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사라졌다. 머리에서부터 소름이 쫙 끼쳐서 빳빳하게 경직된 목을 돌려 뒤를 보니, 방에 백로인가 싶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목덜미가 새하얗다. 선반 옆, 그 방 동남쪽에 둔 거울을 향하고 선 뒷모습이다. 뜨거운 김에 애기동백이 시들었나 했다. 젖은 듯 촉촉하게 몸에 붙는 남빛 도는 회색 무늬 옷을 입고, 연분홍색과 흰색 바둑무늬가 뚜렷한 속띠로 가슴 밑을 졸라맨 허리는 없어질 듯 잘록했다. 옷자락의 무늬가 가볍게 나부꼈다. 한쪽 무릎을 약간 들어 올렸는데 양쪽 옷자락에 화려하게 물들인 무늬가 아련하게 비쳤다. 이슬이 떨어질 듯 틀어 올린 머리에 자청색 댕기가 창백하다. 속에 입은 옥색 옷 안감이 요염하게 휘감긴 흰 손으로 솔을 부드럽게 사용하면서, 조금 구부린 자세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하고 있었다.
사카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숨이 멎을 듯했다. 아아, 어쩌면. 입고 있는 옷은 눈 밑에 엷게 든 단풍, 눈빛 피부가 오히려 엷은 단풍을 감싼 듯하다. 옷깃을 잡아당겨 깊이 드러낸 목덜미를 여미고는 무릎 가까이로 살랑 떨어진 종이를 주워 돌돌 말아서 손가락을 닦고 떨어뜨리는 게 다다미에 분이 흩어지는 듯했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매끈하게 들렸을 때 목욕탕에서 느낀 사람 피부와 혼동할 만한 향내가 나더니 조금 비스듬하게 돌아보는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입을 대는 곳이 하얗고 담뱃대는 반들반들 검다. 톡 하고 재 떠는 소리가 울렸다.
홱 돌아서 사카이를 본 희고 갸름한 얼굴은 눈가가 볼록하고 콧대가 우뚝 섰는데, 무척이나 희다. 감정을 담은 부드러운 눈썹 양 끝을 종이로 바싹 가리고 커다란 눈으로 가만히 보면서 말했다.
“어울립니까?”
그러고는 빙긋 웃는 이가 검다. 양 옷깃을 모으며 우뚝 섰다. 얼굴이 문 위턱에 닿을 정도로 훤칠하게 키가 커졌다.
사카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숨이 멎을 듯했다. 아아, 어쩌면. 입고 있는 옷은 눈 밑에 엷게 든 단풍, 눈빛 피부가 오히려 엷은 단풍을 감싼 듯하다. 옷깃을 잡아당겨 깊이 드러낸 목덜미를 여미고는 무릎 가까이로 살랑 떨어진 종이를 주워 돌돌 말아서 손가락을 닦고 떨어뜨리는 게 다다미에 분이 흩어지는 듯했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매끈하게 들렸을 때 목욕탕에서 느낀 사람 피부와 혼동할 만한 향내가 나더니 조금 비스듬하게 돌아보는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입을 대는 곳이 하얗고 담뱃대는 반들반들 검다. 톡 하고 재 떠는 소리가 울렸다.
홱 돌아서 사카이를 본 희고 갸름한 얼굴은 눈가가 볼록하고 콧대가 우뚝 섰는데, 무척이나 희다. 감정을 담은 부드러운 눈썹 양 끝을 종이로 바싹 가리고 커다란 눈으로 가만히 보면서 말했다.
“어울립니까?”
그러고는 빙긋 웃는 이가 검다. 양 옷깃을 모으며 우뚝 섰다. 얼굴이 문 위턱에 닿을 정도로 훤칠하게 키가 커졌다.
삼나무, 노송나무가 우거진 속을 들어갔어요. 그것도 생각만큼 깊숙하게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온통 풀꽃이었어요. 하얀 도라지로 가장자리를 두른 백 평이나 될 법한 새파란 연못이 있어서 보니 그 물가에서 둘, 셋, 열 칸도 안 떨어진 데에 한 사람,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가 경대를 두고 비스듬히 바라보며 화장을 하고 있는 거예요.
머리 모양은 어떤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한번 보니 그때 그 대단하고 무시무시함이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술이 얼음이 되어 가슴에 스밉니다. 오싹해요.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잊혀지지 않아요. 불경스럽기는 하지만 집에 둔 불단에 모신 모습이라 여기면서, 하루라도 이 연못물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떠올리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머리 모양은 어떤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한번 보니 그때 그 대단하고 무시무시함이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술이 얼음이 되어 가슴에 스밉니다. 오싹해요.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잊혀지지 않아요. 불경스럽기는 하지만 집에 둔 불단에 모신 모습이라 여기면서, 하루라도 이 연못물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떠올리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대강 준비를 끝내고 두 번째로 목욕을 마친 뒤에 엷게 화장을 하셨습니다. 남빛 도는 회색 빛깔의 옷이 얼굴 그림자 때문에 연보라 빛으로 보일 정도로 피부가 그리 흴 수가 없습니다. 거울 앞에서.”
사카이가 무심코 돌아보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금으로 된 물부리에 적동색으로 칠한 담뱃대를 물고 이를 좀 물들이신 듯 보이셨습니다. 품에 지니고 다니는 종이를요, 눈썹에 붙이고 저를 갸름하게 보시곤, 어울립니까? 하더군요.”
“다다미 가장자리가 도라지꽃으로 하얘진 듯 보였습니다. ‘네, 황홀할 만치 어울리십니다’ 하는 말을 듣더니 종이를 치우자 눈썹 자국이 지금 막 깎은 듯 새파랬습니다.”
사카이가 무심코 돌아보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금으로 된 물부리에 적동색으로 칠한 담뱃대를 물고 이를 좀 물들이신 듯 보이셨습니다. 품에 지니고 다니는 종이를요, 눈썹에 붙이고 저를 갸름하게 보시곤, 어울립니까? 하더군요.”
“다다미 가장자리가 도라지꽃으로 하얘진 듯 보였습니다. ‘네, 황홀할 만치 어울리십니다’ 하는 말을 듣더니 종이를 치우자 눈썹 자국이 지금 막 깎은 듯 새파랬습니다.”
얼음 같은 달이 교교하게 맑아지면서 산의 차가운 공기가 안개에 감싸인 채 얼어붙습니다. 암석이 우르르 소리를 내는 좁다란 계곡물이 추운 날씨에 말라붙어서, 졸졸, 졸졸……
놀라서 봉당으로 나서니 강가에 얇은 은처럼 서 있던 모습이 안 보입니다. 초롱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니 있던 곳에서 조금 벗어나 불룩하게 쌓인 눈을 베게 삼아 계곡물 바위에 픽 쓰러져 있었어요. ‘추워’ 하고 비몽사몽간에 ‘아아, 차가워’ 하더니 그 입술에서 세 줄기로 나뉜 실 같은 피가 흘렀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참 측은하게 됐습니다. 옷자락을 모으려고 하는데 흐트러진 양쪽 옷자락에 들인 무늬가 그 색깔 그대로 바위에 얼어붙어서 이슬 받은 가을꽃을 만지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일으켜 세우자 오글오글하게 주름을 넣은 비단이 얼음 때문에 득득 소리를 내는 게 낡은 장지문에서 다색 판화를 뜯어내는 듯하여 이쪽이 몸을 찢는 것 같은 마음이었지요. 가슴에 고인 피는 따뜻하게 흘렀는데……
이렇게도 저렇게도 참 측은하게 됐습니다. 옷자락을 모으려고 하는데 흐트러진 양쪽 옷자락에 들인 무늬가 그 색깔 그대로 바위에 얼어붙어서 이슬 받은 가을꽃을 만지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일으켜 세우자 오글오글하게 주름을 넣은 비단이 얼음 때문에 득득 소리를 내는 게 낡은 장지문에서 다색 판화를 뜯어내는 듯하여 이쪽이 몸을 찢는 것 같은 마음이었지요. 가슴에 고인 피는 따뜻하게 흘렀는데……
전등알이 소용돌이가 되어 검게 둥실 떠오르더니 고타쓰 위에 초롱이 희미하게 걸렸다.
“어울립니까?”
방은 온통 물처럼 보이고 하얀 도라지가 물가에 핀 것처럼 눈발이 바닥에 흩어졌다.
“어울립니까?”
방은 온통 물처럼 보이고 하얀 도라지가 물가에 핀 것처럼 눈발이 바닥에 흩어졌다.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에 실린 단편 '눈썹 없는 혼령'에서 인용한 부분들이다.
처음에는 꽤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일단 문장 자체의 리듬이 뭔가 나와 맞지 않았다. 옛말투이기도 하고, 근대 일어를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협화음의 탓도 있을 것이다.
두번째 읽었을 때 이 문장들의 진가를 알았다. 그리고 탄식했다. 내가 일어를 잘했더라면 원서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언젠가 타케쿠라베에 도전했다가 혼비백산 도망쳐 버린 내 실력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무슨 무늬네 무슨 재질이네 색이네로 일일이 수식된 저 '기모노'에 대한 부분도, 분명히 멋진 고유명사들의 조합이었을 텐데. 예를들어 '오글오글하게 주름을 넣은 비단' 운운은 분명 '치리멘' 한 단어에 대한 번역어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 문장들은 섭취할 가치가 있다. 치렁치렁하면서도 결코 무겁지 않고, 피부를 톡톡 두드리는 듯한 감각적인 맛이 있다.
'눈썹 없는 혼령'은 주인공 남성 화자가 모 지방의 여관에 투숙한 날, 그야말로 요괴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혼령을 본다는 이야기다. (사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눈 내리는 밤, 여관 주인과 고장 명물인 지빠귀를 구워먹으며 (이 또한 무슨 풍류!) 주인공은 그 목격담을 이야기하고 주인의 사정을 듣는다.
주인은 옛날 도라지가 핀 연못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그 고장에서 유명한 요괴로, 혹은 여신이라고도 하고 귀신이라고도 한다.
주인공에게 모습을 보인 혼령은 옛날 그 고장 몰락한 세도가의 방탕한 아들의 첩이었던 기생이다. 그녀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 부분은 기억 안난다), 방탕아의 아내를 위해 아름답게 치장하고 길을 나선다. '첩인 내가 이렇게 아름다우니 하물며 그 아내는' 이라는 조리였다. 다른 고장 사람인 기생은 그때 여관의 심부름꾼이던 주인에게서 도라지 연못의 부인 이야기를 전해듣고, 눈썹을 깎고 이를 물들이는 등 그것의 모습대로 치장한다.
그녀는 밤중에 심부름꾼과 함께 소용돌이 무늬의 초롱에 의지하여 길을 나서는데, 도라지 연못가를 걷다가 심부름꾼이 무슨 이유에선가 잠깐 그녀와 떨어진 사이, 그녀를 요괴로 착각한 사람에 의해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주인이 옛 이야기를 다 마치자 방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그리고 열린 창에서 눈발이 날아들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알록달록한 비단을 몇 겹이나 무장하듯 겹쳐입은 기모노라거나, 틀어올린 머리채, 눈처럼 흰 피부, 없는 듯 잘록한 허리, 무엇보다도 검게 물들인 이와 푸르게 깎은 눈썹. 이 너무나도 인공적이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것들이 모두 아름다움의 지표라니 과연 무서울 만도 하다.
이 소설의 문장들은 아름다움이라는 경지에서 융합된 초자연성과 인공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딕한 아름다움이다.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형용은 몇 년 전까지는 이곳저곳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인터넷 소설이나 만화에서까지) 요즘은 통 만나기 어렵다. 바야흐로 고딕 뷰티의 시대가 명백하게 아닌 것이다... 그래도 시대착오된 미적 감각에 얽매이는 나 같은 인종은 있어서,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만날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무언가를 위한 형용을 몰래 갈고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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