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문단은 이 블로그에서 심심하면 등장하는 [도립하는 탑의 살인]에서 인용한 것이다. 전에 [작중작『倒立する塔の殺人』4] 에서 다이제스트한 것을 다시 갖다 붙여 보자면,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무렵 일본의 한 여학교. 미와 사에다라는 소녀가 미션 스쿨에 다니는 선배 여학생 코우즈키 리츠코로부터 '도립하는 탑의 살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아름다운 노트를 건네받는다.
코우즈키 리츠코는 그 노트에 쓰여진 글이 자신의 친구 나나오 교코의 불가사의한 실종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나오 교코라는 여학생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어 버렸다.
미와 사에다는 나나오 교코가 시다라 쿠니코라는, 역시 미션 스쿨의 후배로부터 스토킹에 가까운 연모를 받고 있었다는 것 또한 전해 듣는다. 시다라 쿠니코는 칠칠맞고 사람을 깔보는 데가 있는 아이라 어딜 가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코우즈키 리츠코는 노트 '도립'을 시다라 쿠니코가 자기들의 숙소에 몰래 넣어두고 갔다고 말했다. 그때 노트에는 수기 하나와, 소설 '도립하는 탑의 살인' 앞부분이 쓰여져 있었다.
코우즈키 리츠코는 그 노트에 자신의 수기와, 소설의 뒷부분을 써 둔다. 나나오 교코가 사라진 후 그녀는 미와 사에다에게 노트를 건넨다.
그리고 후일 공습으로 불타 무너진 채플의 폐허에서 신원 미상의 시체와 함게 코우즈키 리츠코의 불탄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가 어째서 방공호가 아닌 채플에 있었는지, 연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와 사에다는 노트에 자신의 수기를 쓴다. 그러나 소설의 뒷부분은 쓰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반 친구인 아베 킨코에게 노트를 넘긴다.
그리고 소설과 수기의 내용에 의혹을 품은 아베 킨코는 시다라 쿠니코와 접촉하고, 나나오 교코의 실종과 코우즈키 리츠코의 비밀스런 죽음의 진상을 알게 된다.
라는 내용이다.
맨 위에 인용한 대목은 아베 킨코에게 노트를 건네준 미와 사에다가 그 노트에 쓴 글이다.
여학생들의 돌림 노트라는 소재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거의 관음증과도 같은 호기심이다.
영화 여고괴담 2에서도 돌림 노트...랄까 교환일기? 비슷한 물건이 등장했는데, 나는 당시 여중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공예품에 가까운 노트의 너무나도 여학생스러움에 압도될 만큼 당혹스러웠다. 뭐랄까, "여자애들은 모두 저렇게 치렁치렁하게 장식된 물건을 써야 하는 건가? 저건 노트라기보다는 이미 아트(art)잖아 아트!" 라는 기분이어서, 거의 화가 나기도 했다. 나도 여자아이이지만, 저딴 쓸데없고 바보같은 거 쓰고 싶지 않아. 저런 애랑 나를 같이 취급하지 말란 말이야.
당시의 나 역시 노트를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고, 나름대로 예쁜 노트가 좋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물건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최우선 기준은 '편의성'이었다. 필기감이 좋은가, 손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가,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가 등등.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혼자만을 위한, 혼자만에 의한 비밀스런 노트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글을 교환하겠다는 발상은ㅡ있었던가ㅡ있었다고 해도 실행하기는 한사코 거부하는, 이상한 종류의 결벽성 같은 것이 있었다 (중2병이라 해도 무방할까).
글 같은 걸 교환해 봐야 의미 없다. 글로 자신의 진심을 표현할 수 있다거나, 그걸 타인에게 읽힘으로써 받아들여지리라는 건 그냥 환상이다. 누구에게 보여준다면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만인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을 써야 한다. 라고 그때의 나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떠올리면 이런 괴팍함이랄가 여학생스럽지 않음이랄까 필요 이상으로 모던함이랄까(...) 오만함 같은 면이야말로, 사춘기 여학생다움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 찻잔 안의 질풍 노도를 다 들이마셔버린 지금은, 그 '아트'에 가까운 장정을 가진 '돌림 노트'가 페티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돌림 노트'에 열을 쏟았던 역사가 없다. 그 물건에 대해서 완전히 공백이다. 그래서 오히려 페티시적인 환상이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페티시는 물건이라는 상징에 대한 숭배다. 나에게도 '돌림 노트'는 하나의 상징물이다.
그건 분명, 내가 그때 기이한 '결벽증' 때문에 가질 수 없었던, 여자아이들만의 내밀하고 풍요한 관계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그렇다. [여자아이들만의 내밀하고 풍요한 관계]ㅡ 그건 그대로 하나의 드라마다. 이야기다. 로망이다.
어떤 상징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페티시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온다 리쿠 역시 페티시즘 강한 작가가 아닌가, 하고 막 떠올랐다. 뭐 내가 페티시즘이라고 부르는 건 일반적으로 '노스텔지어'라고 칭해지지만.
온다 리쿠의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비밀 일기'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한다.
온다 리쿠에게 있어서도 '돌림 노트'는 (여기에서는 '비밀 일기'이지만) 소녀 시절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 '자물쇠 달린 일기장'이라는 것을, 나는 초등학생 때 이미 썼다. 아아, 기억난다. 그때는 딱히 글을 쓰지 않더라도, 자물쇠 달린 일기장, 이란 걸 소유하는 자체에 집착하기도 했다.
막상 글을 쓴 것도 있고, 쓰지 않은 채 먼지만 맞은 것도 있다.
그러고보면 나는 지금도 옛날의 노트들을 책장 맨 윗칸에 보관하고 있다. 절대로 펴 보는 일은 없다. 그건 금기다. 금기를 범하면 신비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온다 리쿠의 장기인 불온하면서도 아련한 이미지와 심리 서스펜스, 다채로운 대화와 디테일로 전해지는 '호사스런 일상'의 느낌이 가득하다. 게다가 주인공 소녀들의 독백에서 드러나는, 사춘기 소녀만이 갖는 결벽과 고상함, 비밀스러움...
달리 말하면, 내가 돌림 노트라는 페티시의 대상에서 갈구하는 '바로 그 이야기' 를, 온다 리쿠는 [굽이치는...]에서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미나가와 히로코나 온다 리쿠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역시 소녀들의 돌림 노트가 중요한 제재로 사용되는 작품이 있다. 이시자키 히로시의 [체인 메일]이라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의 '돌림 노트'는 아쉽게도(?) 물질적인 형태 없이, 인터넷 상의 보드 게시판으로 되어 있다. 이 게시판에 주인공 소녀들은 릴레이 소설을 쓴다.
주인공 소녀들은 자신의 핸드폰에 전송된 정체불명의 스팸 메일을 통해 '릴레이 소설' 쓰기에 초대받는다. 네 명의 소녀들이 소설 쓰기에 참여하는데, 그녀들은 서로의 정체를 모른다.
가벼운 기분으로 쓰던 소설은 점점 기묘하고 위험한 내용으로 변해가고, 소녀 중 한 명은 소설 속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습격받게 된다...
[체인메일]은 위의 두 작품에 비하면 스트레이트한 분위기고, 그 테마도 외로운 소녀들의 공감과 성장 비슷하게 요약할 수 있는 매우 건강한(?) 작품이다. 구조면에서 보면 스트레이트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트리키한, 아주 잘 짜여진 소설이다. 남녀노소에게 가감없이 일독을 권할 만한 그런 작품.
하지만 내 '취향'만으로 보자면 역시, 미나가와 히로코의 우아한 독기나 온다 리쿠의 불온함이 단연코다.
그런 한 방울의, 그러나 농도 짙은 '사악함'.
그것이야말로 갑갑하고 너절했던 내 소녀 시절의 일상에서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내게 있어서도 역시, 결코 손이 닿지 않을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거쳐 온 너절함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줄 무언가를 항상 찾는다.
그것은 음악일 수도, 그림일 수도, 액세서리일 수도, 음식일 수도, 물론 한권의 책일 수도 있다.
닿는 것을 뭐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마이더스의 손은, 어쩌면 페티시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들의 '이야기'라는 손을 통해 한 권의 노트를 황금으로 만든다.


덧글
2008/12/15 22:2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오렐리아 2008/12/16 02:08 #
괜찮습니다ㅋ 트랙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