蛍ヶ池 by 츠쿠모쥬쿠
사카키바라 시호미는 소위 야오이 소설의 선봉장과 같은 인물이다. 82년에 잡지 "소설 주네" 에 [호타루가이케]를 발표하여 데뷔하였으며 당 작품은 "주네모노"의 효시로 꼽히는 전설적인 물건이 되었다.
당시 "소설 주네"에는 사카키바라 이전부터도 神谷敬里, 쥬스틴 세리에, 滝沢美女夜, 알랜 래트클리프 등의 작가가호모물을 기고하고 있었으나, 그것들은 전부 쿠리모토 카오루의 필명이었다. 당사자가 생각하기엔 꽤 부끄러운 추억일 듯 싶은데, 여하튼. 이 사카키바라 시호미의 등단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이후 '주네모노 붐'이 일어 기라성 같은, 혹은 한번 반짝한 작가들이 줄줄이 등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이어 발표한 [카인의 달]은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하여 주네모노의 전형을 확립했다. 사카키바라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당 작품은 주네모노(혹은 탐미물)에 공통된 어떤 구조가 스트레이트하게 드러난 최초의 작품이었던 듯하다.
이 [호타루가이케]와 [카인의 달], 그리고 얼마간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쓴 [나락의 사랑]이라는 작품 세 편을 묶어 86년 광풍사에서 낸 책이 단행본 [청월기]이다.
그리고 93년이 되어 각천문고 버전으로 복간되는데, 이때 쓴 후기를 보면 사카키바라 여사가 소위 "탐미물"의 테마와 이야기 구조에 관해 상당히 회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사카키바라 여사는 정통 주네모노와 노선을 달리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추리 요소를 넣은 엔터테인먼트 종류도 집필했다고 한다.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상당한 집필활동을 한 것 같은데, 요즘 들어서는 전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93년도 각천문고 버전의 청월기다. 표지와 도비라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코지마 아야미가 맡았는데, 오싹할 정도로 탐미적이며 귀기어린 그림체다. 특히 표지의 일러스트가 압권인데, 아무리 해도 이쪽 그림은 찾을 수가 없다. 대신 분위기가 비슷한 야마모토 타카토의 그림과 광풍사 버전(추정) 사진을 올려 본다.


소년은 고모부인 주치의에게 진료를 핑계로 육체관계를 맺으면서 마음만은 아버지의 제일 제자인 유우 씨에게 향하고 있다. 유우 씨는 또 아버지에게 관계를 강요당하고 있으나, 두 사람은 이복 형제관계일지도 모른다. 유우 씨가 조부의 첩실 소생이라는 소문이 있는 것이다. 덧붙여 유우 씨는 소년의 분방한 어머니에게 농락당한 전력이 있다.
유우 씨의 마음은 집안의 하녀 사키코에게 있으며,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여 종가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니시키 소년은 질투에 사로잡혀 고모부의 질 나쁜 커넥션을 동원하여 사키코를 강간하려 한다. 고모부는 유우 씨에 대한 소년의 마음에 질투하는 한편 더더욱 소년에게 집착하여, 광기어린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
막장 콩가루 집안의 신파 치정극스런 인간관계가 얽혀 창백하고 비극적인 라스트로 파국을 맞는 이야기.
전설의『청월기』후기 (강조표시는 내 임의)
이 작품집에는 데뷔작인「호타루가이케」와, 언이어 발표한「카인의 달」, 그리고 약간 기간을 두고 쓴「나락의 사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두 작품은 집필활동 그 초기에 쓴 것으로, 10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면 기교적인 미숙함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음도 물론이지만, 한편 작가로서 제 원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는 의미에서 소중한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데뷔 초기부터의 독자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아주시는 것이, 지금도 이「호타루가이케」와「카인의 달」이라는 사실은, 일단 나름대로 정진을 계속해 온 저에게 있어 복잡한 기분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역시 특별히 감개가 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작품은 올해로 12년째에 접어든 집필생활의 시작으로서 제게 있어 기념적인 의미를 가질 뿐더러, 저 자신이 당시 어떻게든 필요했던 어떤 종류의 “구제”가 더할 나위 없이 스트레이트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아직도 제 작품을 애독해 주시는 분들의 다수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 현재의 이른바 탐미소설 붐의 구조―즉, 독자 분들이 그렇게까지 정열적인 이유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그 명칭의 부적절함은 차치하고, 이른바 탐미소설이라 불리며 독자 여러분들의 지지를 얻어 하나의 붐을 형성하는 작품들의 다수에는 어떤 공통된 구조가 보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존재방식에 대해 고뇌하는 미소년과, 그런 그를 때로 능욕할 정도로 격렬히 구하는 고령의, 모든 구석에서 혜택 받은 매우 우수한 남성의 생을 건 집착의 이야기라 말해도 좋겠지요. 그런 이야기가 소녀들을 강하게 매료시키는 이 현상을, 페미니즘적 견지에서 설명하려 하는 견해가 있지만, 저는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구하여 스스로 쓴 인간의 실감으로부터 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 구조가 비교적 명백한「카인의 달」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때, 적어도 제가 그 이야기를 원한 것은 자기의 “구제”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자신을 가치 없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용서받는 인간일까,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애와 절망에 찬 삶으로부터의 구제를, 전신전령으로 원했습니다. 적어도 그것은 절대로 일부 페미니즘 신봉자들이 말하듯이 “사회적으로 학대받는 여자라는 성에 뿌리를 둔” 고뇌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있을 만한 자신이 아니라는, 어쩔 도리 없는 위화감은 물론 젠더의 문제와도 관련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여자라는 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에 한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남자라는 성에 마음을 앓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도 포함한 모든 고뇌는 언젠가 자신이 가치 없는 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을 불러일으켜, 더욱 절망에 찬 확신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요.
조금 난폭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스스로의 실감에 비추어「카인의 달」과 그것과 공통된 도식을 가진 소설군을 필요로 하는 독자의 몇 할은 확실히 그런 절망을 가슴속 깊이 품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숙한 필치의「카인의 달」이 오랜 해를 걸쳐 사랑받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고독한 소녀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이것은 장래희망을 질문받았을 때, 19세의 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카인의 달」이, 태반이 소녀인 독자 여러분들의 지지를 받았을 때, 저는 자신이 내딛은 한 발짝이 어떻게든 그 목적에 향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지를 받은 일은 틀림없이 기쁘지만 그때 제 마음을 기쁨보다 크게 점했던 것은, 자기를 완수하기 위한 이 길을 어려움에 대한 긴장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필요로 원해지지도 않는다―그렇게 믿는 고독 속에서의 절망의 생을 겨우 살아내고 있는 소녀들에게 있어서,「카인의 달」은 아마, 한때의 꿈으로 있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런 소녀들과 같은 고뇌를 품은 소년이, 이 세계의 지배자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그 몸에 갖춘 강한 남성에게 구해지고, 사랑받는다―즉 신의 축소판 모형이기도 한 그에 의해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가치를 보증받는다는 이야기는, 살아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에 매일 고통받는 소녀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고혹일 터입니다.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제 소망 하나의 성취였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위안할 수 있다면, 그것은 표현자에게 있어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쓰는 것은, 고독한 소녀들을 위해―그리고, 그 중에서도 저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들과 함께「카인의 달」에 의해 어떤 종류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진실한 구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카인의 달」을 지지해 준, 옛날의 저와 닮은 소녀들도 어딘가에서 그 점을 눈치챘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의 구제가 표현되지 않은 이상, 현재 세간에 넘치는 것과 같은 “탐미소설”에 심취한 소녀들이 환상의 구제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겠지요. 무리도 아닌 일입니다. 구원이 보이지 않는 가혹한 현실보다, 한때의 꿈에 잠드는 쪽을 선택했다 하여 누가 그녀들을 책망할 수 있을까요. 소녀들은 독서하는 한때밖에, 신의 모형과도 같은 인간에게 여러 장해에도 불구하고 구해지는 소년이 되거나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꿈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녀들은 아마 의식하고 있지 않겠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신에게, 이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일이며, 소녀들은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갈망을 채워 카타르시스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이야기 안에서의 과정으로, 독자인 현실의 소녀의 가치가 보증될 리가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카타르시스는 환상이라 불릴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그녀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이입한 소년이 격렬히 구해지고 사랑받음으로서, 그 카타르시스가 완전히 성취되는 모양입니다. 이야기 속의 소년이 그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녀들에겐 별 문제가 아닙니다. 소년에게 사랑이 향한 그 시점에서 소녀들이 구한 지복의 이야기는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의 구제의 꿈에 필요한 것은, 거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현재 이른바 탐미소설 붐의 저변에 있는 도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 카타르시스가 환상이라 하여 함부로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이 붐을 그렇게 검증하는 것만으로도 너무한 일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기보단, 저 19세 시절 입에 담은 뜻을 모토로 데뷔 이래 10년여, 탐미파라는 이름의 관을 쓰고 소설을 써 온 저는 항상 진실한 구제라는 것을 생각해 왔거니와, 그 마음은 해마다 강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게 좋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제가 쓰는 것은 현재 붐을 지탱하는 정열적인 독자 여러분들에겐 어떤 의미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근작을 애독서로 들어 주시는 분들도 꽤 늘었지만, 제 귀에 닿는 한 역시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변함없이「호타루가이케」, 그리고 압도적으로「카인의 달」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이른바 탐미소설의 많은 작품들과 공통된 도식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압도적 지지에 대한 큰 이유겠지요.
그럼, 붐을 형성할 정도로 소녀들에게 구해지는 그런 소설을 왜 지금의 저는 쓸 수 없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제가 자신의 길 도중에, 그런 소설이 달콤한 지복의 꿈으로써 한때의 위안은 되지만, 근본적인 구제가 되지 않음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독한 혼의 구제에 일조하기를 지망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저는, 그것에 눈치챈 순간부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한때의 위안밖에 되지 않는 꿈을 계속하는 것도, 그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 관해선 새로운 소설이 필요합니다. 소녀들의 꿈을 지탱하는 자기수용의 구조를 변화시킬 만한, 누군가에게 보증되지 않으면 자신에겐 가치가 없다는 체념을 불식시킬, 새로운 소설입니다.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즉 그 가치의 증명이라고 깨달아, 그런 세계를 사랑하게 될 만한 소설을 쓰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붐은, 고독한 마음을 품은 소녀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려주는 귀중한 현상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겐 이 붐에 호응하여 탄생한 많은 소설을 위안삼아 가혹한 현실에 맞설 활력을 얻고, 자신의 현실을 행복하게 바꾸기 위해 새로운 자기수용의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진실의 구제를 목표로 소설을 써 나가려고 합니다. 기분 좋은 꿈과 한때의 위안이 되는 의사현실을 제공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라 자기수용의 구조 바로 그것의 수용을 다하는 세계관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도 자기구제의 성취를 목적하는 제가 쓰는 소설이 같은 여행의 도상에 있는 분들에게 있어 하나의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겠습니다.
마지막이 되었습니다만, 정열만으로 엮어낸 풋풋한 작품과 함께 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과, 몇 번에 걸쳐 이 작품에 발표 기회를 주신 각 출판사의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93년 5월 1일 사카키바라 시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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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키바라 시호미는 소위 야오이 소설의 선봉장과 같은 인물이다. 82년에 잡지 "소설 주네" 에 [호타루가이케]를 발표하여 데뷔하였으며 당 작품은 "주네모노"의 효시로 꼽히는 전설적인 물건이 되었다.
당시 "소설 주네"에는 사카키바라 이전부터도 神谷敬里, 쥬스틴 세리에, 滝沢美女夜, 알랜 래트클리프 등의 작가가
연이어 발표한 [카인의 달]은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하여 주네모노의 전형을 확립했다. 사카키바라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당 작품은 주네모노(혹은 탐미물)에 공통된 어떤 구조가 스트레이트하게 드러난 최초의 작품이었던 듯하다.
이 [호타루가이케]와 [카인의 달], 그리고 얼마간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쓴 [나락의 사랑]이라는 작품 세 편을 묶어 86년 광풍사에서 낸 책이 단행본 [청월기]이다.
그리고 93년이 되어 각천문고 버전으로 복간되는데, 이때 쓴 후기를 보면 사카키바라 여사가 소위 "탐미물"의 테마와 이야기 구조에 관해 상당히 회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사카키바라 여사는 정통 주네모노와 노선을 달리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추리 요소를 넣은 엔터테인먼트 종류도 집필했다고 한다.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상당한 집필활동을 한 것 같은데, 요즘 들어서는 전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93년도 각천문고 버전의 청월기다. 표지와 도비라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코지마 아야미가 맡았는데, 오싹할 정도로 탐미적이며 귀기어린 그림체다. 특히 표지의 일러스트가 압권인데, 아무리 해도 이쪽 그림은 찾을 수가 없다. 대신 분위기가 비슷한 야마모토 타카토의 그림과 광풍사 버전(추정) 사진을 올려 본다.


- 「호타루가이케」
소년은 고모부인 주치의에게 진료를 핑계로 육체관계를 맺으면서 마음만은 아버지의 제일 제자인 유우 씨에게 향하고 있다. 유우 씨는 또 아버지에게 관계를 강요당하고 있으나, 두 사람은 이복 형제관계일지도 모른다. 유우 씨가 조부의 첩실 소생이라는 소문이 있는 것이다. 덧붙여 유우 씨는 소년의 분방한 어머니에게 농락당한 전력이 있다.
유우 씨의 마음은 집안의 하녀 사키코에게 있으며,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여 종가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니시키 소년은 질투에 사로잡혀 고모부의 질 나쁜 커넥션을 동원하여 사키코를 강간하려 한다. 고모부는 유우 씨에 대한 소년의 마음에 질투하는 한편 더더욱 소년에게 집착하여, 광기어린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
막장 콩가루 집안의 신파 치정극스런 인간관계가 얽혀 창백하고 비극적인 라스트로 파국을 맞는 이야기.
연못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인가, 밤이 되면 낮 동안의 더위가 거짓말인 것처럼 냉랭한 공기가 피부에 숨어든다. 나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마음에 드는 비색 후리소데를 가슴 쪽으로 감아올렸다. 샤미센 소리가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밤바람에 끊어질 듯 어렴풋한 그 소리 속에서 아버지와 유우 씨가 함께 있는 광경을 멍하니 떠올리고 있었다. 유우 씨는 내가 고모부에게 안기는 것처럼 아버지에게 안기는 걸까.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유우 씨의 관능적인 표정을 떠올리자 일순 저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내달렸다. 그것은 언젠가 유우 씨가 샤미센 케이스의 잠금쇠에 손끝을 베였을 때의 표정과 꼭 닮아 있었다. 손끝에서 선혈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그 아픔에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유우 씨를 본 순간, 나는 그 관능적인 표정과 방울져 떨어지는 선혈의 붉음에 다리가 걸린 듯 환혹에 빠졌던 일이 떠올라, 나는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자신의 욕정을 진정시키려 두 손으로 어깨를 힘껏 껴안았다. (「호타루가이케」28p)
격자창을 통해 올려다보는 밤하늘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군청색으로 가득하고, 흔들리는 호타루가이케에는 달의 어렴풋이 창백한 빛과 더하여 무수한 별들의 반짝임들도 군무하는 반딧불이의 빛과 함께 꿰어져 수면에 은의 찬란함을 수놓고 있다. 오늘밤 호타루가이케는 지금껏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나의 최후의 무대다. 오늘밤은 이제껏 어느 밤보다도 수면의 잔물결이 유혹하는 듯한 반짝임을 더하여 나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발이 걸린 듯한 감각에 사로잡혀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거울에 걸어둔 비색 후리소데에 팔을 꿴다. 허리에 느슨하게 오비를 매자, 거울 속에서 전기소설 속에서 숨쉴 것 같은 소녀가 황홀한 눈으로 마주보았다. 그것은 이미 반쯤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해 본 일이 없다. 나 자신과 마음이 언제나 두 개로 찢어져 조화와 거리가 먼 쪽으로만 기울어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것도 이제 끝이다.
오늘밤 나는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여행은 끝났다. 나는 거울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지막 인사처럼 한바퀴 돌아 보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후리소데의 비색 속에서 금색으로 불타며 난무하는 것이 나비 뿐만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것은 조용히, 그리고 미친 듯이 빛나는 무수한 반딧불이였다. (「호타루가이케」100p)
오늘밤 나는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여행은 끝났다. 나는 거울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지막 인사처럼 한바퀴 돌아 보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후리소데의 비색 속에서 금색으로 불타며 난무하는 것이 나비 뿐만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것은 조용히, 그리고 미친 듯이 빛나는 무수한 반딧불이였다. (「호타루가이케」100p)
- 「카인의 달」
(빠져 버렸군…)
천천히 부풀어오르는 뜨거운 무엇에 빠져가는 것을 느끼며 그런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죠지는 그 손을 타미토의 가녀린 어깨로 뻗었다. 타미토는 그 감촉에 언뜻 눈을 뜨고 신기하나든 듯이 죠지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도 달아나려 하지 않는다. 분명 이것은 예전의 타미토가 아니었다. 죠지는 운전석의 부하에게 천천히 달리라고 말해 두고, 푹신한 좌석에 타미토를 눕히고 자신도 조용히 몸을 겹쳤다. 밀착한 부분이 뜨거워지며 타미토의 창백한 눈빛이 젖기 시작한다. 옷을 벗기고 직접 피부를 맞대자 타미토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이 전해져 온다. 여전히 인형처럼 누운 채이지만 그 몸은 확실히 반응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타미토는 쾌감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주저가 없다. 본능대로 몸을 열어 욕정을 채우고 다하려 한다. 반복되는 죠지의 애무에 타미토의 얇은 입술 사이에서 한숨이 흘러, 꽃잎처럼 반점이 흩어진 희고 매끄러운 가슴이 들썩이며 쏟아지는 달빛에 요염하게 빛난다. 너무나도 처절한 아름다움에 숨이 멎은 죠지의 손에 그때, 무언가가 닿았다. 자신을 잊고 있던 죠지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푸르스름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의 손에 닿은 것은 타미토의 손가락이었다. 죠지는 믿을 수 없는 일에 눈을 크게 떴다. 타미토의 손가락은 거기 응하듯이 죠지의 손을 자신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부동상처럼 휘둥그레 열린 채 그 하얀 손가락의 움직임을 좇던 죠지의 눈에, 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밀어닥치는 쾌감에 떠는 타미토의 하얀 몸을 적신다. 죠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희미한 신음을 흘리는 타미토에게 죠지는 뜨겁게 젖은 눈을 고정시키고 공들여 애무를 계속했다.
「ㅡ추락해…」
그때 잠꼬대처럼 타미토가 목소리를 흘렸다. 그의 몸에 얼굴을 묻고 있던 죠지는 타미토의 몸으로부터 물결이 물러나기를 기다리고 천천히 몸을 세워, 달빛에 비치는 그 하얗고 작은 볼을 양 손으로 감쌌다.
「이제 추락하지 않아. 넌 돌아온 거야. 알겠지.」
타미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입술을 가볍게 열어 달콤한 한숨을 흘리고 죠지의 입맞춤을 기다렸다. 타미토의 손이 죠지의 늠름한 목덜미에 걸쳐진다. 떨릴 정도로 자신을 기다리는,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하얀 얼굴을 그는 부서지기 쉬운 유리세공처럼 감싸안아 조용히 입술을 겹쳤다. 타미토의 가느다란 손이 죠지의 넓은 갈색 등에 하얗게 떠오른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사는 일족의 우두머리에 걸맞는, 카인의 아들의 요염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천공에 걸린 달은 시리도록 창백한 빛을 내리며 언제까지나 비추고 있었다. (「카인의 달」)
천천히 부풀어오르는 뜨거운 무엇에 빠져가는 것을 느끼며 그런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죠지는 그 손을 타미토의 가녀린 어깨로 뻗었다. 타미토는 그 감촉에 언뜻 눈을 뜨고 신기하나든 듯이 죠지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도 달아나려 하지 않는다. 분명 이것은 예전의 타미토가 아니었다. 죠지는 운전석의 부하에게 천천히 달리라고 말해 두고, 푹신한 좌석에 타미토를 눕히고 자신도 조용히 몸을 겹쳤다. 밀착한 부분이 뜨거워지며 타미토의 창백한 눈빛이 젖기 시작한다. 옷을 벗기고 직접 피부를 맞대자 타미토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이 전해져 온다. 여전히 인형처럼 누운 채이지만 그 몸은 확실히 반응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타미토는 쾌감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주저가 없다. 본능대로 몸을 열어 욕정을 채우고 다하려 한다. 반복되는 죠지의 애무에 타미토의 얇은 입술 사이에서 한숨이 흘러, 꽃잎처럼 반점이 흩어진 희고 매끄러운 가슴이 들썩이며 쏟아지는 달빛에 요염하게 빛난다. 너무나도 처절한 아름다움에 숨이 멎은 죠지의 손에 그때, 무언가가 닿았다. 자신을 잊고 있던 죠지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푸르스름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의 손에 닿은 것은 타미토의 손가락이었다. 죠지는 믿을 수 없는 일에 눈을 크게 떴다. 타미토의 손가락은 거기 응하듯이 죠지의 손을 자신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부동상처럼 휘둥그레 열린 채 그 하얀 손가락의 움직임을 좇던 죠지의 눈에, 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밀어닥치는 쾌감에 떠는 타미토의 하얀 몸을 적신다. 죠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희미한 신음을 흘리는 타미토에게 죠지는 뜨겁게 젖은 눈을 고정시키고 공들여 애무를 계속했다.
「ㅡ추락해…」
그때 잠꼬대처럼 타미토가 목소리를 흘렸다. 그의 몸에 얼굴을 묻고 있던 죠지는 타미토의 몸으로부터 물결이 물러나기를 기다리고 천천히 몸을 세워, 달빛에 비치는 그 하얗고 작은 볼을 양 손으로 감쌌다.
「이제 추락하지 않아. 넌 돌아온 거야. 알겠지.」
타미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입술을 가볍게 열어 달콤한 한숨을 흘리고 죠지의 입맞춤을 기다렸다. 타미토의 손이 죠지의 늠름한 목덜미에 걸쳐진다. 떨릴 정도로 자신을 기다리는,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하얀 얼굴을 그는 부서지기 쉬운 유리세공처럼 감싸안아 조용히 입술을 겹쳤다. 타미토의 가느다란 손이 죠지의 넓은 갈색 등에 하얗게 떠오른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사는 일족의 우두머리에 걸맞는, 카인의 아들의 요염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천공에 걸린 달은 시리도록 창백한 빛을 내리며 언제까지나 비추고 있었다. (「카인의 달」)
- 「나락의 사랑」
사네코마야의 연습장은, 마치 벽돌 산의 중앙에 출현한 정토와도 같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한 선대 7대째 세이지로가 그 장년시대에 세운 연습장은, 옛날 헤이안 시절 극락정토를 희구하여 귀족들이 건립한 사원을 방불케한다. 무채색의 광대한 정원에 걸쳐진 다리는 차안으로부터 피안에의 길목인지, 그렇다면 그 다리 앞에 봉황당을 모방한 연습장은 그야말로 극락정토라는 것이 되리라.
그러나 그 다리는, 연습장으로선 지나칠 정도로 음미되어 완전한 무대로서의 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세리와 하나미치는 물론 건조 당시부터 갖추고 있던 것이지만, 조명과 공기 조절 장치 등 세세한 장비는 타케미츠의 대가 되어 마련한 것이다. 신극과 발레를 크로스오버시켜 지방 뿐 아니라 록 계의 뮤지션들과도 깊은 교류를 가진 타케미츠에 있어서 안방보다도 애착이 깊은 이 연습장도 그런 점에서는 아직 부족했다. 그러나 8대째가 이즈의 별장에 틀어박힌 이래 관리를 맡은 타케미츠가 조속히 손을 써서, 그 이후 이곳이 그의 정력적인 창작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이 무대 위에 토시미가 오르자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변했다. 무언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색이 변했다. 그가 자아내는 극락은 고산수古山水의 정원에 줄지은 복제 봉황당이 구현하는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
그 춤은 금과 주朱의 광채를 펼치고, 때로는 청벽靑碧의 정적에 침잠하고, 또 그로부터 무서운 칠흑의 어둠에 한줄기 백광이 되어 달리며, 어둠을 깨치고, 지복의 빛의 입자를 난무케 하여, 황금의 이공간을 출현시킨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타케미츠는 자신이 연출하고 그렇게 명했을 터인 토시미의 동작에, 숨결에, 시선의 색에, 언제부터인가 휘말려, 사로잡혀 희롱당하는 것이었다. 가느다란 손끝에서인가, 아니면 화사한 목덜미에서인가, 사람을 달콤하게 주박하는 실이 그 몸의 어딘가로부터 뻗어나와 타케미츠는 그것을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예외없이 인사불성에 빠져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피안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토시미의 신체에서도 마魔는 그림자를 숨긴다. 무대로부터 내려온 토시미는 그저 아름답고 조용한 소년으로 전락한다. 그 가녀린 어깨를 잡아 흔들어도, 뾰족한 턱을 들어올려 바라보아도, 토시미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 뿐, 스스로 자아냈던 환상 같은 것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의상을 갖추어 여자 춤을 출 때조차 그의 몸가짐은 남자도 여자도 뛰어넘어 눈을 빼앗아 버리는 움직임을 걸치고 있는데, 무대를 내려와 화려한 기모노를 벗어 화장을 지운 토시미는, 소녀같이 덧없는 것이다. (나락의 사랑)
만년에 불교에 귀의한 선대 7대째 세이지로가 그 장년시대에 세운 연습장은, 옛날 헤이안 시절 극락정토를 희구하여 귀족들이 건립한 사원을 방불케한다. 무채색의 광대한 정원에 걸쳐진 다리는 차안으로부터 피안에의 길목인지, 그렇다면 그 다리 앞에 봉황당을 모방한 연습장은 그야말로 극락정토라는 것이 되리라.
그러나 그 다리는, 연습장으로선 지나칠 정도로 음미되어 완전한 무대로서의 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세리와 하나미치는 물론 건조 당시부터 갖추고 있던 것이지만, 조명과 공기 조절 장치 등 세세한 장비는 타케미츠의 대가 되어 마련한 것이다. 신극과 발레를 크로스오버시켜 지방 뿐 아니라 록 계의 뮤지션들과도 깊은 교류를 가진 타케미츠에 있어서 안방보다도 애착이 깊은 이 연습장도 그런 점에서는 아직 부족했다. 그러나 8대째가 이즈의 별장에 틀어박힌 이래 관리를 맡은 타케미츠가 조속히 손을 써서, 그 이후 이곳이 그의 정력적인 창작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이 무대 위에 토시미가 오르자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변했다. 무언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색이 변했다. 그가 자아내는 극락은 고산수古山水의 정원에 줄지은 복제 봉황당이 구현하는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
그 춤은 금과 주朱의 광채를 펼치고, 때로는 청벽靑碧의 정적에 침잠하고, 또 그로부터 무서운 칠흑의 어둠에 한줄기 백광이 되어 달리며, 어둠을 깨치고, 지복의 빛의 입자를 난무케 하여, 황금의 이공간을 출현시킨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타케미츠는 자신이 연출하고 그렇게 명했을 터인 토시미의 동작에, 숨결에, 시선의 색에, 언제부터인가 휘말려, 사로잡혀 희롱당하는 것이었다. 가느다란 손끝에서인가, 아니면 화사한 목덜미에서인가, 사람을 달콤하게 주박하는 실이 그 몸의 어딘가로부터 뻗어나와 타케미츠는 그것을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예외없이 인사불성에 빠져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피안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토시미의 신체에서도 마魔는 그림자를 숨긴다. 무대로부터 내려온 토시미는 그저 아름답고 조용한 소년으로 전락한다. 그 가녀린 어깨를 잡아 흔들어도, 뾰족한 턱을 들어올려 바라보아도, 토시미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 뿐, 스스로 자아냈던 환상 같은 것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의상을 갖추어 여자 춤을 출 때조차 그의 몸가짐은 남자도 여자도 뛰어넘어 눈을 빼앗아 버리는 움직임을 걸치고 있는데, 무대를 내려와 화려한 기모노를 벗어 화장을 지운 토시미는, 소녀같이 덧없는 것이다. (나락의 사랑)
전설의『청월기』후기 (강조표시는 내 임의)
이 작품집에는 데뷔작인「호타루가이케」와, 언이어 발표한「카인의 달」, 그리고 약간 기간을 두고 쓴「나락의 사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두 작품은 집필활동 그 초기에 쓴 것으로, 10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면 기교적인 미숙함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음도 물론이지만, 한편 작가로서 제 원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는 의미에서 소중한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데뷔 초기부터의 독자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아주시는 것이, 지금도 이「호타루가이케」와「카인의 달」이라는 사실은, 일단 나름대로 정진을 계속해 온 저에게 있어 복잡한 기분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역시 특별히 감개가 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작품은 올해로 12년째에 접어든 집필생활의 시작으로서 제게 있어 기념적인 의미를 가질 뿐더러, 저 자신이 당시 어떻게든 필요했던 어떤 종류의 “구제”가 더할 나위 없이 스트레이트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아직도 제 작품을 애독해 주시는 분들의 다수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 현재의 이른바 탐미소설 붐의 구조―즉, 독자 분들이 그렇게까지 정열적인 이유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그 명칭의 부적절함은 차치하고, 이른바 탐미소설이라 불리며 독자 여러분들의 지지를 얻어 하나의 붐을 형성하는 작품들의 다수에는 어떤 공통된 구조가 보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존재방식에 대해 고뇌하는 미소년과, 그런 그를 때로 능욕할 정도로 격렬히 구하는 고령의, 모든 구석에서 혜택 받은 매우 우수한 남성의 생을 건 집착의 이야기라 말해도 좋겠지요. 그런 이야기가 소녀들을 강하게 매료시키는 이 현상을, 페미니즘적 견지에서 설명하려 하는 견해가 있지만, 저는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구하여 스스로 쓴 인간의 실감으로부터 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 구조가 비교적 명백한「카인의 달」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때, 적어도 제가 그 이야기를 원한 것은 자기의 “구제”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자신을 가치 없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용서받는 인간일까,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애와 절망에 찬 삶으로부터의 구제를, 전신전령으로 원했습니다. 적어도 그것은 절대로 일부 페미니즘 신봉자들이 말하듯이 “사회적으로 학대받는 여자라는 성에 뿌리를 둔” 고뇌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있을 만한 자신이 아니라는, 어쩔 도리 없는 위화감은 물론 젠더의 문제와도 관련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여자라는 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에 한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남자라는 성에 마음을 앓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도 포함한 모든 고뇌는 언젠가 자신이 가치 없는 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을 불러일으켜, 더욱 절망에 찬 확신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요.
조금 난폭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스스로의 실감에 비추어「카인의 달」과 그것과 공통된 도식을 가진 소설군을 필요로 하는 독자의 몇 할은 확실히 그런 절망을 가슴속 깊이 품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숙한 필치의「카인의 달」이 오랜 해를 걸쳐 사랑받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고독한 소녀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이것은 장래희망을 질문받았을 때, 19세의 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카인의 달」이, 태반이 소녀인 독자 여러분들의 지지를 받았을 때, 저는 자신이 내딛은 한 발짝이 어떻게든 그 목적에 향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지를 받은 일은 틀림없이 기쁘지만 그때 제 마음을 기쁨보다 크게 점했던 것은, 자기를 완수하기 위한 이 길을 어려움에 대한 긴장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필요로 원해지지도 않는다―그렇게 믿는 고독 속에서의 절망의 생을 겨우 살아내고 있는 소녀들에게 있어서,「카인의 달」은 아마, 한때의 꿈으로 있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런 소녀들과 같은 고뇌를 품은 소년이, 이 세계의 지배자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그 몸에 갖춘 강한 남성에게 구해지고, 사랑받는다―즉 신의 축소판 모형이기도 한 그에 의해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가치를 보증받는다는 이야기는, 살아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에 매일 고통받는 소녀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고혹일 터입니다.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제 소망 하나의 성취였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위안할 수 있다면, 그것은 표현자에게 있어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쓰는 것은, 고독한 소녀들을 위해―그리고, 그 중에서도 저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들과 함께「카인의 달」에 의해 어떤 종류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진실한 구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카인의 달」을 지지해 준, 옛날의 저와 닮은 소녀들도 어딘가에서 그 점을 눈치챘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의 구제가 표현되지 않은 이상, 현재 세간에 넘치는 것과 같은 “탐미소설”에 심취한 소녀들이 환상의 구제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겠지요. 무리도 아닌 일입니다. 구원이 보이지 않는 가혹한 현실보다, 한때의 꿈에 잠드는 쪽을 선택했다 하여 누가 그녀들을 책망할 수 있을까요. 소녀들은 독서하는 한때밖에, 신의 모형과도 같은 인간에게 여러 장해에도 불구하고 구해지는 소년이 되거나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꿈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녀들은 아마 의식하고 있지 않겠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신에게, 이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일이며, 소녀들은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갈망을 채워 카타르시스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이야기 안에서의 과정으로, 독자인 현실의 소녀의 가치가 보증될 리가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카타르시스는 환상이라 불릴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그녀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이입한 소년이 격렬히 구해지고 사랑받음으로서, 그 카타르시스가 완전히 성취되는 모양입니다. 이야기 속의 소년이 그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녀들에겐 별 문제가 아닙니다. 소년에게 사랑이 향한 그 시점에서 소녀들이 구한 지복의 이야기는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의 구제의 꿈에 필요한 것은, 거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현재 이른바 탐미소설 붐의 저변에 있는 도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 카타르시스가 환상이라 하여 함부로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이 붐을 그렇게 검증하는 것만으로도 너무한 일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기보단, 저 19세 시절 입에 담은 뜻을 모토로 데뷔 이래 10년여, 탐미파라는 이름의 관을 쓰고 소설을 써 온 저는 항상 진실한 구제라는 것을 생각해 왔거니와, 그 마음은 해마다 강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게 좋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제가 쓰는 것은 현재 붐을 지탱하는 정열적인 독자 여러분들에겐 어떤 의미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근작을 애독서로 들어 주시는 분들도 꽤 늘었지만, 제 귀에 닿는 한 역시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변함없이「호타루가이케」, 그리고 압도적으로「카인의 달」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이른바 탐미소설의 많은 작품들과 공통된 도식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압도적 지지에 대한 큰 이유겠지요.
그럼, 붐을 형성할 정도로 소녀들에게 구해지는 그런 소설을 왜 지금의 저는 쓸 수 없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제가 자신의 길 도중에, 그런 소설이 달콤한 지복의 꿈으로써 한때의 위안은 되지만, 근본적인 구제가 되지 않음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독한 혼의 구제에 일조하기를 지망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저는, 그것에 눈치챈 순간부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한때의 위안밖에 되지 않는 꿈을 계속하는 것도, 그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 관해선 새로운 소설이 필요합니다. 소녀들의 꿈을 지탱하는 자기수용의 구조를 변화시킬 만한, 누군가에게 보증되지 않으면 자신에겐 가치가 없다는 체념을 불식시킬, 새로운 소설입니다.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즉 그 가치의 증명이라고 깨달아, 그런 세계를 사랑하게 될 만한 소설을 쓰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붐은, 고독한 마음을 품은 소녀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려주는 귀중한 현상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겐 이 붐에 호응하여 탄생한 많은 소설을 위안삼아 가혹한 현실에 맞설 활력을 얻고, 자신의 현실을 행복하게 바꾸기 위해 새로운 자기수용의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진실의 구제를 목표로 소설을 써 나가려고 합니다. 기분 좋은 꿈과 한때의 위안이 되는 의사현실을 제공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라 자기수용의 구조 바로 그것의 수용을 다하는 세계관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도 자기구제의 성취를 목적하는 제가 쓰는 소설이 같은 여행의 도상에 있는 분들에게 있어 하나의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겠습니다.
마지막이 되었습니다만, 정열만으로 엮어낸 풋풋한 작품과 함께 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과, 몇 번에 걸쳐 이 작품에 발표 기회를 주신 각 출판사의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93년 5월 1일 사카키바라 시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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