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이 되고부터 소학생 때에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웠다. 동경하는 상급생을〈언니(お姉さま)〉라 부른다거나, 좋아하는 상대의 신발장이나 사물함에 작은 꽃다발이나 예쁜 카드 따위를 몰래 넣어 둔다거나. 언니 쪽으로부터도 여동생으로서 인정받는 관계를 S라고 부른다거나. sister의 이니셜이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는 감정은 소학교에 다니기도 전부터 가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를 어떻게 부를지는 여학생이 되기 전까지 몰랐다. 〈열(お熱)〉이라 부르는 듯하다. 도츠레오(ドツレオ: ‘열도’ 즉 ‘오레츠도’의 거꾸로;역주)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지, 이 학교에서만 통용되는 말인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볼이 붉어진다고 한다. 바보 같다.
바보 같은 짓들 중 로마자 점이 있다. 사모하는 상대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각각 로마자로 써서, 공통되는 문자를 지워 나간다. 문자가 몇 개 남는다. 그것을 F L S H 순서에 대입시킨다. friend, like, sister, hate의 이니셜들이다. L은 정열도 낮은 like이지 love가 아니다. 恋이든 연애든 그런 말을 아는 것만으로도 죄인 것이다. 愛는 존중하는 것이지만 恋은 기피해야 하는 것이 되어 있다. 부모가 고른 상대와 결혼할 때까지 남성에게 눈을 돌려선 안 되는 여학생에게 지고의 恋는 S인 것이다. 그 S조차 학교 당국은 좋지 않은 풍습으로 보고 있다. 우정은 크게 권장받지만, 넘어선 안 될 벽이 있다. 다른 자를 배제하고 둘만이 특히 농밀해지는 것은 빈축당하고 지탄받는다.
그래도, 교사들은 로마자 점은 모를 것이다. 안다 하더라도 유치하다며 웃어넘기겠지. 실제로, 유치하다. 남은 문자가 세 글자라면 S가 된다며 좋아하고, 여덟 글자라면 두 바퀴 돌아서 싫어! 에 봉착한다며 실망한다. 남은 문자가 제로라면 무엇을 의미할까.
손금이나 별점 쪽이 훨씬 나을 유치한 장난이다. 일본식으로 쓰느냐 헵번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남는 문자수도 달라진다. 정말이지 별 볼일 없는 무의미한 짓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학습 노트의 끄트머리에 당신의 이름을 로마자로 쓰고, 자신의 이름을 그 밑에 쓴 후, 공통되는 문자를 지워 볼 때가 있다. 헵번식이라면 남은 글자수는 18, 일본식이라면 16. 즉, 전자는 L, 후자는 H. 나는 l을 미적지근한 like가 아니라 정열, 광애狂愛의 love로 한다. 그러니 나는 학습 노트 구석에 몇 번이고 당신의 이름을 헵번식으로 쓴다. 그 아래에 내 이름을 쓴다. 이름을 쓰면 사모하는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어리석은 주법과도 같이. (64 페이지)
바보 같은 짓들 중 로마자 점이 있다. 사모하는 상대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각각 로마자로 써서, 공통되는 문자를 지워 나간다. 문자가 몇 개 남는다. 그것을 F L S H 순서에 대입시킨다. friend, like, sister, hate의 이니셜들이다. L은 정열도 낮은 like이지 love가 아니다. 恋이든 연애든 그런 말을 아는 것만으로도 죄인 것이다. 愛는 존중하는 것이지만 恋은 기피해야 하는 것이 되어 있다. 부모가 고른 상대와 결혼할 때까지 남성에게 눈을 돌려선 안 되는 여학생에게 지고의 恋는 S인 것이다. 그 S조차 학교 당국은 좋지 않은 풍습으로 보고 있다. 우정은 크게 권장받지만, 넘어선 안 될 벽이 있다. 다른 자를 배제하고 둘만이 특히 농밀해지는 것은 빈축당하고 지탄받는다.
그래도, 교사들은 로마자 점은 모를 것이다. 안다 하더라도 유치하다며 웃어넘기겠지. 실제로, 유치하다. 남은 문자가 세 글자라면 S가 된다며 좋아하고, 여덟 글자라면 두 바퀴 돌아서 싫어! 에 봉착한다며 실망한다. 남은 문자가 제로라면 무엇을 의미할까.
손금이나 별점 쪽이 훨씬 나을 유치한 장난이다. 일본식으로 쓰느냐 헵번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남는 문자수도 달라진다. 정말이지 별 볼일 없는 무의미한 짓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학습 노트의 끄트머리에 당신의 이름을 로마자로 쓰고, 자신의 이름을 그 밑에 쓴 후, 공통되는 문자를 지워 볼 때가 있다. 헵번식이라면 남은 글자수는 18, 일본식이라면 16. 즉, 전자는 L, 후자는 H. 나는 l을 미적지근한 like가 아니라 정열, 광애狂愛의 love로 한다. 그러니 나는 학습 노트 구석에 몇 번이고 당신의 이름을 헵번식으로 쓴다. 그 아래에 내 이름을 쓴다. 이름을 쓰면 사모하는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어리석은 주법과도 같이. (64 페이지)
교코와 나는 거울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眼은 가끔 발광發狂한다. 거울은 가끔 발광한다, 는 말이네.
우리들의 의식이 가끔 발광하는 것처럼.
거울은, 그것을 보는 자를 발광하게 한다.
발광이라는 말을, 교코와 나는 일부러 가볍게 입에 담았다. 깊은 의미 따위 없는 것처럼. 언짢음과 양해를 어설프게 감추는 것이다. 발광이라고 가볍게 입 밖에 내는 자의 신경은 당분간, 쇠약해지지 않는다.
쥐모Jumeau의 비스크 인형은 사랑스러운 서양인형의 대표처럼 말해지지만, 활처럼 휜 짙은 눈썹도 애교 없는 눈도 내게는 오히려 무서운 인상을 주었다. 교코는 하얗고 볼이 통통한 둥근 얼굴로, 또렷한 눈과 볼륨 있고 작은 입이 서양인형을 떠올리게 한다. 쥐모처럼 무서운 인상은 아니다. 〈사랑스러운 서양인형〉이라는 형용이, 쥐모가 아니라 동양의 나나오 교코에게 어울린다고 나는 느낀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마리 로랑생의 파스텔컬러의 소녀라고 할까.
하지만 교코가 그리는 그림은 본인의 달콤한 외모가 주는 인상과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다.
교코는 르동처럼 어머니에게 버려진 아이일까. 뭉크처럼 결핵으로 죽은 어머니, 병적일 정도로 종교에 심취한 아버지를 가진 걸까.
가족의 사정에 대해 화제 삼은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딜 가더라도 아이가 한점 불만 없을 정도로, 아이에게 있어 이상적인 부모 같은 것은 없다. 아이가 자신의 경우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타고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하고 만다. 혼의 고아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끄러워 결코 입에 담지 못하지만.
부모가 어떻든, 가족이 어떻든, 전쟁이 있든 없든, 교코는 거울이 있는 그림을 그리겠지. 거울이 놓인 장소는 실내가 되었다가 문밖이 되었다가 하지만, 거울에는――최종적으로――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은회색 공허가 존재할 뿐이다. 그리는 과정을 나에게 감추려 하지는 않으니 굳이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고 만다. 교코는 마치 타블로tableau를 완성시킬 생각이 없는 듯하다. 거울 이외의 부분은 사실적으로 정성껏 그린다. 거울 속에는, 어떤 때는 불안으로 응고된 표정. 어떤 때에는 흑과 적의 소용돌이 속에 떠오른 무표정한 얼굴. 그것이 위아래가 거꾸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덧칠되는 불안정한 색채의 분류, 아름다웠다가 불길했다가 하는 정체 모를 색의 덩어리, 그리고 최후에, 은색으로 덮어 칠하고 만다.
캔버스는 지극히 부족하다. 긁어내고 그 위에 다시 그린다. 긁어내도 색채는 캔버스에 남아 계산하지 못한 복잡한 색 배합 효과가 생긴다. 교코에게는 그린다는 행위만이 있다. 외치는 대신, 비명 지르는 대신 그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표현하고 싶은 것은 표현하자마자 거짓말이 된다. 그림으로 그려도, 문장으로 써도.
교코는 그리고, 나는 체조용 링에 매달려 공간을 희롱한다. 내 거친 숨과 땀은 비명 대신 공중으로 비산한다. (186 페이지)
눈眼은 가끔 발광發狂한다. 거울은 가끔 발광한다, 는 말이네.
우리들의 의식이 가끔 발광하는 것처럼.
거울은, 그것을 보는 자를 발광하게 한다.
발광이라는 말을, 교코와 나는 일부러 가볍게 입에 담았다. 깊은 의미 따위 없는 것처럼. 언짢음과 양해를 어설프게 감추는 것이다. 발광이라고 가볍게 입 밖에 내는 자의 신경은 당분간, 쇠약해지지 않는다.
쥐모Jumeau의 비스크 인형은 사랑스러운 서양인형의 대표처럼 말해지지만, 활처럼 휜 짙은 눈썹도 애교 없는 눈도 내게는 오히려 무서운 인상을 주었다. 교코는 하얗고 볼이 통통한 둥근 얼굴로, 또렷한 눈과 볼륨 있고 작은 입이 서양인형을 떠올리게 한다. 쥐모처럼 무서운 인상은 아니다. 〈사랑스러운 서양인형〉이라는 형용이, 쥐모가 아니라 동양의 나나오 교코에게 어울린다고 나는 느낀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마리 로랑생의 파스텔컬러의 소녀라고 할까.
하지만 교코가 그리는 그림은 본인의 달콤한 외모가 주는 인상과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다.
교코는 르동처럼 어머니에게 버려진 아이일까. 뭉크처럼 결핵으로 죽은 어머니, 병적일 정도로 종교에 심취한 아버지를 가진 걸까.
가족의 사정에 대해 화제 삼은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딜 가더라도 아이가 한점 불만 없을 정도로, 아이에게 있어 이상적인 부모 같은 것은 없다. 아이가 자신의 경우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타고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하고 만다. 혼의 고아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끄러워 결코 입에 담지 못하지만.
부모가 어떻든, 가족이 어떻든, 전쟁이 있든 없든, 교코는 거울이 있는 그림을 그리겠지. 거울이 놓인 장소는 실내가 되었다가 문밖이 되었다가 하지만, 거울에는――최종적으로――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은회색 공허가 존재할 뿐이다. 그리는 과정을 나에게 감추려 하지는 않으니 굳이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고 만다. 교코는 마치 타블로tableau를 완성시킬 생각이 없는 듯하다. 거울 이외의 부분은 사실적으로 정성껏 그린다. 거울 속에는, 어떤 때는 불안으로 응고된 표정. 어떤 때에는 흑과 적의 소용돌이 속에 떠오른 무표정한 얼굴. 그것이 위아래가 거꾸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덧칠되는 불안정한 색채의 분류, 아름다웠다가 불길했다가 하는 정체 모를 색의 덩어리, 그리고 최후에, 은색으로 덮어 칠하고 만다.
캔버스는 지극히 부족하다. 긁어내고 그 위에 다시 그린다. 긁어내도 색채는 캔버스에 남아 계산하지 못한 복잡한 색 배합 효과가 생긴다. 교코에게는 그린다는 행위만이 있다. 외치는 대신, 비명 지르는 대신 그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표현하고 싶은 것은 표현하자마자 거짓말이 된다. 그림으로 그려도, 문장으로 써도.
교코는 그리고, 나는 체조용 링에 매달려 공간을 희롱한다. 내 거친 숨과 땀은 비명 대신 공중으로 비산한다. (186 페이지)
교코와 나는 언제나 성으로 부른다. 나나오 상. 코우즈키 상. 교코와 나의 영혼은 공진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역으로 일정한 거리를 둔다. (189 페이지)
피아노 위에 겹쳐 놓인 악보들을 이것저것 살펴보고, 가볍게 칠 만한 드보르작의 소품「위모레스크」를 악보대에 놓았다. 교코는 피아노에 기대 듣고 있었다. 교코의 표정이 조용히 변화했다. 있을 수 없을 일이겠지만 내게는 교코의 얼굴 피부가 얇아져서 뼈가 위로 끌려 올라와, 작게 전율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음을 남기고 연주를 마친 후 나는 교코에게 의자를 양보했다. 이제껏 우리들 중 누구도 피아노를 화제 삼았던 일은 없다. 그래도 교코는 마치 필드에 선 투창 선수 같았다. 긴장과 맹렬한 기분. 혹은 출주 신호를 기다리는 분마奔馬.
나와 겨루겠다거나 실력을 보이겠다는 기색은 티끌만치도 없다. 그저 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이해했다.
악보도 없이 교코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내달렸다. 쇼팽의 폴로네즈 중에서도 그다지 인기가 없는 제 사번곡 하단조 작품 40-2였다.「군대」라고 불리는 제 3번과「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랑받는 제 6번에 비하면 수수하고 어두운 곡이지만, 저음부를 연주하는 비극적인 모티프가 나를 사로잡았다. 뒷마당에 면한 유리창에 빗방울이 희미한 빛을 품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변 이장조로 조를 바꾸어 곡이 온화해졌을 때, 폴로네즈로 가득한 실내의 정적을 작은 소음이 흐트러트렸다.
복도 쪽 창에 눈을 향했다. 불투명 유리창이 슬금슬금 열리고 있었다.
돌아보았지만 창을 열던 자는 내 시선을 피해 재빨리 몸을 피했는지, 시야에 비친 것은 창틀에 걸린 손가락뿐이었다. 손가락은 곧 슥 물러났다.
연주에 몰두한 교코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이 계속 쳤다. (193 페이지)
나와 겨루겠다거나 실력을 보이겠다는 기색은 티끌만치도 없다. 그저 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이해했다.
악보도 없이 교코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내달렸다. 쇼팽의 폴로네즈 중에서도 그다지 인기가 없는 제 사번곡 하단조 작품 40-2였다.「군대」라고 불리는 제 3번과「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랑받는 제 6번에 비하면 수수하고 어두운 곡이지만, 저음부를 연주하는 비극적인 모티프가 나를 사로잡았다. 뒷마당에 면한 유리창에 빗방울이 희미한 빛을 품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변 이장조로 조를 바꾸어 곡이 온화해졌을 때, 폴로네즈로 가득한 실내의 정적을 작은 소음이 흐트러트렸다.
복도 쪽 창에 눈을 향했다. 불투명 유리창이 슬금슬금 열리고 있었다.
돌아보았지만 창을 열던 자는 내 시선을 피해 재빨리 몸을 피했는지, 시야에 비친 것은 창틀에 걸린 손가락뿐이었다. 손가락은 곧 슥 물러났다.
연주에 몰두한 교코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이 계속 쳤다. (1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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