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중작『倒立する塔の殺人』1 └번역/인용/애정

  미나가와 히로코의 倒立에는 여학생들의 돌림 노트라는 아이템이 등장한다.
  그 노트에 쓰이는 소설이『倒立する塔の殺人』이다.
  여학생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으로, 소녀들은 공습 폭격의 불안과 군수 물자 제조의 고된 노동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소녀 한 명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예의 돌림노트에는 죽은 소녀도 참여하고 있었다. 남은 소녀들은 노트를 읽고, 수기를 쓰고, 소설의 뒷부분을 이어 나간다.
  노트 속의 소설『倒立する塔の殺人』는 시간적으로는 소녀들이 처한 대전보다 좀 더 앞이 배경이다. 공간 배경이 되는 학교는 죽은 소녀가 다니던 유복한 아가씨 대상의 미션 스쿨이다.
  오만하고 딱딱한 성격의 프랑스인 남성 교사가 여학원에 부임하여, 전임자이자 옛 친구인 기이 로스탕의 돌연사에 의문을 갖는다.
  그는 여학원의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녀들은 지극히 예의 바르고 딱딱한 몸가짐 속에 불온하고 수상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의 평범한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난해한 수수께끼다.
  고풍스러운 문장으로 쓰인 이국의 풍경과 불온하면서도 감미로운 분위기가 더없이 아름답다.

  이 책倒立은 전부 다 번역하고 싶은 책이다. 아니 내가 직접 쓴다는 감각으로 해보고 싶어진다. 일어와 우리말의 문장구조적인 갭이 거슬린다. 내가 우리말 문장을 유려하게 구사할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여하튼, 작중작인 돌림소설 중 아름다운 '분위기'로 첫 문을 여는 1과 2 부분을 올려 본다. 오늘은 우선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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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倒立する塔の殺人』



  교사(校舍) 앞에 섰을 때 그는 생각했다. 서구 건축을 모방할 생각이었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약해 보일까. 건축 자재로 가벼운 돌을 쓰기라도 했나.
  무거운 여행가방을 바닥에 놓고 접수창구를 들여다보며 말을 걸자, 빈궁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쩔쩔매며 뭐라고 말했다. 그에게 통하지 않는 이 나라의 말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왔으므로 안내해 주겠지 하고 안에 들어가려 하자, 황급히 막아섰다.
  “학원장에게 초청받았다. 나는 이곳의 교사다” 설명했지만 상대는 양 손을 흔들며 그를 막고 어떤 동작을 반복했다. 구두를 벗으라는 뜻인 듯했다.
  ――예의 없는 놈…….
  가슴 앞에서 양 팔을 끼고, 그는 분연히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기 나라에서는 키가 작은 편이다. 갈색 머리는 서른 중반 치고는 색이 옅고, 땅딸막한 체형이 어울리는 둥근 얼굴로, 눈도 코도 아담해서 풍채가 서지 않는다. 그래도 이 나라의 남자들 보다는 크다.
  그대로 나아가려 하자 상대는 앞에 버티고 서 저지했다.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그는 한껏 욕했다. “추잡스런 동양인 꼬맹이.”
  “무언가 곤란한 일입니까”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향하자, 열예닐곱 살 된 소녀가 서 있었다. 아니, 스물일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소녀는 실제 연령보다 훨씬 어려 보일 때가 많다. 소녀가 말한 것은 서툴기는 해도 틀림없이 그의 모국어였다. 검고 긴 머리를 세 갈래로 땋아내리고, 이 나라의 누구라도 그렇듯이 편평한 얼굴에 작고 가는 눈과 작은 코가 겨우 달려 있다.
  “쥘 사망이 도착했다고 원장에게 전해줬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복도 깊숙한 쪽으로 걸어가는 등에 “사망이다”하고 그는 확인차 덧붙였다. 소녀는 뒤돌아서 공손히 인사했다.
  남자는 입구 근처에 놓인 뚜껑 달린 서랍으로부터 슬리퍼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그가 노려보자 시선을 피해 사무실로 사라졌다.
  금방 돌아온 소녀가 “원장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하고 다시 인사했다.
  뒤따르는 그를 “죄송하지만”하고 소녀가 멈춰세웠다. “건물 안에서는 신을 갈아 신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고 발치의 슬리퍼를 가리켰다.
  “왜?”
  “규칙이 그렇습니다.”
  열심히 서구를 흉내내면서도 아직 구도 생활이 몸에 배지 않은 것이다, 라고 그는 넌더리를 내며 구두를 벗었다. 서구의 문화문명을 견습하기 시작하고부터 아직 육, 칠년밖에 지나지 않은 나라다.
  소녀가 트렁크를 맡으려 하기에 “자네는 하인으로 고용되었나?” 라고 확인했다.
  “아뇨. 전문부의 생도입니다.”
  “그렇다면 하인의 일은 하지 않아도 좋아. 아까 본 남자는 잡일꾼인가?” 그렇다면 짐을 옮기라고 명할 생각이었으나, “사무를 보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이 소녀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이 나라는 아시아 대륙의 그 조계(租界)보다는 훨씬 낫다……. 여행가방을 들고,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슬리퍼에 어떻게든 발을 꿰어 복도를 걸으며 그는 회상했다.
  세계의 끝까지 떠내려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긴 여행이었다. 그는 이등선실을 배정받았다. 일등과 이등의 낙차는 심했지만 배 밑바닥에서 화물처럼 처박히는 삼등보다는 훨씬 나았다. 천국과 지옥 사이 연옥인가, 하고 그는 쓴웃음 섞어 생각했다.
  이 섬나라의 항구에 도착하기 직전에 그가 타고 있던 영국적 선박은 열강이 조계를 가진 아시아 대륙의 항구에 정박했다. 그곳에서 그는 지상의 지옥을 보았다. 기름막으로 번들거리며 햇빛을 반사하는 해수면을 가득 메우며, 쇄도하는 거룻배의 무리. 물 위의 거룻배를 처소로 하여 육지 위에서는 생활 수단을 갖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갑판에서 구경하는 선객에게 팔을 벌려 돈을 달라고 고함친다. 대나무 장대에 단 망으로 배수구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건진다. 갑판 난간에 기댄 선객이 빵 부스러기나 바나나 껍질을 버리면, 모이에 몰려드는 물고기처럼 거룻배가 모여 지독한 쟁탈전을 벌인다. 아이가 배에서 떨어질 것 같아도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섬나라도 비슷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부임지―― 지도에서 보자면 잘려서 바다에 떨어진 손가락처럼 작은 이 나라―― 는, 의외로 청결했다. 서로 욕하고 빼앗는 대신, 사람들은 서로 양보했다. 특히 여성들이 그랬다. 도오조(どうぞ), 도오조 하고 끝없을 정도로 서로 양보하는 것이다. 그는 이 나라의 말은 전혀 모르지만, 도―조라는 단어만은 곧 귀에 익었다.
  여학원측은 수도녀가 파견되기를 희망했다. 적당한 희망자가 없어 그가 부임했다.
  수도원 쪽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개교 당초와 달리 원장도 교사와 직원도 스르도 모두 이 나라의 자들로, 원장과 스르는 카톨릭이지만 다른 교사 · 직원들은 대부분 이교도이다. 무신앙을 공언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소녀가 문을 노크하자 “도―조” 하고 남자의 목소리가 응했다.
  소녀는 문을 열고 안쪽을 향해 깊이 머리를 숙인 후 뭐라고 말했다. 사망이라는 단어만은 알아듣고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했다.
  교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문부 생도라는 소녀가 옆에 남아 더듬더듬 통역을 맡았다. 이 나라에서 남자들이 그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가 있다. 비굴하게 몸을 굽히거나, 함부로 몸을 뒤로 젖히거나, 둘 중 하나다. 후자는 전자의 반대다. 대등하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직접 관계를 맺지 않는 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귀한 것을 구경하듯이 그를 빤히 쳐다보곤, 시선이 마주치면 황급히 눈을 돌린다.
  원장은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려 하다가 역으로 불편해진 것처럼, 그는 느꼈다. 그의 풍모를 보고 얼마쯤 안심한 듯했다. 이성이더라도 여자아이가 마음을 뺏길 정도로 매력 있는 용모가 아니기 때문임을, 그는 알았다.
  초등부 5학년, 6학년 및 중등부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생도에게 그의 모국어 회화를 가르치라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중등부의 4학년, 5학년과 전문부는 회화 수업이 없다. 초등부는 2학급, 중등부는 3학급 있어서 열 세 클래스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받게 된다. 평균을 내자면 하루 세 번 정도의 수업이다. 중등부 1학년생은, 회화 수업만은 초등부에서 올라온 자와 다른 소학교에서 온 자를 나누어 편성을 바꾼다.
  “자세한 시간표는 교무주임을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스탕 씨도 같은 일을 했겠군요.”
  그의 말을 전문부 생도가 통역하자 교장은 “그렇습니다” 하고, 이것만은 안다는 듯이 그의 모국어로 대답했다. 중간에 목소리가 목에 걸린 것처럼 헛기침을 했다.
  “로스탕 선생의 일은 안됐습니다” 교장은 의례적으로 덧붙였다. 생도가 통역하는 동안 그는 얼버무리듯이 무언가 말을 더했다.
  전임자인 기이 로스탕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교장은 그 화제가 싫은 듯한 눈빛으로 생도를 재촉하고, 열쇠 다발을 그에게 건넸다. 대, 중, 소, 세 개의 열쇠가 금속 고리에 걸려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제게 당신을 숙사로 안내해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생도는 교과서를 낭독하듯 말하고, 슬리퍼를 가죽 구두로 바꿔 신은 후 먼저 일어났다.
  해가 반쯤 기운 교정 한곳에 하얀 금이 그어져 있었다. 그곳은 테니스코트로 사용되는 듯―― 전용 테니스 코트는 없는 것이다―― 열 서너살 정도의 여생도들이 네트를 접거나 말뚝을 뽑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 명인가 여생도가 서서 잡담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어느 얼굴도 똑같아 보였다.
  돌계단을 오르자 그 위도 평탄한 교정으로, 오른쪽 구석에 체육관, 반대쪽에 솟은 예배당의 탑은 이층 건물과 이어져 있었다.
  “저쪽이 이국에서 오신 선생님의 숙소입니다.”
  입구 쪽에 가리개 목적을 겸한 듯 덩굴장미 화단이 놓여 있어, 생도들의 눈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앞마당이 있었다. 입구에는 철제 아치가 있다. 아치에 감기며 자란 것은 장미가 아니었다. “재스민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현관이 두 개 있습니다. 안쪽도 벽으로 분리되어 두 가족이 각각 독립된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라고 안내역 소녀가 설명하고, “이쪽 A호가 선생님의 숙소입니다” 라고 예배당에 접한 쪽을 가리켰다.
  “지금은 외국에서 초청한 분은 사망 선생님 한 분이라 다른 한쪽인 B호는 빈 집입니다.”
  “외벽 도장이 고르지 못하군.”
  “예배당에 낙뢰가 떨어졌습니다. 종루가 무너져, 교사관의 예배당과 접한 부분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복은 했지만 전부 다시 도장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들어서.”
  돌을 깐 짧은 통로가 앞마당을 질러 현관으로 이어진다. 덩굴장미 가지가 뻗어와 성가시다.
  “장미 손질은 누가 하지?”
  “여학원의 잡일꾼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가지치기를 명하도록 해.”
  “네.”
  가장 큰 열쇠가 현관문 용입니다, 라고 생도는 말했다.
  “뒤의 두 개는?”
  그의 물음에 생도는 애매한 미소를 돌려줄 뿐이었다. 이 나라의 자가 때때로 보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미소에 그는 종종 불쾌해졌다. 고개를 젓는 모습조차 긍정인지 부정인지 분명치 않을 때가 많다.
  생도는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부터 이방인용으로 세운 건물이라서인지 구두를 벗으라는 말은 없었다. 생도도 구두를 신은 채였다.
  그는 일단 여행가방을 거실에 놓고 내부를 점검했다. 1층에 현관홀과 거실과 식당, 주방, 2층은 침실과 서재, 욕실. 그가 혼자 살기엔 너무 넓을 정도다.
  “세탁과 청소는 학원에서 고용한 메이드가 맡고 있습니다. 식사는, 자취가 번거롭다면 교직원용 식당에서 하시면 됩니다.”
  한번 둘러본 후 거실로 돌아왔다. 그 사이 생도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유럽의 하숙집처럼 필요최저한의 가구는 갖추어져 있다. 식당의 찬장에는 식기가 한 세트 정리되어 있었다. 거실에 있는 것은 천으로 덮은 팔걸이 의자가 두 개, 그리고 장의자. 티 테이블. 벽가의 사이드테이블. 책장. 이것도 저것도 싸구려 같다.
  사이드테이블 위의 벽에 걸린 거울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위아래로 긴 타원형에, 테두리에 포도와 덩굴풀을 부조하여 금박을 칠한 로코코 풍으로,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지 않게 호사스런 물건이었다.
  반대쪽 벽에 걸린 액자가 거울에 비치고 있다. 엘 그레코의〈십자가를 안은 그리스도〉다. 그레코가 만년에 그린 그리스도는 순진할 정도로 맑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성서가 말하는 것을 따르자면, 그리고 교회가 설하는 바에 의하면 이 경우에는 비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면류관에 상처 입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꺼풀을 뒤덮고, 짊어진 십자가는 지상의 인간 모두의 죄로서, 그 무거움을 견디다 못해 두 번이나 땅에 무릎을 꿇는다.
  그레코가 그린 그리스도는 지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려 하는 듯하다. 십자가는 코르크제처럼 가벼워 보인다. 생각하면 이는 교회에 대한 반역이 아닐까.
  “로스탕 선생님의 유품입니다” 배후에 선 생도가 말했다. 돌아보지 않아도 생도의 모습은 그 자신의 얼굴 뒤에 비치고 있다.
  어디라 할 것 없이 특징 없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거울 속에서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는 왠지 섬칫했다.
  고국에는〈동양의 신비〉따위의 말이 무책임하게 퍼져 있다. 아시아 대륙의 조계에서 신비의 파편조차 없음을 똑똑히 눈으로 확인했다. 그가 그 땅의 인간에게서 본 것은 극도의 빈곤과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불결, 탐욕 뿐이었다. 이 섬나라는 가난하긴 해도 청결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뿐 역시 신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거울 속의 생도에게 소름이 끼쳤을까. 서로 바라보고 있자니 기묘한 망아의 감각에 휩싸일 것 같아,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뿐만의 행위에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했다.
  “이 거울은 박래품(舶來品)입니다.”
  “발레――?”
  “아아, 그러니까 유럽에서 수입해 온 물건입니다. 로스탕 선생님이 대륙의 조계에 계실 적에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상륙할 생각도 없던 대륙의 그 무시무시한 조계에 기이는 부임하여, 한동안 체재했다. 포교를 위해 설립된 여학교가 있었다. 몇 번 편지를 받았다. 여기선 큰돈을 벌 수 있어, 라고 기이는 썼다. 꽤 모은 듯했다. 조계지에 만연하는 아편 매매에 손대고 있음이, 편지의 행간에서 명백하게 읽혔다. 대영제국이 그 나라를 아편으로 강간했다. 이래로 그 나라는 아편 없이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회가 왜 기이를 이 섬나라의 미션스쿨로 전근시켰는지는, 아편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거울 앞에서 벗어나 그는 긴의자에 허리를 내렸다.
  “딱딱하군, 이 의자는.”
  “잠깐 일어서 보세요” 생도가 그를 비키게 하고 좌석 부분을 들어올렸다.
  딱딱한 것도 당연하게, 좌석은 판자에 얇은 천을 씌웠을 뿐이다. 아래 부분은 수납 공간으로 되어 있어서 그 뚜껑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편리합니다.”
  “앉기 불편할 뿐이다. 필요없는 장치야.”
  마치 관 위에 앉는 것 같지 않은가.
  “자네는 로스탕 선생에게 귀염받고 있었나?”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직립한 채로 생도는 말했다.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로스탕 씨의 일상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물은 것뿐이다. 다른 뜻은 없어.”
  앉도록, 하고 팔걸이 의자를 권했다.
  생도는 중대한 명령을 받은 것처럼 공손이 머리를 숙이고 의자에 얕게 허리를 걸쳤다. 등을 펴고 양 손을 무릎위에 겹쳤다.
  “자네는 전문부의 생도라고 했지. 기이는……로스탕 선생은, 전문부는 가르치지 않은 것 같네만.”
  “희망자는 과외로 이 방을 찾아와서 회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네는 과외 수업을 받았다고?”
  “네.”
  “나와 기이는 어릴 적 친구야.”
  “그렇습니까” 놀란 티도 없이 생도는 응하고, 딱딱하게 굳은 자세인 채 “그럼 선생님도 고아원 출신입니까” 라고 물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이었다. 악의는 없겠지. 어휘가 적어서 완곡하게 돌려 말하지 못했겠지 하고 그는 호의적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생도는 말을 이었다. 자국의 말을 머리속에서 이국의 말로 다시 짜맞추어, 잊어버리기 전에 말하는 것 같았다. 회화 연습이 되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로스탕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유품을 인수해 주십사, 여학원 측이 귀국(貴國)의 수도회에 연락했지만 선박 우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로스탕 선생님은 고아원 출신이라 연고자가 없었습니다. 수도회는 유품이 있으면 이 땅에서 매각하고 대금을 송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여학원측에서는 매각이다 송부다 하는 번잡함을 꺼려서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나는 고아원 출신은 아니지만 연고자가 적기는 마찬가지다.”
  가족이 있었다면, 수도원에서 종용하는 대로 땅 끝 같은 섬나라에 부임하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았으리라.
  “기이와는 리세(Lysee)에서 2년동안 함께였다.”
  성이 같은 운(韻)인 덕분에 생도들 사이에서는 놀림의 빌미가 되었다……고 그는 생각해냈다. 〈사망과 로스탕, 《포울 당 라 망》에서 《프티 그랑》〉.
  《포울 당 라 망》은 리세 근처 뒷골목에 있는 술집이다. 게으른 자의 손바닥에 난 털을 고양이가 깎고 있는 그림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프티 그랑은 극상의 술로 더할 나위 없는 쾌감에 취한다는 의미인 노동자계급 속어였지만, 생도들 사이에서는 더욱 악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성자의 이름을 붙인 리세는 12세기에 지어진 승원을 개축한 것으로, 기둥도 돔형 천정도 생도를 위압하는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회색 제복. 회색 교실. 항상 채찍을 손에서 놓지 않는 교사. 회랑에 놓인 석조 돌의자 그늘에서 그에게 악덕을 가르친 것이 기이였다. 3학년으로 진급할 때 기이는 타교로 전학당했지만 그 후에도 당분간 교제가 계속되었다.
  “기이는……로스탕 선생은, 어떤 식으로 살았을까.”
  그렇게 묻고 나서 ‘어떤 식’이라는 질문은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는 한 기이에게 지병은 없었다. 30대 반의 죽음은 너무 이르다. 아시아의 벽지에서 근무하기가 너무 가혹했을까. 이 땅의 의료가 미흡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기이는 아편 매매로 큰돈을 번 것과 동시에, 피우는 습관에 젖었던 것일까.
  “쭉 몸 상태가 안 좋았나, 기이는?”
  “돌연한 심장마비라고 들었습니다” 생도는 말했다. “수업에 나오지 않으셔서 직원이 보러 갔습니다.” 생도의 더듬거리는 설명을 요약하자면, 문은 잠겨 있었다. 창은 덧창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덧창도 유리창도 빗장이 걸려 있지는 않았다. 열어 들여다며 말을 걸었다. 직원은 일단 돌아와 교감들과 상담한 끝에, 창문을 넘어 실내로 들어갔다.
  기이 로스탕은 주방과 거실 간 출입구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 학원의 교의(校醫)가 불려 왔다. 지난 밤 져녁식사는 학원 식당에서 들었으므로, 그 후 아마 밤 열시쯤 사이에 심장 발작을 일으켰으리라는 것이 의사의 견해였다.
  “경찰이 검시는 했나?”
  “모릅니다. 저희들 생도는 학원이 발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생도는 암기한 문장을 낭독하듯, 말했다.
  “세 개의 선택지가 있다. 철저하게 다하거나. 그저 보고만 있거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고통을 주거나.”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생도는 담담하게 말했다.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의 사랑(恋)도 마찬가지다. 언제가 되건 근본에 있는 것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이다. 다하는 것도 역시, 지배의 한 형태다.”
  말을 잊은 그에게,
  “로스탕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도는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끄덕이는 그에게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인 후, 생도는 나가려고 했다.
  그가 목소리를 던졌다.
  “자네의 이름은 뭔가?”
  “제 이름은, 미나모입니다” 생도는 출입구에서 그를 향해 고쳐 서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인 후 나갔다. 그 직전에 “로스탕 선생님은 살해당했다고, 생도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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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으면 로스탕 선생과 사망 선생 사이에 뭔가 호모기류가 흐르고 있었음이 보인다(....). 역시 호모요소는 이런 종류의 분위기에 있어서 감칠맛 내는 조미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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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라블루걸 2008/06/24 15:15 # 답글

    역시 사올 걸 그랬나 후회가 되네요..OTL
  • 올리비아 2008/06/24 20:31 #

    에헤헤'ㅂ')> 가끔 북오프 들려서 소재 확인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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