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중작『倒立する塔の殺人』3 └번역/인용/애정



작중작『倒立する塔の殺人』2 

  〈한동안 나를 응시한 후 화가는 일어서서 따라오라고 손가락으로 지시하며 문의 하나를 열었다. 그 너머로 다락방에 통하는 급한 계단이 있었다. 창이 없어서 어둠이 검은 물처럼 고여 있었다. 화가는 회중전등으로 발치를 비추며 앞장섰다. 나는 거칠거칠한 벽에 손을 짚어 몸을 지탱하며 화가의 등을 좇았다. 나의 작은 발에 계단의 낙차는 너무 컸다. 먼저 올라간 화가는 뒤돌아서 내게 양 팔을 뻗어 안아들었다. 화가의 맨살이 닿았다. 테레빈유와 담배의 강한 냄새가 났다.
  한 팔로 나를 안아들고 화가는 눈앞의 문에 열쇠를 꽂아 돌려 열었다.
  화가가 회중전등을 끄자 실내는 암흑이 되었다.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나는 암흑에 익숙했다. 고아원에서는 징벌로 좁고 어두운 방에 가두는 일이 가끔 행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후 화가의 팔이 듬직하게 나를 안고, 나는 양 팔을 화가의 목에 두르고 있었다. 화가의 뺨은 촉촉하니 매끄럽고 턱 근처가 약간 수염 때문에 거친 느낌이었다. 나를 안은 채로 화가는 암흑의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마루는 수평이 아닌 것 같았다. 내 몸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나의 몸이 뒤집혔다. 화가가 내 양 발목을 잡고 공중에 매달듯이 한 것이다. 머리에 피가 몰려 얼굴이 뜨거워진다. 시계의 진자처럼 내 몸은 발목을 받침점으로 좌우로 흔들렸다.
  내 사고는 발목에서 행해지고 머리는 단순한 추가 되었다. 이윽고 내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다.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지만 비치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번갯불에 맞은 것 같았다.
  눈꺼풀을 꽉 닫았지만 빛은 눈의 안쪽을 찔렀다.
  매끄러운 감촉을 눈꺼풀 위에서 느꼈다. 얇은 눈꺼풀을 통해 안구가 간지러웠다. 그 매끄러운 것은 내 눈꺼풀을 살짝 열었다.
  번갯불? 그런 것은 없다. 천정의 전등에 불이 들어온 것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회색의 벽이었다. 화가는 등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있었다.
  화가의 손은 내 왼 어깨를 짚고 오른 어깨를 가볍게 눌러 빙글 하고 전후의 방향을 바꾸었다.
  숨을 삼켰다. 벽면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내 상반신이 비치고 있었다. 머리를 아래로.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등 뒤에 선 전라의 화가도 역시 머리를 아래로 하고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나는 실신했다.〉

  그는 페이지를 더 넘겼다.

  〈후일 나는 언제랄 것도 없이 알았다. 젊은 화가의 부친은 부유했기에 아들이 원하는 대로 아틀리에를 주었다. 추방이라고도 유폐라고도 말할 수 없는 처우였던 듯하다…….
  내가 이 학원에 부임하고 수일 후에 낙뢰로 예배당의 탑이 붕괴된 것은, 천벌이지 않을 수 없다.
  붕괴하기 전날 나는 아래의 교정, 서쪽 근처에 있는 연못가에 머물렀다. 연못은 교원치고는 손질되지 않고 자연 지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리와 등받이에 당초무늬의 주물(鋳物)을 두르고, 앉는 부분은 판자로 된 볼품없는 벤치가 연못가에 놓여 있었다.
  수면은 석양을 비추며 격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예배당의 첨탑은 수저(水底)를 향해 솟아올랐다. 다음날의 참사를 예상시키는 전조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때 갑자기 긴 시간 기억의 밑바닥에 침잠하던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아래는 위로. 땅은 하늘로. 邪는 正으로. 죽음은 삶으로.
  그날 밤, 나는 화가의 다락방에 대한 꿈을 꾼 것 같다. 깨어나자 내용은 잊어버렸다. 고문과 황홀이 구분할 수 없이 녹아 있는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화가의 얼굴을, 나는 지금도 떠올릴 수 있다. 넓은 이마, 짙은 눈썹. 미목 단정한 청년이었다. 마이센 자기 같은 매끄러운 가면 아래, 점토 덩어리 같은 맨얼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청년은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점토로 된 맨얼굴은 그의 혼인 것이다. 양식과 약속에 의해 보존되는 외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생래 불가능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때론 타자를 파괴하며, 또 다른 가망 없는 내면이 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렇게 느낀다.
  다음날 하늘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품고 있었던가.
  아니, 갑자기 암운이 태양을 가린 것은 오후 두 시 무렵이었다. 연못에도 흘러든 비구름은 중천에 빛나는 해를 기습하여 지상의 색채를 없앴다.
  나는 그때 도서실에 있었다. 이는 행운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이지만.
  토요일 오후, 심심풀이 삼아 도서실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 나라의 말이 쓰여진 책은 눈앞에 있어도 내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화집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모국어로 인쇄된 서적을 발견했다. 생도의 어학력을 늘리기 위해 비치된 것이겠지만, 읽는 이가 없는지 손에 닿은 흔적조차 없는 채로 낡았다. 한권을 뽑아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절단면에 금색 도료가 발라져 있어 페이지를 넘기자 파락파락 소리가 났다.
  희미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음악실이 가까운 것이리라.
  들리는 것은 쇼팽의 폴로네이즈 제 4번이었다. 저음역을 연주하는 선율이 암울하다.
  손에 든 책은 옛날 읽은 적 있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다. 지금와서 처음부터 다시 읽을 기분도 들지 않아 하수도에 관한 부분부터 다시 읽을까 하고 페이지를 넘기자, 「그것이 사랑이다」라는 어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부분을 읽어 보았다. 「우주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까지 축소시켜 버리고,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을 신으로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 그것은 천사들이 별에게 하는 인사이다.」
  공허한 레토릭이다.
  그때, 돌연히 낮이 밤으로 반전한 것이다. 밤은 도서실 속에도 침입했다. 누군가가 전등을 켜서 실내는 노르스름했다. 총탄을 쏘아대듯이 이상하게 커다란 빗방울이 유리창을 격렬하게 두드렸다. 실내의 조명이 빗방울에 은색의 윤곽선을 둘렀다.
  번개가 어둠의 배를 찢었다. 넘치는 백광이 실내에 파랗게 울리고 뇌명이 뒤이었다. 그래도 울려퍼지는 것은 폴로네즈의 포르티시모였지만.
  법왕청이 세계에서 유일한 진실로 하는 신은 원래 황야의 백성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그 아종인 크리스트교의 사도들은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를 인위적으로 왜곡하여 변모시켰다. 특히 사도 바울이. 법왕의 군대는 게르만의 신을 죽이고 켈트의 정령들을 죽였다.
  내가 신에 무관심하냐고 묻는다면, 정반대다. 악마만큼 신을 사모하는 자는 없다. 아니, 나는 악마라 자칭하기에는 너무 비소(卑小)하지만, 신을 욕망하는 것은 자신을 속일 수 없이 사실이다. 바울이 왜곡하고 법왕과 성직자와 신학자가 날조한 신이 아니라, 진실의 신을. 황야의 백성을 위한 신이 아니라 진실로 보편적인 신을. 그것은 아마도 내 안에 있다. 타자의 깊은 곳에도 있다. 육체를 초월한 불가시한 그것은 도립(倒立)에 의하여 명확히 의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기이 로스탕의 수기는 거기에서 끊겨 있었다.
  아니, 페이지의 여백에 날려 쓴 듯한 거친 문자가 적혀 있었다.
  〈젤소미나여, 그대의 향기로운 방문을 기다릴 뿐이다. 이국의 내 위안이여.〉
  그 문자 위에 검붉은 흔적이 흩어져 있었다. 혈흔처럼 보였다. 기이는 여기까지 쓰고 발작적으로 손목을 그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젤소미나. 이탈리아 여성의 이름이다.
  이 나라에서 유럽 여성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기이의 신변에 그런 여자가 있었던 것일까.
  기이의 자살미수.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장난치는 것과 다름없는 가벼움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부분이, 기이에게는 있었다. 생을 가벼이 보기에 사도 가볍다.
  기이와의 나쁜 장난을 떠올릴 것 같아 그는 그것을 의식의 바닥에 눌러 가라앉혔다.
  미나모는 과외수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과외수업에서 문제를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원측은 그 역시 경계하여 생도에 대한 개인적인 접촉을 금지한 것인가.
  애초에 여성과의 옥신각신이 기이를 자살로 몰아갔다는 것을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기이가 자살한다면 타인에게 설명할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이, 물웅덩이를 넘는 것처럼 훌쩍 죽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혈흔의 정도로부터 정맥을 가볍게 찢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가볍게 물을 건너기 전에, 발톱 끝으로 물을 차보는 것 정도가, 손목에 얕게 상처낸 행위일 것이다.
  
  장미에 긁힌 상처는 거의 닫혀 있었지만 그가 손을 움직이면 조금 벌어져 다시 피를 뿜었다. 방울지는 핏방울이 종이 위 혈흔에 겹쳤다.
  그는 노트를 닫고 서랍에 넣어, 열쇠를 잠그고 다시 한 번 밖으로 나왔다.
  돌계단을 내려와 절벽 밑의 못가에 섰다. 수면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예배당의 종루가 늙어빠진 뇌수 같은 구름 낀 하늘에 고립해 있었다. 낙뢰로 파괴되어 재축되었다는 탑이다.
  그 이전의 탑이 수저를 향해 도립하는 것을 보았다고, 기이는 썼다. 그리하여 계시를 받았다고.
  수면에 비치는 건물과 사람의 모습 따위 기이에게는 익숙한 일로, 삼십 수년 동안 몇 번이나 보았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꿈에서 되살아난 것은 낙뢰의 전날이었다. 수면에 비친 격렬한 석양의 색과 거꾸로 선 첨탑이 주는 힘은 그렇게나 강렬했는지도 모른다. 이어서 다음날 일어난 탑의 붕괴가 기이에게 생사의 경계를 단번에 넘게 만든 것일까.
  아래는 위로. 사는 생으로. 마른 장신의 기이가 검은 옷을 날개처럼 펼치고 물속을 향해 비약하는 모습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불가시한 것을 보기 위한 도립. 즉, 투신인가.
  낙뢰가 죽음을 유발한 것인가.
  〈양식과 약속에 의해 보존되는 외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생래 불가능한, 비통한 내면〉
  어린 기이를 산 화가에 대해 쓴 부분이지만, 기이 자신에게도 맞아 떨어진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고쳐 생각한다. 기이가 낙뢰 직후 죽었다면 로코코풍 거울과 라이팅 데스크의 필기도구, 그리고 서랍 속의 노트가 남아있을 리가 없다. 예배당에 접한 그의 주거지도 반쯤 붕괴하여 재건되었으니까. 그들 물건들은 재건 후에 마련되었을 터이다.
  기이에게는 멈춰설 시간이 있었다. 탑과 교사관 일부의 재건이 완성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그 ‘시간’은 기이를 냉정하게 하는 효과를 갖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시간’을 기이는 화가와의 강렬한 도립의 기억을 반추하는 데 소비하여 죽음에의 경향을 강고하게 한 것일까.
  아래 교정에는 중등부 1, 2년 정도인 듯한 여자아이들이 어설프게 테니스를 하고 있었다. 스포츠를 할 때는 생도들은 ‘다이소우후쿠(체육복)’ 이라고 불리는 복장을 한다. 운동하기 위한 옷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흰 목면의 셔츠와 감색의 반바지 같은 것을 입는다. 반바지의 옷자락은 고무로 졸라매었다. 꼴불견이다. 토끼가 뛰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연못에 등을 향하고 서서 양 발을 벌리고 상체를 굽혔다. 아랫배에 살이 붙은 그로서는 꽤 괴로운 자세였다.
  어린 기이가 상하 반전되어 놓인 그림을 바로 보기 위해 취한 자세였다.
  그러나 물에 비친 풍경은 다리 사이로 보아도 그다지 인상이 다르지 않았다.
  머리에 피가 거꾸로 흘러 숨이 막혀 얼굴을 들었다. 눈앞에 소녀가 있었다.
  갑자기 그는 미나모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의 얼굴을 명료하게 기억해냈다.
  미나모는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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