡기 위해 미와 사에다는 양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려 천칭의 끄트머리를 지탱한다. 미안해서 나는 되도록 나 혼자 무게를 감당하고 앞 쪽으로 부담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소개(疏開)하거나 폭격으로 집을 잃어 도쿄를 떠나거나 하여, 입학했을 때 이백 몇명 있던 같은 학년 생도는 이제 1할도 남지 않았다. 전시 체제라 우리 윗 학년은 5학년으로 진금하지 않고 3월에 4학년생인 채 졸업했으므로, 우리들 4학년생이 최상급생이다. 아래 학년인 생도도 역시 사람 수가 각각 스무 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전교 조회를 하는 것도 사치스런 일이다.
미와 사에다는 우리 반에서 1, 2등을 다툴 만큼 성적이 좋은데도 콧대를 세우는 일이 없고, 한눈에도 제법 예쁘고 느낌이 좋아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고 있다. 똑같이 성적이 좋아도 방장 이데 후사코는 지독한 추녀였다. 마룻장같이 편평한 얼굴에 찌부러져서 납작한 코, 두껍고 커다란 입술. 그래도 이데 후사코는 그다지 열등감을 품지 않고 ―― 품어도 남에게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 자신만만 당당히 행동해서 반장으로 추앙받았다. 타인의 얼굴이란 내겐 관상용이다. 미추가 뒤섞여 다채로운 쪽이 좋다. 토관 같은 몸집에 둥그런 눈코가 달린 나 자신의 얼굴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지만. 이데 후사코의 얼굴은 강력한 액센트였다.
2월쯤이었던가, 열렬히 타오르는 애국심으로 “여자 공원도, 지방 학교에서 소집되어 공장 숙소에서 숙박하는 여학생도, 잔업과 야근이 있습니다. 우리들 통학생만 4시에 일을 끝내서는 불공평합니다. 우리들도 야근과 잔업을 하도록 해주십시오. 학급 전체의 의견입니다” 라고 교사에게 제안한 자가 이데 후사코였다. 서양사 전문으로 생도에게 인기가 있던 젊은 담임은 얼마 전에 군에 소집되어서, 중년의 남성 교사가 어딘가로부터 옮겨 와 담임이 되어 있었다. 이마가 둥글게 벗겨진 후임 교사에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게비타코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데 후사코의 제안에 게비타코는 너희들의 애국심은 훌륭하다, 고 눈을 붉히며 감격하곤, 교장과 공장의 높은 사람에게 그대로 전했다. 3월의 대공습 직후, 이데 후사코는 소개했다. 잔업 결정이라는 결과만이 남았다.
우리들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경애의 대상이었다. 존경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경의를 품지 않을 수 없는 품격과 기품을, 교사들은 갖추고 있었다. 어느 교사라도, 엄하거나 부드러운 차이는 있어도, 생도들에게 얕보이는 일은 없었다. 별명이 붙은 교사도 있었지만 애칭이나 다름없는 것뿐이었다. 나막신(얼굴이 장방형) 이라거나, 연어(뺨이 혈색 좋게 붉다) 라거나, 말린 송사리(보이는 대로) 라거나, 미나토 쨩(미나토식 콧물막이 광고의 얼굴과 닮았다) 거나, 다분이 용모로부터 붙인 별명이지만 어느 것에도 악의는 없었다.
게비타코 ―― 한자로 쓰면 下卑蛸다 ―― 라는 천박한 별명에 생도들이 이입한 것은 최대급의 경멸과 악의다. 천박한 놈에겐 천박한 별명이 붙는다. 공장에서 일하고부터 온 교사라서 우리들은 아직 아무 수업도 받지 않았다. 작업감독 같은 존재다.
공장지대는 거의 전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항공기가 부족한데. 농담 섞인 소문이 돈다. 공군 기지에 줄지어 선 비행기는 모두 도자기래요. 웃어넘기지 못하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금속 제품을 모두 국가에 헌납하고 도기로 대용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병기 제조용 금속이 부족하다. 우리들의 교표도, 남자 제복의 금 버튼도 도제품이다.
“미와 상, 좀 쉴래?” 나는 말을 걸었다. 선봉을 맡은 미와 사에다의 발이 불안하게 휘청이고 있었다.
“거기, 우물쭈물 하지 마!” 게비타코가 소리쳤다.
“한 명이 게으르면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 부담을 지우게 된다. 피곤하긴 모두 마찬가지다.”
미와, 라고 게비타코가 호명했다. “어리광부리지 마라. 아베가 혼자 짊어지고 있어. 선생님은 똑똑히 보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학교의 교사는 결코 생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이 없었다.
“쉬엄쉬엄 해도 되잖아요?” 나는 말했다. “여길 치우는 거 말곤 할 일도 없으니.”
게비타코는 안색이 달라져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차 했다. 진심으로 화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선생님께 말대답하라고 배웠나? 아베, 넌 빨갱이냐?”
“죄송합니다.” 미와 사에다가 나보다 먼저 교사에게 사과하고, “베― 사마, 나 노력할 테니까”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햇다.
이전엔 미와 사에다도 다른 급우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이부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나의 위풍당당한 토관 체형을 인정한 것 같다. 폭사한 갑골을 떠올리고 말았다.
“치우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다니, 인식부족도 심각하군. 불탄 자리를 다 정리하면 체육관에서 공장 작업을 개시한다. 항공기 생산이 시급하다. 어물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단 말이다.”
모든 것이 불탔다. 체육관만이 목조 교사로부터 떨어져 있는 덕에 살아남았지만, 폭진으로 창이란 창이 전부 깨지고 비산하고 벽에는 균열이 달려서, 붕괴 직전이다.
걸어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미와 사에다가 털썩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구토했다. 지면을 적시는 것은 노란 위액 뿐이었다.
나는 천칭을 내던지고 미와 사에다를 부축하여 그늘로 데려갔다. 과연 게비타코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을린 양옥란 가지가 조금은 햇빛을 막아준다. 축 늘어진 미와 사에다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공습으로 집이 없어진 거, 게비타코는 알고 있지?”
집이 불에 타거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생도는 미와 사에다 혼자만이 아니었으므로, 게비타코는 둔감해진 것일까.
미와 사에다의 집은 남아있긴 하지만, 군의로서 대륙으로 갔던 부친이 올해 3월 전장에서 병사했다는 통보가 왔다고 한다. 어머니와 남매는 친척이 있는 누마즈로 소개했지만, 7월 17일 ―― 불과 며칠 전 ―― 누마즈 대공습으로 전원 소사(燒死). 도쿄에 남아있던 미와 사에다는 숙모와 둘이서 살고 있다. 미와 사에다로부터 그런 사정을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말없이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바로 적절한 대답을 돌려주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우리 집은 한 달 전에 불탔다. 뒷마당에 파둔 방공호에 함석판을 덮어 그 안에서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작년에 소집되어 부재중이다. 농가의 주인과 공장 기술자는 생산이 중요하므로 소집되지 않지만, 아버지는 청과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식료품 배급제가 되어 장사가 되지 않자 옆 조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고 있는데 영장이 왔다. 북쪽으로 발령 난 것 같다. 부모 모두 도쿄 토박이라 연고 소개할 만한 시골이 없었다.
집이 탔어도 어머니와 여동생과 나, 세 가족은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 미와 사에다보다는 혜택받은 것이리라. 공습이 있던 밤, 양동이 릴레이로 불을 끌 엄두도 못내고 방화용수에 담근 거적을 역시 적신 방공두건 위에 덮어쓴 후, 셋이서 그저 냅다 도망쳤다. 거적은 그을렸지만 머리와 등은 어떻게든 무사했다. 경보가 해제되고 날이 밝아 돌아와보니 잔불이 연기를 올리는 가운데,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탄 시체가 불타 무너진 들보와 지붕 기와에 깔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나쁜 냄새가 진해졌다가 옅어졌다가 했다.
또,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뱃속을 울리는 소리다. 모두 느릿느릿 하늘을 올려다본다. 기체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땀방울이 뚝뚝 듣을 것 같은 하늘 한가운데 태양만이 열병에 신음할 뿐이다.
“정렬! 방공호로 대피!” 게비타코가 소리쳤다.
“천천히 가자.” 나는 미와 사에다에게 말했다.
컴컴한 방공호는 학생 수가 준 탓으로 전원 대피해도 텅텅 비어 있다.
눅눅한 지면에 허리를 내리고 미와 사에다는 내 어깨에 기대어 왔다.
“아직도 기분 안 좋아?”
“괜찮아. 토하니까 개운해졌어. 고마워, 베― 사마.”
멀―리―서―, 라고 누군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부분을 외자, 곧 다른 누구가 멀, 리서, 하고 리드미컬하게 이었다. 삼중합창이 방공호의 벽에 울려퍼졌다.
멀리서 끝없이
도나우 강은 항상 흐르네
들 넘어 부는 바람과
즐거이 손잡고
물새 우는 소리에
미소를 던지며
“정숙!” 게비타코의 노성을 무시하며 코러스가 계속되었다.
봄에는 꽃 그림자일랑 적시고
가을에는 달빛을 띄우네
“베― 사마, 일어서 봐.” 미와 사에다가 속삭였다.
얼떨떨하며 일어서자 암흑 속에서 미와 사에다는 내 손을 그녀의 허리에 둘렀다. 미와 사에다의 한 손은 내 어깨에 가볍게 놓였다.
“사교댄스? 나 춤 못 춰.”
“리듬만 타도 돼.”
우인의 처녀가 부르는 가락에도
파도는 다정하게 울려퍼지네
폭음이 귀를 찌르고 방공호의 벽이 진동했다.
비명도 없이 코러스는 이어졌다.
옛날 어느 날엔가
황금빛 보트에
아리따운 공주님을 본 적도 있으리
나는 미와 사에다의 체온을 느끼며 리듬에 맞춰 어둠 속을 부유했다.
용맹한 무사 뿔피리 소리가
물 위에 울려퍼지던 적도 있으리
이윽고 경보가 해제되었으나, 방공호를 나가자 하늘이 매캐한 연기로 새까맣게 그늘져 있었다.
근처에 폭격이 떨어진 것 같다.
질식할 것 같은 만원전차를 타고 귀가했다. 전차 수가 극단적으로 적다.
집이라고 해도 함석판과 굴이다. 주변은 어디까지고 불탄 들판으로, 우리 집처럼 불타도 갈 데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공호에서 살고 있다. 가스도 수도도 파괴당했다. 모르는 사람 집이 불탄 자리에 우물이 있어서 모두 그것을 쓰고 있다. 어머니가 풍로에 배급받은 숯을 태워 집터에서 주운 냄비로 시래기죽을 끓이는 것을 도왔다. 서양 호박과, 내가 다니는 길마다 뽑은 야생풀로 양을 늘린다. 먹을 수 있는 풀도 많지만 독초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먹어야 한다. 옆 조 사람 중 전직 중학 생물 교사였다는 아저씨가 있는데, 식물에 대해 꽤 밝다. 처음에는 뽑은 풀을 일일이 아저씨에게 검사받았다. 요즘은 나도 대충 구별이 간다.
여동생은 한참 전부터 쇠약해서 몸져누워 있다. 혈거인(穴居人) 같은 생활이 이어지고 있으니 먹을거리도 변변찮고, 병 나는 게 당연하다. 극도의 영양실조라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무슨 좋은 일 있니?” 강물은 청명하니 아름답고, 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내게 피곤한 얼굴의 어머니가 물었다. 조잡하고 맛없고 양도 부족한 저녁식사 후 여동생이 낡은 종이와 몽당연필을 내게 내밀었다. 안미츠와 단팥죽 그림을 그려 주었다.
다음날 등교하자 “폭격당한 건 ** 여학원 근처랍니다” 라고 생도들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채플에 직격탄이 떨어졌대요. 그래도 채플만 무너지고 교실이 있는 본당은 무사하답니다.” “우리 학교처럼 목조였으면 홀랑 타버렸겠죠.” “그쪽은 미션스쿨이라 공격받지 않는다고 그러더니.”
점호 시간이 되어도 미와 사에다는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몸 상태가 나빠진 걸까, 결석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짝 없는 나는 땅에 바짝 웅크리고 목장갑을 낀 손으로 유리 파편을 줍는 작업을 했다.
정오 가까이 되자 미와 사에다가 등교했다.
“미와!” 라고 게비타코가 고함쳤다.
“지각 이유는?”
“전차가 늦었습니다.” 미와 사에다의 입술은 익사자처럼 창백하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흔들림 없이 게비타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미와 사에다의 표정은 거셌다.
게비타코의 눈이 닿지 않는 체육관 그늘로 나는 미와 사에다를 꼬였다. 게비타코가 감시하러 왔을 때 변명이 되도록 붙어앉아 잡동사니를 망태에 넣으며, “아직도 몸 상태 나쁜 거 아니니?” 라고 물었다. 미와 사에다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해서 나올 거 없는데.” 내가 말하자 미와 사에다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위로할 생각이었는데 냉담하게 들렸을까 싶어 조금 당혹했다.
“코우즈키 상이” 라고 미와 사에다는 무리하여 목소리를 쥐어짜더니, 둑이 무너진 것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코우즈키 상? 모르는 이름이다.
죽을 정도로 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컷 울면 자연히 그친다. 섣불리 말 걸지 않는 편이 빨리 울음이 멎는다. 집에서 울보 여동생을 돌보느라 익숙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관심이 없거나 냉담하다고 오해받을 테니, 오열이 점차 가라앉을 때를 가늠하여 “코우즈키 상이라니?” 라고 물었다.
“**여학원의 전문부 분이셔. 공장에서 친하게 대해주셨어. 전문부 3학년은 이번 3월에 졸업했지만 계속 작업하고 있었던 거겠지.”
미션수쿨인 **여학원은 소학교에 해당하는 6년제 초등부, 여학교에 해당하는 5년제 중등부, 그리고 여자 전문학교의 자격을 갖는 3년제 전문부가 있다.
코우즈키라는 사람은 모르지만 전문부 생도가 졸업 후에도 그대로 여자 정신대로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공장이 불탄 후 학교공장으로 옮긴 것도.
“그 분이 어떻게 되신 거야?”
미와 사에다는 자칫 목소리가 갈라져버릴 것을 참으며 “돌아가셨어” 라고 말했다.
“어제 공습, **여학원이.”
“응, 다들 얘기하고 있었어. 채플에 직격탄이 떨어졌다고.”
“오늘 통학 전차에서 여학원 중등부인 분과 만나서, 그분으로부터 들었어. 피해를 입은 건 채플뿐이고 교사는 무사하니까 평소대로 학교 공장에서 작업한다고. 나는 코우즈키 상과 만나고 싶어져서……. 참 큰일이었겠다고 인사치레를 하고 싶었을 뿐이지만……잠깐 여학원에 들렀더니.” 미와 사에다의 목소리가 끊기고 다시 오열했으므로,
“코우즈키 상이라는 분이 돌아가셨다고?” 나는 이야기를 척척 진행시켰다.
“채플이 불탄 자리에서 파냈다고…….”
“**여학원에선 채플이 방공호 대용이니?”
“아니. 그 학교는 교정이 2단으로 되어 있어서, 경사면에 옆으로 구멍을 파서 콘크리트로 굳힌 견고한 방공호가 있대. 생도는 다들 거기로 대피하니까 아무도 생채기 하나 없었다는데. 코우즈키 상만, 어째서 채플에…….”
질책하듯 물어도 나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가능했던 것은 게비타코가 순찰하러 와서 불평을 늘어놓으려 했을 때 노려봐 주는 걸로 쫓아낸 것뿐이었다. 생도가 교사에게 반항하다니 터무니없는 일이다. 직원회의 감이래도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지만.
“게다가 유체가 또 하나 있었대. 하지만 타서 신원을 알 수 없는 것 같아.”
다음날부터 미와 사에다는 학교를 쉬었다. 몸 상태가 나빠서 쉬게 한다고, 보호자인 숙모 되는 사람으로부터 학교에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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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예전에 이 책 내용 소개를 잘못 했다. 나나오 교코가 행방불명된 후 채플에서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다고 했는데, 발견된 것은 신원불명의 시체와 코우즈키 리츠코의 시체였다. 고쳐야지...
'토관'이라는 건 공사장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콘크리트로 된 엄청 큰 튜브를 말한다. 토관 체형이란 요즘 말로 하면 드럼통이다.
'소개'라는 것은 전시중 수도의 국민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옛날 소설에도 많이 나오는 단어이지만 요즘은 역시 쓸 일이 없다.
'안미츠'는 완두콩 같은 것에 꿀을 바른 과자라고 하는데, 이미지를 찾아보니 이상한 팥빙수 같은 것밖에 안 뜬다. 뭐 그런 게 있다고 알아두면 된다(...).
제 Ⅰ장
이브가 아니라, 이부다.
이분자(異分子)를 줄인 별명이란 건 알고 있다. 얼굴에 대고 이부, 이부 쨩 하고 불려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도 않다. 악의어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않지만, 어째서 이분자인지, 어째서 반 아이들 중에서도 별난 애로 보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부라고 부르지 않고 베― 사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는 사노 스에코 뿐이라, 나도 그녀를 반에서 쓰이는 별명인 〈갑골〉 이 아닌 사노 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사마’라는 경칭은 내 체구에 대한 것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떡하니 벌어져 토관(土管) 과 닮은 체형이란 건 자각하고 있다. 해골과 토관 콤비는 만담꾼 같은 느낌이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았다.
사노 스에코가 살아있다면 둘이서 망태를 옮겼겠지만, 5월 24일 밤중 대공습으로 그녀는 불에 타 죽었다.
25일로 이어진 밤중의 대공습은 우리들이 학도 근무동원으로 일하던 군수공장을 전소시켰다. 그 뒤엔 폭격을 피한 학교건물을 공장 대신으로 하여 작업했다.
우리들의 학교, 도립 **고등여학교의 건물이 직격탄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난 7월 초순이었다. 모처럼 남아 있었는데, 소규모 공습으로 전소했다. 교사가 이던 곳은 불에 그슬린 땅만이 남아 있었다.
그 이후 우리들 생도는 불탄 교사의 뒷정리로 매일을 보냈다. 가끔 공습경보가 울리면 방공호에 들어간다.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또 던지다니, 폭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근처의 **여학원이 전소를 면한 것은 석조 건물이기 때문이리라. 미션스쿨이라 적이 폭탄을 투하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다.
공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여학원 생도들은 타지 않은 교사에서 다시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았다.
커다란 것은 어른들이 치워 놓아서 우리들 생도는 삽으로 기와조각을 망태기에 퍼담고 천칭에 달아, 두 명씩 짝을 이뤄 교정 구석까지 옮긴다. 목조 교사는 남김없이 잿더미가 되었는데 도대체 무엇의 잔해인지, 옮겨도 옮겨도 기와조각은 없어지지 않고, 하늘도 땅도 더운김을 뿜는 염천하, 망태 옮기기는 시지포스의 고행과도 같다.
칠월 말. 나와 같이 짝이 된 상대가, 미와 사에다였다. 반에서 가장 작고 말랐던 갑골보다는 낫지만 미와 사에다도 키가 큰 편은 아니다. 사노 스에코는 〈비쩍 말라비틀어진 꼬맹이〉였다. 미와 사에다에겐 화사하다는 형용이 어울린다. 보통 하듯 천칭에 망태를 달면 기울어서 무거운 쪽이 미와 사에다 쪽으로 쏠리고 만다. 균형을 잡기 위해 미와 사에다는 양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려 천칭의 끄트머리를 지탱한다. 미안해서 나는 되도록 나 혼자 무게를 감당하고 앞 쪽으로 부담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소개(疏開)하거나 폭격으로 집을 잃어 도쿄를 떠나거나 하여, 입학했을 때 이백 몇명 있던 같은 학년 생도는 이제 1할도 남지 않았다. 전시 체제라 우리 윗 학년은 5학년으로 진금하지 않고 3월에 4학년생인 채 졸업했으므로, 우리들 4학년생이 최상급생이다. 아래 학년인 생도도 역시 사람 수가 각각 스무 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전교 조회를 하는 것도 사치스런 일이다.
미와 사에다는 우리 반에서 1, 2등을 다툴 만큼 성적이 좋은데도 콧대를 세우는 일이 없고, 한눈에도 제법 예쁘고 느낌이 좋아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고 있다. 똑같이 성적이 좋아도 방장 이데 후사코는 지독한 추녀였다. 마룻장같이 편평한 얼굴에 찌부러져서 납작한 코, 두껍고 커다란 입술. 그래도 이데 후사코는 그다지 열등감을 품지 않고 ―― 품어도 남에게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 자신만만 당당히 행동해서 반장으로 추앙받았다. 타인의 얼굴이란 내겐 관상용이다. 미추가 뒤섞여 다채로운 쪽이 좋다. 토관 같은 몸집에 둥그런 눈코가 달린 나 자신의 얼굴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지만. 이데 후사코의 얼굴은 강력한 액센트였다.
2월쯤이었던가, 열렬히 타오르는 애국심으로 “여자 공원도, 지방 학교에서 소집되어 공장 숙소에서 숙박하는 여학생도, 잔업과 야근이 있습니다. 우리들 통학생만 4시에 일을 끝내서는 불공평합니다. 우리들도 야근과 잔업을 하도록 해주십시오. 학급 전체의 의견입니다” 라고 교사에게 제안한 자가 이데 후사코였다. 서양사 전문으로 생도에게 인기가 있던 젊은 담임은 얼마 전에 군에 소집되어서, 중년의 남성 교사가 어딘가로부터 옮겨 와 담임이 되어 있었다. 이마가 둥글게 벗겨진 후임 교사에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게비타코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데 후사코의 제안에 게비타코는 너희들의 애국심은 훌륭하다, 고 눈을 붉히며 감격하곤, 교장과 공장의 높은 사람에게 그대로 전했다. 3월의 대공습 직후, 이데 후사코는 소개했다. 잔업 결정이라는 결과만이 남았다.
우리들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경애의 대상이었다. 존경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경의를 품지 않을 수 없는 품격과 기품을, 교사들은 갖추고 있었다. 어느 교사라도, 엄하거나 부드러운 차이는 있어도, 생도들에게 얕보이는 일은 없었다. 별명이 붙은 교사도 있었지만 애칭이나 다름없는 것뿐이었다. 나막신(얼굴이 장방형) 이라거나, 연어(뺨이 혈색 좋게 붉다) 라거나, 말린 송사리(보이는 대로) 라거나, 미나토 쨩(미나토식 콧물막이 광고의 얼굴과 닮았다) 거나, 다분이 용모로부터 붙인 별명이지만 어느 것에도 악의는 없었다.
게비타코 ―― 한자로 쓰면 下卑蛸다 ―― 라는 천박한 별명에 생도들이 이입한 것은 최대급의 경멸과 악의다. 천박한 놈에겐 천박한 별명이 붙는다. 공장에서 일하고부터 온 교사라서 우리들은 아직 아무 수업도 받지 않았다. 작업감독 같은 존재다.
공장지대는 거의 전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항공기가 부족한데. 농담 섞인 소문이 돈다. 공군 기지에 줄지어 선 비행기는 모두 도자기래요. 웃어넘기지 못하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금속 제품을 모두 국가에 헌납하고 도기로 대용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병기 제조용 금속이 부족하다. 우리들의 교표도, 남자 제복의 금 버튼도 도제품이다.
“미와 상, 좀 쉴래?” 나는 말을 걸었다. 선봉을 맡은 미와 사에다의 발이 불안하게 휘청이고 있었다.
“거기, 우물쭈물 하지 마!” 게비타코가 소리쳤다.
“한 명이 게으르면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 부담을 지우게 된다. 피곤하긴 모두 마찬가지다.”
미와, 라고 게비타코가 호명했다. “어리광부리지 마라. 아베가 혼자 짊어지고 있어. 선생님은 똑똑히 보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학교의 교사는 결코 생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이 없었다.
“쉬엄쉬엄 해도 되잖아요?” 나는 말했다. “여길 치우는 거 말곤 할 일도 없으니.”
게비타코는 안색이 달라져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차 했다. 진심으로 화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선생님께 말대답하라고 배웠나? 아베, 넌 빨갱이냐?”
“죄송합니다.” 미와 사에다가 나보다 먼저 교사에게 사과하고, “베― 사마, 나 노력할 테니까”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햇다.
이전엔 미와 사에다도 다른 급우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이부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나의 위풍당당한 토관 체형을 인정한 것 같다. 폭사한 갑골을 떠올리고 말았다.
“치우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다니, 인식부족도 심각하군. 불탄 자리를 다 정리하면 체육관에서 공장 작업을 개시한다. 항공기 생산이 시급하다. 어물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단 말이다.”
모든 것이 불탔다. 체육관만이 목조 교사로부터 떨어져 있는 덕에 살아남았지만, 폭진으로 창이란 창이 전부 깨지고 비산하고 벽에는 균열이 달려서, 붕괴 직전이다.
걸어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미와 사에다가 털썩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구토했다. 지면을 적시는 것은 노란 위액 뿐이었다.
나는 천칭을 내던지고 미와 사에다를 부축하여 그늘로 데려갔다. 과연 게비타코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을린 양옥란 가지가 조금은 햇빛을 막아준다. 축 늘어진 미와 사에다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공습으로 집이 없어진 거, 게비타코는 알고 있지?”
집이 불에 타거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생도는 미와 사에다 혼자만이 아니었으므로, 게비타코는 둔감해진 것일까.
미와 사에다의 집은 남아있긴 하지만, 군의로서 대륙으로 갔던 부친이 올해 3월 전장에서 병사했다는 통보가 왔다고 한다. 어머니와 남매는 친척이 있는 누마즈로 소개했지만, 7월 17일 ―― 불과 며칠 전 ―― 누마즈 대공습으로 전원 소사(燒死). 도쿄에 남아있던 미와 사에다는 숙모와 둘이서 살고 있다. 미와 사에다로부터 그런 사정을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말없이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바로 적절한 대답을 돌려주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우리 집은 한 달 전에 불탔다. 뒷마당에 파둔 방공호에 함석판을 덮어 그 안에서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작년에 소집되어 부재중이다. 농가의 주인과 공장 기술자는 생산이 중요하므로 소집되지 않지만, 아버지는 청과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식료품 배급제가 되어 장사가 되지 않자 옆 조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고 있는데 영장이 왔다. 북쪽으로 발령 난 것 같다. 부모 모두 도쿄 토박이라 연고 소개할 만한 시골이 없었다.
집이 탔어도 어머니와 여동생과 나, 세 가족은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 미와 사에다보다는 혜택받은 것이리라. 공습이 있던 밤, 양동이 릴레이로 불을 끌 엄두도 못내고 방화용수에 담근 거적을 역시 적신 방공두건 위에 덮어쓴 후, 셋이서 그저 냅다 도망쳤다. 거적은 그을렸지만 머리와 등은 어떻게든 무사했다. 경보가 해제되고 날이 밝아 돌아와보니 잔불이 연기를 올리는 가운데,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탄 시체가 불타 무너진 들보와 지붕 기와에 깔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나쁜 냄새가 진해졌다가 옅어졌다가 했다.
또,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뱃속을 울리는 소리다. 모두 느릿느릿 하늘을 올려다본다. 기체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땀방울이 뚝뚝 듣을 것 같은 하늘 한가운데 태양만이 열병에 신음할 뿐이다.
“정렬! 방공호로 대피!” 게비타코가 소리쳤다.
“천천히 가자.” 나는 미와 사에다에게 말했다.
컴컴한 방공호는 학생 수가 준 탓으로 전원 대피해도 텅텅 비어 있다.
눅눅한 지면에 허리를 내리고 미와 사에다는 내 어깨에 기대어 왔다.
“아직도 기분 안 좋아?”
“괜찮아. 토하니까 개운해졌어. 고마워, 베― 사마.”
멀―리―서―, 라고 누군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부분을 외자, 곧 다른 누구가 멀, 리서, 하고 리드미컬하게 이었다. 삼중합창이 방공호의 벽에 울려퍼졌다.
멀리서 끝없이
도나우 강은 항상 흐르네
들 넘어 부는 바람과
즐거이 손잡고
물새 우는 소리에
미소를 던지며
“정숙!” 게비타코의 노성을 무시하며 코러스가 계속되었다.
봄에는 꽃 그림자일랑 적시고
가을에는 달빛을 띄우네
“베― 사마, 일어서 봐.” 미와 사에다가 속삭였다.
얼떨떨하며 일어서자 암흑 속에서 미와 사에다는 내 손을 그녀의 허리에 둘렀다. 미와 사에다의 한 손은 내 어깨에 가볍게 놓였다.
“사교댄스? 나 춤 못 춰.”
“리듬만 타도 돼.”
우인의 처녀가 부르는 가락에도
파도는 다정하게 울려퍼지네
폭음이 귀를 찌르고 방공호의 벽이 진동했다.
비명도 없이 코러스는 이어졌다.
옛날 어느 날엔가
황금빛 보트에
아리따운 공주님을 본 적도 있으리
나는 미와 사에다의 체온을 느끼며 리듬에 맞춰 어둠 속을 부유했다.
용맹한 무사 뿔피리 소리가
물 위에 울려퍼지던 적도 있으리
이윽고 경보가 해제되었으나, 방공호를 나가자 하늘이 매캐한 연기로 새까맣게 그늘져 있었다.
근처에 폭격이 떨어진 것 같다.
질식할 것 같은 만원전차를 타고 귀가했다. 전차 수가 극단적으로 적다.
집이라고 해도 함석판과 굴이다. 주변은 어디까지고 불탄 들판으로, 우리 집처럼 불타도 갈 데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공호에서 살고 있다. 가스도 수도도 파괴당했다. 모르는 사람 집이 불탄 자리에 우물이 있어서 모두 그것을 쓰고 있다. 어머니가 풍로에 배급받은 숯을 태워 집터에서 주운 냄비로 시래기죽을 끓이는 것을 도왔다. 서양 호박과, 내가 다니는 길마다 뽑은 야생풀로 양을 늘린다. 먹을 수 있는 풀도 많지만 독초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먹어야 한다. 옆 조 사람 중 전직 중학 생물 교사였다는 아저씨가 있는데, 식물에 대해 꽤 밝다. 처음에는 뽑은 풀을 일일이 아저씨에게 검사받았다. 요즘은 나도 대충 구별이 간다.
여동생은 한참 전부터 쇠약해서 몸져누워 있다. 혈거인(穴居人) 같은 생활이 이어지고 있으니 먹을거리도 변변찮고, 병 나는 게 당연하다. 극도의 영양실조라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무슨 좋은 일 있니?” 강물은 청명하니 아름답고, 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내게 피곤한 얼굴의 어머니가 물었다. 조잡하고 맛없고 양도 부족한 저녁식사 후 여동생이 낡은 종이와 몽당연필을 내게 내밀었다. 안미츠와 단팥죽 그림을 그려 주었다.
다음날 등교하자 “폭격당한 건 ** 여학원 근처랍니다” 라고 생도들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채플에 직격탄이 떨어졌대요. 그래도 채플만 무너지고 교실이 있는 본당은 무사하답니다.” “우리 학교처럼 목조였으면 홀랑 타버렸겠죠.” “그쪽은 미션스쿨이라 공격받지 않는다고 그러더니.”
점호 시간이 되어도 미와 사에다는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몸 상태가 나빠진 걸까, 결석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짝 없는 나는 땅에 바짝 웅크리고 목장갑을 낀 손으로 유리 파편을 줍는 작업을 했다.
정오 가까이 되자 미와 사에다가 등교했다.
“미와!” 라고 게비타코가 고함쳤다.
“지각 이유는?”
“전차가 늦었습니다.” 미와 사에다의 입술은 익사자처럼 창백하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흔들림 없이 게비타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미와 사에다의 표정은 거셌다.
게비타코의 눈이 닿지 않는 체육관 그늘로 나는 미와 사에다를 꼬였다. 게비타코가 감시하러 왔을 때 변명이 되도록 붙어앉아 잡동사니를 망태에 넣으며, “아직도 몸 상태 나쁜 거 아니니?” 라고 물었다. 미와 사에다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해서 나올 거 없는데.” 내가 말하자 미와 사에다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위로할 생각이었는데 냉담하게 들렸을까 싶어 조금 당혹했다.
“코우즈키 상이” 라고 미와 사에다는 무리하여 목소리를 쥐어짜더니, 둑이 무너진 것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코우즈키 상? 모르는 이름이다.
죽을 정도로 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컷 울면 자연히 그친다. 섣불리 말 걸지 않는 편이 빨리 울음이 멎는다. 집에서 울보 여동생을 돌보느라 익숙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관심이 없거나 냉담하다고 오해받을 테니, 오열이 점차 가라앉을 때를 가늠하여 “코우즈키 상이라니?” 라고 물었다.
“**여학원의 전문부 분이셔. 공장에서 친하게 대해주셨어. 전문부 3학년은 이번 3월에 졸업했지만 계속 작업하고 있었던 거겠지.”
미션수쿨인 **여학원은 소학교에 해당하는 6년제 초등부, 여학교에 해당하는 5년제 중등부, 그리고 여자 전문학교의 자격을 갖는 3년제 전문부가 있다.
코우즈키라는 사람은 모르지만 전문부 생도가 졸업 후에도 그대로 여자 정신대로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공장이 불탄 후 학교공장으로 옮긴 것도.
“그 분이 어떻게 되신 거야?”
미와 사에다는 자칫 목소리가 갈라져버릴 것을 참으며 “돌아가셨어” 라고 말했다.
“어제 공습, **여학원이.”
“응, 다들 얘기하고 있었어. 채플에 직격탄이 떨어졌다고.”
“오늘 통학 전차에서 여학원 중등부인 분과 만나서, 그분으로부터 들었어. 피해를 입은 건 채플뿐이고 교사는 무사하니까 평소대로 학교 공장에서 작업한다고. 나는 코우즈키 상과 만나고 싶어져서……. 참 큰일이었겠다고 인사치레를 하고 싶었을 뿐이지만……잠깐 여학원에 들렀더니.” 미와 사에다의 목소리가 끊기고 다시 오열했으므로,
“코우즈키 상이라는 분이 돌아가셨다고?” 나는 이야기를 척척 진행시켰다.
“채플이 불탄 자리에서 파냈다고…….”
“**여학원에선 채플이 방공호 대용이니?”
“아니. 그 학교는 교정이 2단으로 되어 있어서, 경사면에 옆으로 구멍을 파서 콘크리트로 굳힌 견고한 방공호가 있대. 생도는 다들 거기로 대피하니까 아무도 생채기 하나 없었다는데. 코우즈키 상만, 어째서 채플에…….”
질책하듯 물어도 나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가능했던 것은 게비타코가 순찰하러 와서 불평을 늘어놓으려 했을 때 노려봐 주는 걸로 쫓아낸 것뿐이었다. 생도가 교사에게 반항하다니 터무니없는 일이다. 직원회의 감이래도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지만.
“게다가 유체가 또 하나 있었대. 하지만 타서 신원을 알 수 없는 것 같아.”
다음날부터 미와 사에다는 학교를 쉬었다. 몸 상태가 나빠서 쉬게 한다고, 보호자인 숙모 되는 사람으로부터 학교에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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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예전에 이 책 내용 소개를 잘못 했다. 나나오 교코가 행방불명된 후 채플에서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다고 했는데, 발견된 것은 신원불명의 시체와 코우즈키 리츠코의 시체였다. 고쳐야지...
'토관'이라는 건 공사장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콘크리트로 된 엄청 큰 튜브를 말한다. 토관 체형이란 요즘 말로 하면 드럼통이다.
'소개'라는 것은 전시중 수도의 국민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옛날 소설에도 많이 나오는 단어이지만 요즘은 역시 쓸 일이 없다.
'안미츠'는 완두콩 같은 것에 꿀을 바른 과자라고 하는데, 이미지를 찾아보니 이상한 팥빙수 같은 것밖에 안 뜬다. 뭐 그런 게 있다고 알아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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