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가와 히로코의『성녀의 섬』과 온다 리쿠 책덕질

 『성녀의 섬』은 미나가와 히로코의 88년도 작품으로, 07년도 고단샤 노벨즈 25주기 기념기획 아야쓰지&아리스가와 셀렉션 시리즈의 하나로 복간되었다.

  미나가와 히로코 여사는 중견이랄까 원로에 가까운 작가로, 환상색채의 전기소설에서 시대소설,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일본적인 장르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군을 발표해 왔다. 장편『恋紅』으로 86년도 나오키상을 수상했으며, 나치시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탐미&퇴폐 대 장편『死の泉』(죽음의 샘)은 98년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됨과 동시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그해 1위는 기리노 나쓰오의『아웃』, 2위는 기시 유스케의『검은 집』이었다. 리쿠쨔마의『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9위였습니다. 

  내가 미나가와 히로코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 계기는 단편집『도서실의 바다』의 후기였다. 여기서 리쿠쨔마는 단편 '노스텔지어'에 관해 코멘트하며,

나는 미나가와 씨는 전기 소설, 모리 씨는 여자의 정념에 관한 것, 시노다 씨는 근미래 SF일 거라 예상했다. 모리 씨, 시노다 씨는 거의 예상대로였지만, 그때 미나가와 씨가 쓴 작품이 저 충격의 문제작 "묶다"다. 읽고 기절초풍해서 '항복합니다' 하고 납작 엎드린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관심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하다.
  그러던 차에 온다 리쿠 온라인에서『성녀의 섬』- 아야쓰지&아리스가와 셀렉션 복간본의 해설자가 온다 리쿠라는 알림이 뜨며 간단한 책소개가 나왔는데, 웬걸 이것도 취향에 박격포를 퍼붓는 물건의 아우라가 풀풀 풍기는 설정이었다. 무려 "성녀"에 무려 "섬"이다. 무려 "수녀"가 운영하는 "외딴 섬의 여학교"다(사실 여학교라기보다는 불량소녀 전용의 소년원 비슷한 시설이다). 소녀들의 애욕에 방화에 살인에 미스터리에 전기에 요사스럽고 탐미적이면서도 '구원'이라는 테마를 직감하게 하는 그런 숭고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물건! 후반부에는 개인적인 망상이 좀 폭주했습니다만.

  여하튼, 문제의『성녀의 섬』. 오늘 북오프에서 구입했다. 일단 리쿠짜마의 해설부터 읽어봤는데, 이 책에 대한 설명은 해설을 소개하는 걸로 대신해도 좋을 듯하다. 장르소설작가 온다 리쿠의 성향과 스탠스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다. 각설하고.

온다 리쿠의『성녀의 섬』해설

  「트리키하다/기교적이다」는 것이 결코 칭찬이 아니고 오히려 나쁜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소설가가 된 후였다.
  본격 미스터리와 페이지 터너라 불리는 엔터테인먼트를 편애해 온 나는, 그 사실에 매우 당혹했다. 더구나 자신이 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한 상의 후보가 되면 심사평에「너무 작위적이다(作り込みすぎ)」「막판 반전이 리얼리티를 해친다」「왜 억지로 결말을 만들어 붙이려 하는가」등, 「트리키」한 것, 정확히는「재미있는 것」에의 증오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프레이즈가 넘쳐나 아연해지기도 했다.
  세상이란 이런 걸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평과 자기변호인「사소설」과, 지루한 등장인물의 어설픈 연극을 보여주는「자연주의적」근대소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우리들은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다음편에 대한 기대감」「앞을 읽을 수 없는 전개」를 강구하는 데 에너지를 써온 지 10수년. 언제나 격려와 목표로 해 온 것은 미나가와 히로코의 존재였다.「트리키하고 기교적이고 너무나도 재미있고 흉흉하면서도 아름다우며, 지극히 지적이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에 넘친다.」어떤가, 이거라면 불만 없겠지, 라고 특히 최근,『죽음의 샘』이후 미나가와 히로코의 취미전개라 여겨지는 기라성 같은 작품군을 눈앞에 두고, 제멋대로 탄식을 흘리고 마는 것이다.

  라고 했지만, 내가 처음 미나가와 히로코라는 사람이 가진 이미지의 엄청남에 압도된 것은, 졸저의 후기에도 썼지만 1995년에 어떤 잡지에서 함께 호러 단편으로 경작競作할 때의 일이다.
  그것은 이제는 전설적인 작품이 된「묶다」라는 단편인데, 이 극히 짧은 소설을 읽고 나는「도대체 이 사람의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 거냐. 어디를 어떻게 해야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하고 기절초풍 넙죽 엎드렸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미나가와 히로코는 굳이 말하자면「환상적이며 색채 풍부한, 좀 이상한 시대소설을 메인으로 쓰는 작가」라는 이미지였다. 『壁・旅芝居殺人事件』과『みだら英泉』 『妖桜記』 라는 소설의 이미지만으로 왠지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지만, 그때부터 완전히 달리 보게 되었음을 고백해 둔다.
  수년전 최초의 작품(1979년) 『꽃의 여행 밤의 여행』(이 타이틀 멋지다)을 읽었을 때는, 『죽음의 샘』에도 통하는 메타픽셔널적 경향에「이미 이 시기부터 해내고 있었구나」하고 히죽거리고, 역시「작위성作り込み」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소설을 편애하는 소설가에게 있어선 천성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는 거다, 하고 통감했다.

  어쨌든,『성녀의 섬』이다.
  전설이라 하면 이쪽도 전설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과문한 나는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굉장한 게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이미 절판되어서 알고 지내던 편집자에게 부탁하여 읽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까지 주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카파 노벨즈가 잇었지만, 신서판의 노벨즈라는 형태로 화려하게 팔려나갔던 건 카도카와 노벨즈가 일대 붐이 되고부터로, 후발인 고단샤 노벨즈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래도 당시는 이미 피폐패지기 직전의 본격 미스터리가 야금야금 나오고 있었으므로, 지금 생각하면 꽤 읽고 있었던 거지만, 왠지『성녀의 섬』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폐허의 섬에 수도원의 시스터가 찾아온다.
  불량소녀들을 수용하는 홈이 방화되어 불타 무너져, 홈을 재건하기 위해 응급 요청을 받아 찾아온 것이다.
  일단 이 설정만으로도 오싹오싹하다. 이 무슨 불길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인가.

  『성녀의 섬』은 1988년 간행되었다.
  일본이 버블로 부풀기 시작할 시대다. 설마 이 수년 후 버블이 터져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불경기에 신음하며 폐허 붐이 일어나, 이 소설의 모델이 된 나가사키 하시마(통칭 군함섬)에 폐허 관광객들이 밀려들어오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그리고 이 작품은 지금은 간단히 '사이코'라 불리는, 『양들의 침묵』을 시작으로 하는 이상심리범죄라는 테마가 나타나기 전의 물건이다.
  역시 미나가와 히로코는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테마의 선취와 내용의 초절 기교는 제외하더라도, 지금 다시 읽어보며 느끼는 것은 그 세련된 분위기와 전편에 감도는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이다.
  대충 '성녀' '수도원'이라는 단어만큼, 그 경직된 이미지와는 반대로 수상쩍음, 위선, 잔혹함, 음란함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것도 없다.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데도 여기에는 불가사의한 가벼움과, 정적과, 유머마저도 느껴진다.
  이런 작품이 유지되어 부활하는 것은 실로 정당하고, 마음 든든하다.
  지금 또 누군가에게라 할 것 없이 히죽히죽거리며 "어때, 이거라면 불만 없지!" 라고 다시금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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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다 리쿠 여사의 소설『목요조곡』에는 시게마츠 도키코라는 여성 작가가 등장한다. 그녀의 소설은 지극히 현학적이며 탐미적인 작풍으로, 그녀 자신은 작중에 등장하는 여느 글쟁이 여성들에게 흠모와 동경과 질투를 한몸에 받는 전설급 카리스마 소설가다.
  내가 미나가와 히로코 네타를 접하고 여기저기서 리뷰를 읽은 후(막상 저서 자체는 아직 안 읽었다) 딱 떠오른 것이 바로 저 시게마츠 도키코라는 캐릭터다.
 『목요조곡』문고판의 해설자는 도키코의 캐릭터가 실존하는 작가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서재"가 의인화된 것, 즉 리쿠 여사에 있어서 문학 그 자체의 이미지가 아니겠느냐고 짚는다. 
  그런데 미나가와 선생의 책을 읽은 일반 독자의 선생에 대한 이미지와,『목요조곡』 속에서 도키코에 대해 술회하는 인물들의 이미지가 상당히 겹친다. 키워드는 '현학'과 '탐미'다.
  미나가와 선생은 일본 풍속적인 전기소설에서 2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유럽을 배경으로 독자적인 역사감각과 후죠시의 모에고코로(...?)의 미스터리/드라마, 요염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넘치는 환상적인 단편을 쓰는 데 능하다고 한다. 미나가와 선생의 책을 접한 독자들은 십중팔구 그 탐미성에 강한 인상을 받는 듯하다.
  시게마츠 도키코는 주로 "혈연"에 관계된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니, 이점은 미나가와 선생과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흥미로운 유사성이다. 
  예전부터 독자로서 미나가와 선생에게 경도받은 리쿠 여사가, 자신의 책의 카리스마 캐릭터에 미나가와 선생의 면모를 반영했다는 가설도 충분히 있을 법하지 않은가?
  나머지는 미나가와 선생의 저서를 직접 읽은 후에 판단해야겠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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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라블루걸 2008/06/17 22:37 # 답글

    표지 보고 나름 신선한 충격..........

  • 올리비아 2008/06/18 19:42 #

    86년도 출간작입니다 많이 바라심 안됨미다...
  • turquoise 2008/06/18 09:55 # 답글

    앗 미나가와 히로코 씨의 소설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온 게 없는 듯하네요 ㅠ_ㅠ '성녀의 섬'이라는 제목부터가 왠지 제 취향입니다. 일어 배우다가, 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그만두었는데 다시 배워야 할까 봐요;;
  • 올리비아 2008/06/18 19:42 #

    아; 네. 이분 소설은 번역된 게 없습니다.
    일어는 좀 오덕오덕 하다 보면;; 금방 늘긴 하는데...문제는 오덕거릴 여유(혹은 태만;)가 있느냐 하는 거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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