蛍ヶ池 (2) └번역/인용/애정

  그러고보니 여자가 한명 더 있었다. 외숙부의 외동딸 유리코다. 국립대 부속고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다. 공부벌레 안경녀로, 굳이 말하자면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
  이 전에도 내가 다니는 토우세이 학원을 골빈 날라리들이나 다니는 데라고 말씀하셨다. 확실히 진학교에 명문 사립학교라고 불리지만 말뿐, 내실 돈으로 처바른 뒷문입학이 횡행하고 사실상 가족 중 누군가가 토우세이 출신이 아니면 입학이 일단 무리라, 자연히 돈과 권력이 있는 정치가와 예능계 귀족들이 많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모두 머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공부 이외의 것에 정력을 쏟아서 결국 대학은 만만한 사립대에 떨어지게 되므로, 처음부터 국립을 목적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장래 부모의 뒤를 잇게 되어 있는 무리다. 어쨌든 편하자는 것이 그들의 신조지만 국립부고의 유리코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나는 별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점이 또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듯, 그녀는 나와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걸어온다.
  ‘너는 노력이란 걸 몰라. 아니, 노력하는 걸 경멸하고 있어. 넌 자신만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제대로 연습도 않고 열여섯에 습명을 받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아버님까지 널 귀여워하시지! 조금 예쁘다고 우쭐해 하지 말아줘!’
  그렇게 내뱉은 유리코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아, 그래.’
  요약하자면 너는 내게 질투한다는 거야, 라는 뒷말을 삼키고 작게 떠는 입술에 키스했다. 아주 가볍게. 그래도 답례로 따귀가 날아와, 이어서 내가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무거워 보이는 플리츠스커트를 펄럭이며 날아갈 듯 뛰어가는 유리코의 야윈 뒷모습이었다.
  그러고보니 그것은 지난주 토요일의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도 유리코의 연습일이지만 아마 오리 않으리라. 그 자긍심 강한 공부벌레 여사가 야만적인 키스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짐작이 간다. 어쨌든 귀찮은 것을 떨쳤다고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간 나는 깜짝 놀라 순간 발을 멈추었다. 연한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유리코가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의 땋은머리가 아니라 똑바로 풀어 늘어뜨린 긴 머리를 흔들며 그녀는 빛나는 눈으로 나를 찌릿 올려다보았다.
  ‘흥, 나와 겨뤄보겠단 거냐.’
  나는 그녀를 마주보고 의자에 앉았다. 이런 때는 숙부의 팔이라도 잡아주고 싶다. 그래도 연습이 끝난 아버지와 유우 씨가 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가 시작되자 일이 묘하게 진행되었다. 유리코의 서비스가 너무나 좋은 것이다. 나에게 순순히 접시를 돌리고 불평불만 없이 편의를 봐 준다. 몸동작도 부드러워 평소의 공부벌레로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점심식사를 끝내고 방에 들어가 차 시간을 갖자 유리코의 태도는 더더욱 친밀해졌다. 나는 짜증이 나서 일찍 방을 나왔지만 유리코까지 복도로 좇아왔다.
  ‘무슨 용무야.’
  ‘나, 이제까지 미안했어. 너를 오해해서. 사실은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너무나도 바보 같아서 거의 히스테릭하게 웃을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오해했다고, 사실은 다정한데? 정말이지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군.’
  ‘니시키 군….’
  ‘키스 한번으로 남자를 믿는다니. 네가 너무 숙맥이라 날라리의 실제를 코치해 준 것 뿐이야. 마누라 기분 내지 말았으면 좋겠군.’
  나는 유리코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근처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장지문을 닫았다. ――웃기지 마! 고함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밖에서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울고 싶은 건 이쪽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화내고 싶은 동시에 울고 싶어지며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 벅차 올라온다. 그때였다.
  장지문 너머에서 깊은 목소리가, 무언가 상냥하게 말하는 기척이 나서 나는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틀림없이 유우 씨였다. 유리코를 달래는 것이겠지. 아까의 대화가 들렸을까 생각하니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유리코는 아직도 울먹이고 있다.
  ‘니시키 군은 내가 싫은 거예요.’
  ‘그렇지 않아.’
  유우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유리코 쨩도 이 세계의 사람이니까 알겠지.’
  ‘네…?’
  ‘니시키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성질인 거야.’
  나는 숨이 멎었다. 순간 냉수를 뒤집어쓴 것처럼 몸이 차가워지고 다음 순간에는 불 속에 뛰어든 듯 뜨거워졌다.
  ‘그는 예전부터 쭉 어떤 사람의 남첩이었어. 비밀이야….’
  더없이 상냥한 유우 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심장이 옥죄어져 가슴의 아픔에 몸을 뒤틀면서도, 그래도 도망치려고 몇 장인가 장지문을 열어 비틀비틀 나아갔다. 그러나 그러던 중 눈앞이 캄캄해져, 나는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내 입술은 숙부의 입술에 덮여 있었다. 숙부의 입맞춤이 아프다. 아아, 나는 아직 침상에 있다, 하고 멍한 의식으로 생각했다. 아까의 일은 꿈인 것이다. 유우 씨가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할 리가 없는 걸. 그렇게 생각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희미하게 열었을 때, 나는 아연해졌다. 내 침상을 멀리서 둘러싼 사람들――아버지, 유우 씨, 그리고 하녀 사키코.
  ‘변태 자식.’
  나는 아직도 덮인 숙부의 입술을 팔로 밀어내려 했지만 축 늘어진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인공호흡 따윈 이제 필요 없어!’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목이 말라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저리 가!’
  외치고 싶다. 당하는 모습 따위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다. 나는 겨우 얼굴을 돌려 숙부의 입술을 피했다.
  ‘정신이 들었나.’
  알고 있었던 주제에, 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두의 앞에서 나를 구경거리로 만들어서 참 즐거웠겠군. 나는 도대체 얼마나 이렇게 당하고 있었을까. 풀어헤쳐진 가슴에는 아직 잊어버린 듯이 숙부의 손이 놓여 있었다. 벗은 가슴을 애무당하고 입술을 빨리는 모습을 보이다니, 내가 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우 씨의 걱정스런 눈이 발가벗은 나를 보고 있다. 유우 씨, 당신이 말한 대로야. 보다시피 나는 외숙부의 어린 애인이란 얘기지. 정사에 익숙한 몸은 지금이라도 반응할 것 같아. 웃으면 되잖아, 걱정스러운 척 하지 말고.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유우 씨는 슬쩍 피했다. 그림 속의 배우 같이 색기 어린 눈이 속눈썹의 그늘에 숨었다.
  ‘일단 이걸로 됐어.’
  외숙부가 겨우 내 가슴에서 손을 떼고 아버지와 유우 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아버지는 언제나와 같이 까다로운 얼굴로 끄덕이고 내 침상으로 다가왔다.
  ‘기분은 어떠냐.’
  담담한 목소리다. 내 대답 따윈 처음부터 듣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그에게 있어서 나는 어머니의 불륜의 결과니까, 사실은 내 얼굴 따위 보고 싶지도 않을 터이다.
  ‘넌 정말로 그것과 닮았군. 얌전한 얼굴을 하고 고집이 센 구석까지 똑같아.’
  대답하지 않는 나 때문에 조금 언짢아진 듯 아버지는 말했다.
  ‘아직 의식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래요, 매부.’
  감싸주듯 말하며 외숙부는 슬쩍 공범자 같은 곁눈으로 나를 본다. 너구리같은 놈,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눈을 감은 내 귀에 유우 씨의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정말로 괜찮은 거지요?’
  유우 씨,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 그래도 유우 씨의 목소리는 어쩌면 이렇게 기분좋게 울릴까. 몸이 어딘가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난 이 애의 주치의야.’
  외숙부는 기분 상한 듯 대답했다. 소용없어, 잡아 떼 봤자. 유우 씨는 외숙부가 내 침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때, 문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유리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외숙부를 부르고 있다. 병원 환자의 용태가 급변한 듯하다.
  ‘정말이지 무슨 날이람!’
  외숙부는 더더욱 기분이 상하여 검은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사키코 씨라고 했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책임지고 이 아이를 돌봐.’
  아, 그런가. 확실히 이 사키코라는 하녀는 간호부 자격을 갖고 있어서 작년 조부의 병수발을 위해 고용되었다. 조부는 이미 죽었지만 그래도 이 집에서 쭉 일하고 있다. 별채에 사는 나는 그녀와 마주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집의 하녀들 중엔 신참자니 부엌 쪽에서 일하고 있으리라. 나는 모란꽃 같은 그녀를 보고 사키코(咲子) 라는 이름도 겉멋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는 않았다.
  ‘안정되셔서 다행이에요.’
  아양떠는 듯한 말투다. 나는 무시하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쓰러져 계신 걸 발견했을 땐 깜짝 놀랐어요. 그렇죠, 유우지 선생님.’
  그녀의 말에 나는 무심코 눈을 떴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은 분명히 유우 씨를 향하고 있었다.
  유우 씨가 나를 본다. 그 모양 좋은 입술이 망설이듯 아주 조금 열렸을 때, 나는 침대 위에서 굴러 떨어질 기세로 세게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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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는 올리고 싶고 근성은 없고.
  글은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고.
  그래서 옛날에 세이브해둔 번역파일을 올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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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12/17 00:1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렐리아 2008/12/18 08:41 #

    80년도 초반에 발표된, 무려 야오이의 원조격 되는 작품이랍니다. 정말 고전적이에요.
    번역은 제 근성이 허락하는 대로 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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